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에 식당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청주 구남궁병원사거리 부근 골목을 걷다가 ‘기운차림 천원식당’ 쓰인 간판이 보인다. 기운차림 청주점이다. 청주에도 천원식당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청주 ‘맛나김치식당'에서 아침 식사로, 광주광역시 여행 때 대인시장 안 '천원 밥집'인 '해뜨는식당'에서 한 끼 먹은 경험이 떠올랐다.
지도 앱에 저장 해두고 잊고 있었다. 인터넷 뉴스를 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서울대, 인천대 등 일부 대학과 연계해 추진하는 ‘천원의 아침밥’이란 기사를 접한다. 아침 식사 결식률이 높은 대학생에게 양질의 아침 식사를 1,000원에 제공하는 사업이다.
전에 천원 밥에 대한 호기심으로 저장해둔 기운차림 청주식당이 떠오른다. 청주 기운차림을 검색하니 두 곳이 나온다. 집에서 가까운 기운차림 가경점을 평일 12시 넘어 찾는다.
기운차림 가경점은 청주 경덕중학교 부근 대로변에 있다. (사)기운차림봉사단이 운영하는 천원식당이다. 입구 창문에 "평일 점심 천원 누구나 환영”이란 문구가 붙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봉사자분들이 따뜻하게 맞이한다. 후원자와 봉사자분들을 모집하는 글이 보인다. 열 체크와 손 소독 후 식사비 통에 1,000원을 담는다.
천원이 가져다준 행복의 맛!
비닐장갑을 착용 후 밥통 속 갓 지은 따뜻한 밥을 하얀 접시에 담는다. 자율 배식으로 먹을 만큼 담을 수 있다.
봉사자 분들이 음식도 만들고 나눠 주며, 설거지도 함께 하는 공간이 보인다. 주방 앞 테이블엔 갓 담은 배추 김치, 유채 무침, 가자미구이, 무청 시래기 된장국이 준비되어 있다. 봉사자분들이 밥 푼 하얀 접시에 밑반찬을 담아 주신다. 가스레인지에 식지 않게 데운 무청 시래기 된장국은 국그릇에 따로 담아 내준다. 모자라면 찬과 국은 더 가져다 먹을 수 있다.
접시를 들고 빈자리에 앉는다. 탁자마다 칸막이가 설치되어 1인 식사를 해야 한다. 내부를 둘러본다. 공간이 청결하다. 12시 조금 지났는데 식사하는 분들이 많다. 대부분 연세 계신 어르신들이다. 식사 중에 보니 빈자리가 없다.
접시엔 따뜻하고 하얀 쌀밥과 갓 담은 배추김치, 푸른 유채 무침, 가자미구이 한 토막이 놓여 있고 국그릇엔 황토색 짙은 무청 시래기 된장국이 담겼다. 검이불루(儉而不陋).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밥상이다.
식사 시간에 맞춰 지은 쌀밥이 고슬고슬하다. 부드럽고 매끈하게 혀에 감긴다. 씹을수록 찰지고 단맛이 은은하다. 근래 먹은 식당 밥 중에 으뜸이다.
무청 시래기가 졸깃하게 씹히는 된장국은 간간하고 구뜰하다. 갓 담은 배추김치는 아삭아삭 상쾌하고 데친 유채에 깨와 소금간 살짝 한 유채 무침은 부드럽고 고소하다. 노릇하게 구워진 가자미구이는 바삭한 껍질과 뽀얗고 담백한 살이 잘 어우러진다. 약간 짭짤한 맛이 밥반찬으로 알맞다. 밥과 국, 찬을 싹 비운다. 천원으로 맛본 행복한 밥상이다.
주방 플래카드에 쓰인 "따뜻한 분들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정성스런 식단입니다."란 문구가 마음에 전해지며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봉사자분들이 식사 후 나가는 분들에게 “또오세요”, “기운찬 하루 되세요”란 말이 인상적이다. 봉사자분들 말처럼 기운을 차리게 해준 따뜻한 한 끼였다. 식사하신 분들도 “잘 먹고 가요” 하고 겉치레가 아닌 말을 건넨다.
코로나19 종식 선언 후 몇 차례 더 찾았다. 함께 오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홀로 오시며, 연세 계신 어르신들이 많다. 4인용 식탁 칸막이는 없어졌다. 밥과 찬을 담은 접시와 국은 각자 자리에 놓이지만,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함께 한다.
음식 맛으로 얻을 수 없는 기운을 받고 싶을 때면 가끔 들린다. 1,000원에 식당 밥도 먹을 수 있고 기운도 차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