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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Oct 06. 2021

마흔

두 번째 스무 살

 언제부터 고무줄 바지를 입기 시작했는 진 기억나지 않는다. 풍요와 빈곤이 공존했던 스무 살에는 눈길 한 번 가지 않았던 부류의 옷 임에는 틀림없다. 당시에는 공식행사나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정장 차림의 옷을 선호하고 ‘슈트’가 주는 이미지만으로 스스로 ‘나는 커리어우먼이다’라는 자기 암시에 빠지는 걸 즐겼다.

 그러나 마흔을 지나오면서 정장 차림의 옷을 입어야 하는 날이 생기면 며칠 전부터 부담스럽다. 특히 면접을 보기 위해서라면 더 그러하다. 몇 년간 옷장 속에서 묵혀 있던 몇 벌 안 되는 정장을 두고 고르는 심각한 표정의 얼굴이 전신 거울에 비친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한데 묶어 올리고 미간에는 내 천(川) 자 주름이 선명하게 그려진 채 입꼬리는 삐죽빼죽 바쁘게 움직인다.

적지 않은 나이에 면접을 보러 가야 한다는 부담이었을까?

상·하의 신축성 없는 슈트가 주는 불편함을 참아야 한다는 이유였을까?

아니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면접에 이르도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못마땅한 것이었을까?     



 마흔!

어느 조직에 지속적으로 소속되었더라면 중간관리자쯤 될 법한 충분한 나이겠지만, 출산과 육아로 공백기를 가진 이후라면 특히, 복직과 이직은 입장이 제법 다르다. 단 몇 개월의 공백조차도 이직은 ‘경력단절’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사회로 나아가는 느낌이다.

 인프라가 갖추어가고 있는 진행형의 신도시라는 특성 때문인지, 전일제든 시간제든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는 건 이미 오래된 얘기다.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이 고용 소식이 올라오기라도 하면 쟁쟁한 경쟁률에 서류전형부터 광탈이라며 좌절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온 터라 어쨌거나 면접 연락을 받은 것만으로 기뻐할 일이다. 그저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마음을 다잡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의적인 면접 분위기와 달리 ‘불합격’이라는 통보를 받은 지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번에도 불합격 통보를 받을 게 뻔한 데 굳이 면접을 보러 가야 되는 건가 대놓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런!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다니.. 어떻게 내가 이런 생각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피할 수 없으면 즐겨!’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야!‘

주야장천 내 아이에게 좌우명처럼 떠들어댄 말을 당장 주워 담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진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거나 예단하는 일만큼 쓸데없고 소모적인 일이 없다고 말해왔던 나였건만......! 불길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서 설령 이번에도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게 된들 그게 뭐, 예전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데 별 영향을 받을 필요도 없지 않은가! 왜 그런 자격지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내적 갈등에 빠진 내 모습이 거울에 고스란히 비쳐 있는 것이다.          

 마치 놓치면 안 되는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일자리를 왜 가지려는 걸까?      

‘자아실현’, ‘자존감’ 그따위 허울 좋은 소리는 아무런 이유도 되지 못한 지 오래다.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의무감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진 편이라 매달 꼬박꼬박 받는 월급 때문에 일자리에 목을 맬 이유도 아니다.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그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이 크게 일기 시작한다.     

 일하는 엄마로 살아오는 동안 가슴 저미고 애끊는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시각각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가 화수분처럼 끝없이 생겨났던 일들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큰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도는 전염성 질환에 복권 당첨이라도 되듯 매번 걸렸다. 아픈 애를 당장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거리다 애를 데리고 사무실에 슬그머니 출근하던 일.

출석 도장이라도 찍듯 폐렴이나 장염으로 대학병원에 주기적으로 입원하던 일.

크고 작은 병치레가 어지간히 잦았다. 어쩌다 한 번이라도 아이가 다치거나 아프면 그 모든 책임은 엄마 때문인 것 같다는데 일하는 엄마는 여북할 일이겠는가. 콕 집어 말하지 않아도 그 죄책감에서 단 한순간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그런 데다가 똥 누는 놈 주저앉히기라도 하듯 엄마가 깔끔 떠느라 아이를 너무 깨끗하게 키워서 애 면역력이 약한 것이라는 둥, 아빠는 생전 안 그랬는데 누굴 닮아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둥 딴에는 보기 안쓰러운 마음에 내뱉은 말이겠지만, 차라리 못 들었으면 좋았을 말들을 꾸역꾸역 듣고 있어야 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나를 지나치지 않고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내 몸 어딘가에 쏙 쏙 박히기 시작했다.               


 아, 그랬구나!!

점보 지우개로 남김없이 깨끗하게 지우고 싶었던 기억이었나 보다. 최선을 다해서 잊은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이 순간 그때 그 일들이 오래된 필름처럼 곱게 말려 있다가 영사기를 통해 화면으로 비추듯 눈앞에 떠올라 현기증이 인다. 아직은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아이를 위해서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대외적인 선언을 했지만,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내가 버틸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던 거다.  

 정작 일을 그만두고선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암막커튼으로 컴컴해진 나만의 방으로 들어가 시체처럼 누운 채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죽이기라도 하듯 이불속에서 울다가 잠들다가를 반복한다.

깨어 있는 시간은 초점 잃은 눈빛으로 멍하니 그렇게 방전된 채 며칠간 아닌 몇 달을 더 그랬다. 잔뜩 물 먹은 솜처럼 축 처진 채. 이후 바짝 힘을 내어 사는 일에 열심을 냈다가도 금세 방전되기를 반복했다.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연식이 오래된 고용량 배터리처럼 충전하는 일이 더디기만 했다.      

 매 순간을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 인 줄로만 알았던 나.

‘인생은 직진이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기를 고집해 온 이십 년의 시간 속에는 아흔아홉 살까지 정확하게 타임 스케줄을 정해놓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궤도로부터 나를 꺼내는 일이 시작이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일에 온 힘을 빼기 시작했다.

짧지만 강한 충격으로 나를 이끈 핀다(PINDAR)의 한 마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자기 자신이 되어라”

 문득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나를 마주하는 순간에 직면하면서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고, 때마침 우연히 찾아온 에니어그램 강의!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론으로 3개의 자아와 9가지 유형으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서로 다른 자신의 성격 유형에 대해 나누는 시간은 마치 번데기가 우화를 거쳐 나비가 되어 세상을 향해 서툰 여행을 하는 것처럼 호기심과 신비감으로 가득 찬 시간이다. 이어 미술심리상담사 1급, 도형심리 중급과정, 글쓰기 수업까지 처음으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일을 하는 시간들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간다. 그런 시간과 노력이 켜켜이 쌓이는 동안 주변에는 너그러운 눈빛으로 나를 봐주는 친구들이 생겨나고 진심으로 내 삶을 응원해주는 말에 명치끝이 아릴 만큼 뜨거운 위로를 받기도 한다.

 지난 사십여 년 간 ‘나’보다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우선이었던 삶을 살아왔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선택이 자연스럽고 익숙하다. 결코 후회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다독이는 시간의 부재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지하 10층까지 곤두박질친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 나에게 수없이 말을 걸어준다. 지난 시간 측은지심을 느끼는 날에는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에 베갯잇이 흠뻑 젖을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 둔다. 마음을 추스르고 난 뒤에는 거룩한 의식을 이행하듯 하얀 종이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흔적을 남기는 일로 마무리한다.                     


 불혹이라고 하는 마흔!

오늘도 내 몸처럼 편안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있다. 질서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어질러진 거실로 나와 널브러진 채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있다.

“띠리리~~ 띠리리~~”

평소 거의 울리는 법이 없는 벨소리가 정적을 깬다. ‘경력자’ 타이틀로 ‘최종 합격’의 소식이 들려온다.

애달픈 사연을 꾹꾹 눌러가며 묵묵히 일을 놓지 않았던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하듯...

전혀 예상치 못한 연락에 어리둥절하면서도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과 시작하는 새로운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상상에 자꾸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설렘!

가장 힘든 시간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떠났던 나비처럼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신비감으로 충만한 아침을 시작하려고 한다.      

 오롯이 '나'로 살아가는 시간으로 채우는 아침이고 완전히 달라진 색깔의 하루이다.

풋풋한 스무 살보다 두 번째 찾아온 스무 살이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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