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백반 마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롱이 Oct 13. 2023

악마를 보듬은 할머니 손맛

통영 쑤기미탕

진미식당은 통영 서피랑 99계단 가는 길 대로변에 있다. 노부부가 운영하시는 쑤기미탕 전문점이다. 할머님이 음식을 만드시고 할아버님이 손님 응대를 하신다. 명정동 건강위원회 인사 잘하는 모범업소이다. 두 분 다 친절하시고 단골손님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신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두 분이 술 한잔 드시는 모습과 인력 일하시는 분들이 식사하는 모습도 보인다. 단골분들 예약 전화도 온다. 아침 6시부터 백반(식당 내부 메뉴판에는 ‘정식’이라 쓰여 있다.)을 맛볼 수 있으며 생선탕과 생선찜도 판매한다.


쏘는 악마를 먹다!


쑤기미탕을 주문한다. 세월의 더께가 보이는 낡고 네모난 양은 쟁반에 김치, 양념 장어구이, 멸치볶음, 양념 고추지, 다진 청양고추, 생선회, 고추찜, 양념게장, 전복찜, 마늘, 초고추장, 된장, 양념 고추절임, 소시지 부침, 건홍합 무침 등 밑반찬이 빈틈없이 담겨 나온다. 해물, 부추 등을 넣어 따뜻하게 부친 전은 쟁반이 모자라 따로 자리를 잡는다. 수수하지만 허투루 만들지 않은 찬들이 하얀 접시에 깔끔하게 담겼다. 주인 할머님의 성정이 느껴진다.


따스한 잡곡밥과 쑤기미 한 마리를 넣어 끓인 후 하얀 그릇에 담은 쑤기미탕은 따로 내준다. 밥과 함께 백반의 중심을 잡는다. 잡곡밥에 밑반찬을 곁들여 먹다가 쑤기미탕으로 눈을 돌린다.


쑤기미탕은 맹물에 얇게 썬 무, 쑤기미, 아삭하게 씹히는 썬 양파, 부추, 쪽파 등을 넣어 끓이다 고춧가루로 색깔을 내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국물을 먼저 맛본다. 생선의 비릿함과 잡내는 나지 않는다. 몇 번 더 국물로 속을 달랜다. 후련하고 깔끔하다.


앞접시에 건더기를 건져 먹는다. 담백하고 부드러운 몸통 살과 쫀득한 밥통(위), 톡톡 씹히는 고소한 알, 녹진한 풍미의 간, 미끄덩한 껍질과 지느러미 등 크진 않지만, 쑤기미 한 마리에서 다양한 맛과 식감을 느낄 수 있다. 큼직한 생아귀의 풍미에 뒤지지 않는다.


쑤기미의 영명인 'devil stinger'는 ‘쏘는 악마’라는 뜻이다. 주인 할머니의 연륜이 ‘쏘는 악마’를 요리했다. 할머니 손맛이 ‘쏘는 악마의 맛'을 보듬었다. 뜨내기 여행객의 마음도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한결같은 노포의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