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롱 Mar 26. 2022

코, 코, 코로나!!!

밀접접촉자에서 살아남기

 다행인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지만 20여 일 만에 직장을 통한 밀접접촉자만 3번이 되었다. 2020년부터 코로나 3년 차를 보내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밀접으로 분류된 적 없었고, '자가격리'란 상상조차 어려운 먼 나라 이야기 같던 내게 생애최초 밀접접촉자가 된 사연은 지난 2월 25일!


 2021년 11월부터 시행한 정부의 위드 코로나(With Corona)는 국민 백신 접종률이 70% 이상 되는 10월 말 기준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하였다면 사망률이 높지 않다고 판단, 계절성 독감처럼 코로나를 대하겠다는 선언으로 일상회복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사적 모임의 인원 제한이나 영업시간 제한을 완화 또는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제법 느슨해지고, 드디어 일상의 회복이 눈앞에 온 것인가 싶을 만큼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의 모습,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대한 경계심이 차츰 풀려 갈 때 즈음 12월부터 날마다 최고 기록을 경신해갈 정도로 코로나 확진자의 폭발적인 증가가 전국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확진자 중 다소 경미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재택치료군'으로 분류하여 자택에서 격리하면서 의료진의 모니터링만 이루어졌는 데, 2월에 들어선 이후 그조차 방역인력의 한계에 직면하면서 그야말로 셀프 7일간 격리만 하면 별도의 검사 없이 자동 해제되는 것으로 방역 지침이 바뀌던 시기!



 

 당시 나는 교육청 공개채용 선발 시험에 최종 합격하면서 치열한 고민 끝에 이직(제2의 인생과도 같은 지각변동)을 결심하였고, 상급자 박사님께 이 같은 결정을 말씀드린 뒤 촘촘한 인수인계에 돌입해야 했다. 정해진 남은 기간 내에 후임자 채용 공고조차 낼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결국 함께 근무하던 세 명의 동료들에게 나누어 인수인계를 하게 되었다. 주말 동안 밤늦게까지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고, 박사님께 일자별 인수인계 계획 일정을 표로 만들어 메일을 보낸 뒤 담당자 별로 세 개의 삼공 파일을 더 준비해두었다.  '3 반복'이라는 타임 테이블대로 아침부터 퇴근 전까지 쉴 새 없이 설명한 뒤 이해한 내용을 확인하고, 그 내용을 동영상이나 사진 등으로 기록을 남기도록 알려 주었다.

그렇게 인수인계의 고지에 거의 다다를 때쯤 박사님께서는 다 같이 식사 한번 하자는 제안을 하셨고, 그 또한 통과의례 같은 절차라고 하여 부랴부랴 회사 근처 정갈한 한식당으로 약속을 잡았다. 코로나 시기에 딱 맞게 일행 별로 테이블마다 룸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사람들 간의 접촉을 최소화한 듯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지 두어 시간 만에 동료 한 명이 신속항원검사에서 양성이 나와 PCR 검사를 받으러 선별 진료소로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침부터 이상하게 컨디션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들었던 말이 뇌리를 스치면서 내일 나올 PCR 검사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인수인계를 위해 일주일 동안 거의 종일 붙어 있으면서 심지어 한 시간 가까이 식사 자리에선 마스크까지 벗고 있었던 나는 빼박 밀접접촉자가 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손 끝이 떨리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을 애써 참아가며 남편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니 오늘 밤부터 당장 아이들과 격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하에 아이들의 옷가지와 먹거리를 챙겨 함께 시댁으로 가 있기로 했다.


 그렇게 난 생애최초 밀접접촉자가 되어 나 홀로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게 된 것이다. 기분 탓인지 그날 밤 열이 오르는 듯했고 다음날 눈뜨자마자 처음 해본 신속항원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내 콧구멍을 얼마나 냉정하게 눈까지 찌를 수 있을까 자기반성이 들어 자수하는 심정으로 오후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역시 뇌까지 찌른다는 소문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신속항원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10 여분이 지난 뒤에도 면봉이 닿은 인두부 통증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과는 역시 '음성', 3일 치 처방약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목감기 같은 증세는 주말 동안 계속되었고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아 PCR 소견서를 받아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그런데...!!! 뜨악!

난생처음 보는 기다란 대기줄 곳곳마다 『여기서부터는 30분 소요 예정입니다.』,『여기서부터는 1시간 소요 예정입니다.』,『여기서부터는 2시간 소요 예정입니다.』라는 삼각표지판이 세워 있었고, 내가 줄을 선 곳은 2시간 소요 예정인 지점보다 한참 뒤였다. 심지어 한 시간 후면 진료소 휴게시간으로 검사가 중단된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줄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좀처럼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저녁시간에는 30분 이내로 검사가 가능하다는 방역요원 말에 솔깃해진 나는 용기 있게(?) 돌아서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 다시 저녁에 나왔을 땐 아까보다 더 길게 늘어선 줄에 순간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현실 앞에 묵묵히 줄을 지키다 보니 진료소 마감시간 20분을 앞두고 내 차례가 왔다.

그리고 다음 날 '음성' 통보 문자를 받게 된 건 3차 백신을 맞은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었고, 백신 효과에 대한 분분한 의견과 달리 감염력 최강이라는 '오미크론'으로부터 싸워 이겨낸 듯한 뿌듯한 마음으로 새로운 직장에 출근할 수 있었다.



 

 설렘과 두려움 반으로 출근한 새로운 직장은 중증 장애아동이 유, 초, 중, 고, 대학생까지 모두 다니는 특수학교이고, 내가 발령받은 학급은 유치부였다. 아무래도 유치부다 보니 상시적인 마스크 착용 지도가 어려웠고 졸졸 따라다니며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했다. 그러나 초등부나 중등부로 가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중등부를 지도하는 선생님 얘길 들어보면 하루의 일과를 마스크 줄 끊기로 시작하는 학생도 있어 여분의 마스크를 늘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새로운 직장에서의 적응은 여태껏 경험해 본 곳 중 최강으로 하루하루가 쉽지 않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한 지 2주 만에 같은 단지 살고 있는 선생님이 확진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2주 동안 카풀을 하며 출퇴근 시간마다 힘든 상황을 나누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서로 진심으로 전하는 위로 속에서 전우애로 뭉친 관계였다.

 그렇게 두 번째 밀접접촉자가 된 것이다. 지난 금요일 다과시간을 갖게 된 30여분의 시간, 마스크를 내린 시간도 그 정도일 텐데 괜찮을까 슬쩍 걱정도 되었지만, 자가진단키트에서 '음성'을 확인 후 출근했다.

이미 타 학년에서는 반별로 등교중지가 될 만큼 확진된 선생님과 학생들이 수두룩 나온 상태였고, 유치부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 아침 환기에 더 신경 쓰게 되는 월요일 아침이었다. 비 온 뒤라 그런 건가 꽃샘추위인 건가 유난히 으슬으슬 춥다는 생각에 자꾸 몸이 움츠러들더니 체온이 점점 올라가고 오후 4시쯤 38도가 되었다. 순간 놀란 마음에 가슴이 조이는 듯 숨쉬기가 불편하다는 걸 느끼며 바로 신속항원검사가 가능한 병원으로 향했다. 그렇다고 해도 뇌까지 찌르는 그 병원을 다시 찾을 용기는 나지 않아 다른 곳에서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 후 '음성' 통보와 함께 비대면 처방전으로 약만 받아왔다.

다음 날 담임선생님께선 감기 증상이 있으니 아무래도 하루 병가 내고 푹 쉬는 게 좋겠다고 권면하여 그렇게 약 먹고 집에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열도 바로 떨어지고 컨디션도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월요일 오후에 방과 후 지원한 아이가 그 가족과 함께 확진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평소에도 교실에서 마스크를 안 쓰던 그 아이였고, 그날 방과 후 시간에는 뭔가 불편한 건지 평소보다 떼쓰는 정도가 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수동 감시자 해제도 되기 전에 또 밀접접촉자가 될 수도 있다면 이런 경우인 걸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주 방과 후에 큰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와 음료수를 나누어 먹었는데 그 친구들 중 한 명이 주말 동안 확진되었고, 수요일에는 담임선생님마저 코로나 확진으로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큰아이 반 학급 전체가 밀접접촉자가 되면서 이동식 PCR 검사가 시행되었고 다행히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 뒤로도 우리 집의 온 가족이 출동한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는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5명 중 한 명 꼴로 코로나 확진받았다는 통계수치를 뉴스로 접할 때만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바로 나의 동료 연구원, 임용 동기 선생님,  유치부 장애아동, 내 아이의 반 친구와 담임선생님까지 줄줄이 확진되는 상황 속에서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의 바로 턱밑에서 언제라도 증식할 타이밍을 노리고 있는 듯한 불안함이 엄습했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몇 번의 밀접접촉자에서 '코로나로부터 살아남은 자'라는 이야기를 적어나갈 생각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비누로 손을 씻고, 평소 손세정제를 핸드크림처럼 바르는 결벽 증세까지 보이며, 알코올 티슈는 나의 필수품일 정도로 철벽녀이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조금은 뻔한 전개를 쓰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4일 동안 매일같이 전문가용 신속항원 '음성', 중간에 PCR 검사까지 '음성'이라는 결과를 뒤집는 문자가 온 것이다.


[Web 발신]

****. **. ** 시행한

[초롱] 귀하의 코로나19 pcr 검사 결과 양성(확진)입니다.

자택에서 격리하시고 외부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지금부터 격리 명령이 발효됩니다.


평소에도 과로하면 편도선이 잘 붓고 목이 따끔거리는 증세가 있던 터라 환절기 목감기가 제대로 온건가 싶어 수액치료를 받을까 했지만 코로나 증세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신속항원검사가 음성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진료는 거부당했다. 지난해 독감 예방접종을 맞지 않은 게 떠올라 혹시 독감인가 보다 싶은 생각에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목감기 환자들도 더러 있을 수 있는 데 무조건 코로나 환자 취급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항생제와 해열진통제를 계속 복용 중임에도 불구하고 열이 떨어지지 않고 이불속에 있어도 계속되는 오한,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인후통 그리고 순식간에 변한 목소리에서 컹컹거리는 기침소리만 남고 아예 소리가 나오지 않는 지경에 다다르자, "내가 바로 오미크론이야!"라고 거만하게 비웃는 듯 코로나의 위력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여전히 그 위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우리 가족들은 아무도 내가 코로나 일거라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탓인지 문자를 받고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고, 정신을 차리고선 일제히 선별 진료소로 달려가 착실하게 pcr검사에 응했다. 아직까지는 나만 안방 격리생활을 이어 나가는 중이고, 다른 가족들은 비록 '음성' 결과가 나왔지만 아무도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있다.




 항간에 '온 국민이 다 코로나에 걸려야 끝이 나려나보다, 차라리 코로나 걸리는 게 낫겠다!'라고 말하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니요!!  피할 수 있다면 피하세요!

미리 맞는 매가 결코 낫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의 아이들이 끝까지 코로나에 걸리지 않도록 더 조심하고 노력해주세요.

진짜 이렇게 아프긴 백만 년 만에 처음 같아요."


작가의 이전글 엄마, 배고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