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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Oct 09. 2023

3,000원 할매밥심은 묵직하다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으러 편의점을 찾는다. 참깨 볶음면을 선택한다. 2,300원을 결제하고 용기에 쓰인 조리 방법을 참고하여 조리한다. 용기에 쓰여 있듯 매콤하고 고소하다. 과학의 감칠맛과 매운맛에 고소함을 더한 맛이다.

컵라면을 먹고 편의점 커피 판매기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작은 컵을 누른다. 1,300원이다. 컵 용기를 들고나온다. 손에 따뜻함을 느끼며 호 불어 한 모금 마신다. 방금 먹은 감칠맛과 매운맛을 다독일 정도로 적당히 쓰고 구수하다. 공장 대량 생산이 만든 유통과 과학의 힘이다.

커피 몇 모금 먹다가 생각해 본다. "오늘 먹은 점심값이 3,600인데 이 가격에 백반을 먹을  있을까?" 몇 곳이 떠오른다.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이 2021년 3,000원에 먹은 벌교 할매밥집이었다.


보성 할매밥집은 벌교시장 입구 대로변에 있는 밥집이자 대폿집이다. 30년 가까이 영업 중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운영하신다. ‘할매밥집 아침식사됩니다’라 쓰인 글자가 간판과 출입문에 쓰여 있다.


시장 상인분들, 현지 분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많이 알려져 객지 분들도 호기심에 들리는 듯하다. 밥때가 지난 시간엔 어르신들이 간단한 밑반찬에 한잔 드시기도 한다. 술값도 착하다.


혼자 찾는 경우 내부 자리가 좁아 먼저 온 손님들과 합석해야 한다. 국과 밥은 개인마다 따로 내주지만 밑반찬은 함께 먹어야 한다.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방식이다. 개인적으론 여행하며 타지역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어 특별히 거부감을 가지진 않는다.

 

2016년 처음 찾은 후 5년이 지난 2021년 다시 방문한다. 벽에 붙은 가격표가 보인다. 백반 가격3,000원이다. 소주, 막걸릿값과 같다. 음식을 만드는 분들도 식사하시는 분들도 변함이 없다. 밥값만 5년 동안 1,000원이 올랐다.


식당 안은 점심 드시러 오신 분들로 자리가 꽉 찼다. 현지 어르신들 3분과 합석한다. 네모진 양은 쟁반에 밑반찬이 담긴 상이 식탁 중앙에 놓인다.


눈으로 밑반찬을 훑어본다. 동치미 무, 깻잎절임, 무나물, 부추무침, 오이절임, 상추 겉절이, 깍두기, 멸치볶음, 톳 파래무침, 어묵볶음, 마늘종 장아찌, 갓김치, 시금치 무침, 열무김치, 배추김치, 간장에 절인 장아찌 등 16가지 밑반찬이 차려져 있다. 두 가지 밑반찬은 양은 쟁반이 모자라 따로 식탁에 올려준다. 합석하신 분들과 밑반찬을 나눠 먹는다.

 

갓 지은 따뜻하고 찰진 고봉밥과 무청 시래기, 배추 우거지 등을 넣어 끓인 구수한 된장국을 개인마다 따로 내준다. 밥을 담은 그릇이 국그릇과 엇비슷하다. 시장의 인심이다.


밥에 골고루 밑반찬을 덜어 국과 함께 먹는다. 짠맛, 신맛, 단맛, 삭은 맛, 구수한 맛, 풋풋한 맛, 고소한 맛 등 다양한 맛과 식감을 맛본다. 깨끗이 비운 밥공기에 미지근한 보리차를 한가득 따라 마신다. 입안과 마음까지 구수해진다. 3,000 할매밥상은 물리지 않는 집밥처럼 푸근하고 중독적이다.


3,000원이 쥐어진 손은 미안함을 느끼며 밥값을 전한다. “잘 먹었습니다”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뜨내기 여행객은 3,000원의 묵직한 밥심을 간직하며, 발걸음은 가볍게 여행지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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