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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un 02. 2022

소풍

둘(2)이 하나(1)가 되는 부부의 날,  5월 21일

 오늘은 올해 첫 연차를 내고 신랑과 단 둘이 소풍 가는 날이다.

목적지는 서울!

더 정확히 말하면 서울에 있는 병원이다.

8시간 금식 마른침을 삼켜가며 아이들의 아침을 간단하게 준비한다.

롤 유부초밥과 미역국, 황금사과, 짜요짜요.

엄마가 병원 가는 날에는 왠지 애틋해지는 마음에 가급적 아이들이 좋아하는 최애 메뉴로 제공해주고, 장거리 운전을 자처해준 고마운 신랑을 위해서 고급 컵커피를 미리 사놓았다.

감사하게도 늑장 부리는 일 없이 아이들은 순조롭게 등교해주고, 우리 부부도 다른 날에 비해 여유롭게 집을 나선다.

         



 처음부터 서울로 병원 가는 날이 소풍 가는 기분인 건 결코 아니었다. 삼십 대 중후반부터 서울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으니 품 안에서 쌔근쌔근 잠든 어린 아들을 신랑에게 맡겨두고,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이른 새벽에 홀로 나와 버스 타고 ktx 타고 다시 택시로 병원에 도착하면 오전 8시가 채 안되었다.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로 순서에 따라 채혈이나 검사를 다 마치고 나서야 금기에서 해제된 듯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그리고 나면 진료까지 남은 4~6시간 동안 병원 투어를 하듯 이곳저곳을 서성이듯 돌아다니다가 인적이 드문 조용한 의자를 발견하면 살포시 잠을 청하던 때. 그 시절의 나는 서울이 싫었다. 서울 쪽으로는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병원 가는 날이 무슨 선고를 받는 날 같았다.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가서 검사를 받고 진료를 받는다는 일은 어르신들이나 암, 백혈병 등 중대 질환이 있는 경우에만 해당되는 줄 알았던 나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난치성 질환 진단 하에 몇 해를 더 착실하게 병원을 다녀야 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차도가 없이 슬슬 지쳐갈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검사 결과를 묻는 신랑 전화에 설움이 폭발하여 울고 말았다. 그 뒤로 신랑은 가급적이면 서울 병원 가는 날에 맞춰서 휴가를 내고 하루를 온전하게 동행해주었다.

그 동행이 이제는 소풍이 된 것이다.

오늘은 소풍의 백미인 점심 도시락 타임까지 신랑의 지도교수님 찬스로 고급 생참치집에 예약해둔 더욱 특별한 날이다. 대부분 아이들의 입맛에 따라 외식 또는 배달 메뉴가 정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 단둘이서 외식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게다가 통 큰 교수님께서 이미 최고급 코스로 주문 예약을 해둔 상태라 우린 그저 맛있게 먹고 가기만 하면 된단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얼떨떨한 사이에 정갈하게 플레이팅 된 음식들이 코스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광어랑 우럭회는 먹어봤어도 생참치는 처음이라 덥석 손이 가지 않았던 것과 달리 한번 입 안에 들어간 것을 잊어버릴 만큼 사르르 부드럽게 녹는 듯한 이 식감은 자꾸만 젓가락을 부르는 신비한 체험이었다.

진작에 위장의 정량 초과로 뇌에서는 '배불리 먹었다, 고마 먹어라!'는 명령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지만, 내 안의 먹깨비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이 시간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어쩌다 눈이 마주친 신랑도 이렇게 잘 먹는 여자가 요즘 입맛 없다던 내 아내가 맞나? 그런 의심의 눈초리로 보다가 이내 흐뭇한 미소로 급히 얼굴을 바꾸더니 "잘 먹으니까 좋네~! 아픈 사람 안 같아." 한다. 실컷 먹고 소화제 찾는 모습까지 보일 순 없어서 날이 좋으니 좀 걷자는 핑계로 두 정거장 거리를 걸었더니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그래도 서울 한복판에서 길 잃을까 봐 꼭 잡은 손을 놓지 않는 신랑이 오늘따라 참 든든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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