1912년 4월 영국에서 출항한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2009년 항공기 사고가 난 네덜란드 공항에서 울려 퍼졌던 노래가 있다.
1927년부터 FA 월드컵 결승전 개막식에서 양 팀 선수 입장 전 경기장 모든 사람이 일어서서 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그로부터 2년 후, 럭비 경기 결승전에서도 불리고 있는 노래!
뿐만 아니라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불려진 이 노래는 축제 분위기와 어울리는 신나는 곡이 결코 아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정을 담은 이 곡은 느린 곡조에 장중한 분위기로 오히려 숙연해지는 가사를 담고 있는 찬송가 "Abide with me (by Henry Francis Lyte)"가 바로 그것이다.
현대 영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종교에 회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 설문조사 결과 영국 성인 44.7%가 '종교가 없다'라고 하지만 이 찬송은 널리 불려지고 있다. 교회나 성당에서나 어울릴 것 같은 찬송가가 심지어 힌두교 국가인 인도의 "공화국의 날"(국경일)마다 불려지고 있다. 2020년 국방부에서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공화국의 날에 영국의 찬송가를 부르는 것은 맞지 않다는 의견을 제기하였으나, 인도 전 국민의 반대로 올해에도 어김없이 불려졌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가 가장 사랑했던 찬송가이기 때문이다.
이 찬송가는 성공회 사제이자 유명한 시인 Henry가 불치의 병에 걸리게 되어 죽음을 앞두고 요양에 들어가기 전, 딸에게 남긴 시인데 그것이 유작이 되고 그 뒤로 1861년 윌리엄 헨리 뭉크가 어린 딸을 잃은 상실감에 빠져 있을 때 이 찬송시에 곡조를 붙인 것이 지금도 인종과 종교에 상관없이 불리고 있는
Abide with me (찬송가 481장 때 저물어서 날이 어두니)인 것이다.
https://youtu.be/FNXYGAEwQaY
Abide with me
Abide with me, fast falls the eventide
The darkness deepens Lord, with me abide
When other helpers fail and comforts flee
Help of the helpless,
oh, abide with me
Swift to its close ebbs out life's little day
Earth's joys grow dim, its glories pass away
Change and decay in all around I see
O Thou who changest not,
abide with me
I need Thy presence every passing hour
What, but Thy grace can foil the tempter's power
Who like Thyself my guide and stay can be
Through cloud and sunshine Lord,
abide with me
I fear no foe, with Thee at hand to bless
Ills have no weight, and tears no bitterness
Where is death's sting?
Where, grave, thy victory?
I triumph still, if Thou
abide with me
Hold Thou Thy cross before my closing eyes
Shine through the gloom and point me to the skies
Heaven's morning breaks, and earth's vain shadows flee
In life, in death, o Lord,
abide with me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구주여 나와 함께 하소서
내 친구 나를 위로 못 할 때
날 돕는 주여 함께 하소서
내 사는 날이 속히 지나고
이 세상 영광 빨리 지나네
이 천지 만물 모두 변하나
변찮는 주여 함께 하소서
주 홀로 마귀 물리치시니
언제나 나와 함께 하소서
주같이 누가 보호하리까
사랑의 주여 함께 하소서
이 육신 쇠해 눈을 감을 때
십자가 밝히 보여주소서
내 모든 슬픔 위로하시고
생명의 주여 함께 하소서
개독교라고 욕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하나님을 소개하고 싶다는 연세대 신학교수 김학철 목사님은 이 아름다운 찬송시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기도 했다.
주님,
제 옆에 계세요.
황혼이 빨리 저뭅니다.
어둠이 깊어지니
주님,
제 옆에 계셔주세요.
돕던 사람들 쓰러지고
위로하는 사람들
지나쳐버립니다.
힘없는 사람을
도우시는 주님,
제 옆에 계셔주세요.
찰나의 삶
썰물 같이 빨리 빠져
끝에 이르고
이 땅의 기쁨
어둑해지며
그 영광이라야 사라져 버립니다.
모든 것 둘러보니
변하고 쇠해갈 뿐
오, 주님
변치 않는 분
제 옆에 계셔주세요.
인간에게 주어진 찰나의 삶, 우리가 긴 세월을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눈 감았다 뜨면 어느새 늙어있고
다가오는 마지막, 그것의 기쁨과 영광이라고 해야 풀과 꽃의 영광같이 사라지고 말 것들
모두 변하고 쇠락해가는 세상,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변치 않는 주님
더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람과는 달리
늘 우리 옆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사랑과 자비의 손길을 펼치시는 주님
언제나 나와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과 달리
늘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시는 하나님
이것이 찬송시의 내용이다.
이 찬송의 간절함은 우리의 간절함이다.
배가 침몰하는 순간
죽음을 앞두고 있는 병약한 순간
자기 딸을 잃고 인생의 고통 속에서 삶의 침울한 순간에 빠졌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 저와 함께 머물러 주세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가 무색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아무리 간구해도 이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시거나 없애주시지 않는 듯하다. 너무 지치고 힘들 땐 도대체 내 기도를 듣고 계시긴 하는 건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신실하신 목사님의 하나님은 분명 존재하는 것 같은데 나의 하나님은 안계신건 가 낙심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문제만 바라보지 말라고 하신다. 어떤 고난이 닥쳤을 때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명목 아래 그 원인부터 찾고자 혈안이 되었던 나는 어쩌면 문제 해결보다는 원망의 대상을 찾고 있었던 거다. 이 모든 일을 탓할 분풀이 대상이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잠잠하고 신뢰하라' 말씀으로 묵묵히 견디게 하시고,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가시밭의 백합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의 가시밭!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가시밭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찾아오는 고난이 비켜 갈 리 없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두려워 말고 그 가시밭을 이기는 삶을 살라고 하신다.
사랑하는 자야, 가시밭 속에서 백합화와 같은 향기를 내뿜으라고...
2020년에 이어 2021년도 코로나로 인해 그 어느 해보다 더 고요한 성탄절을 보내면서 이 찬송시의 내용을 묵상하는 시간이 참 감사하다.
주님, 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