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텃밭에 기른 배추다. 올가을 날씨가 좋지 않아 무름병이 번졌지만 잘 이겨내고 통통하고 속이 꽉 차게 자랐다. 키운 이의 정성과 밭의 기운이 합작한 귀한 배추다. 텃밭에서 배추를 뽑아 꽁다리를 자른다. 김장의 첫딱지다.
김장하는 날 아침 6시쯤의 모습이다. 탁자 위에는 텃밭에서 뽑은 배추를 깨끗이 씻어 가르고, 천일염을 넣은 소금물에 하루 절인 후 물기를 꽉 짠 절임 배추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탁자를 약간 기울게 한 건 물기가 빠지게 하기 위함이다.
빨간 고무대야엔 오래된 나무 주걱으로 저은 걸쭉하고 시뻘건 기본양념이 담겨 있다. 다른 빨간 고무대야엔 흙 묻은 얼굴을 깨끗이 세수한, 푸른 무청과 뽀얀 무가 달린 총각무도 담겨 있다. 총각김치로 변신할 준비를 마친 상태다.
김장 날 새벽의 고요함 속에 김장 준비는 조용히, 잔잔하게 이어진다. 김장 준비하는 과정이 지난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찹쌀 풀에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간 즙을 넣은 모든 김치의 기본이 되는 양념이다. 할머니 때부터 써 오던 나무 주걱으로 양념을 휘젓는다. 세월의 손때가 묻은 나무 주걱이다. 뜨거운 콩물이나 사골 국물을 저을 때도, 메주콩을 삶아 뒤집거나 많은 양념을 저을 때 등 다양하게 사용한다. 어머니 손의 기운과 정성이 나무 주걱에 전해져 모든 음식을 맛깔나게 해준다. 어머니의 요술 주걱이자 사랑이다.
기본양념에 새우젓, 달여서 식힌 황석어젓, 멸치 액젓, 간수 뺀 굵은 천일염, 매실액, 설탕, 썰어 둔 갓, 쪽파 등 재료를 모두 넣고 골고루 섞는다. 간을 봐가며 멸치 액젓, 소금, 설탕 등은 추가한다. 기본양념에 여러 재료를 넣어 간을 맞춘 김장 양념이 준비되었다. 김치 담그는 일만 남았다.
사랑과 정을 나누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김장'을 "겨우내 먹기 위하여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담그는 일. 또는 그렇게 담근 김치."라고 뜻풀이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청의 '유네스코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 김장 문화'에 대한 글을 보면 "김장은 지역과 세대를 초월해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한국인들이 이웃과 나눔의 정을 실천하며, 결속을 촉진하고 한국인들에게 정체성과 소속감을 준다는 점과 비슷한 천연재료를 창의적으로 이용하는 식습관을 가진 국내외 다양한 공동체들 간의 대화를 촉진함으로써 무형유산의 가시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고, 김장 문화는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 ‘ 김치 담그기’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코로나19로 예전처럼 주변 이웃들이 품앗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신 가족들이 함께 모여 담그니 시간도 줄이고 수고스러움도 던다. 김장을 준비하는 과정도 담그는 일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님을 새삼 느낀다.
김칫소가 준비되었으니, 본격적으로 김치 담그기 시작한다.
소금물에 절여 물기를 뺀 절인 배추 꽁다리를 손질해 김칫소가 담긴 매트에 넣어 준다. 절인 배추에 김칫소를 차곡차곡 꼼꼼히 넣은 뒤 배추를 접고 겉잎으로 배추를 감싼다. 담근 배추를 절단면이 위로 가게 꼭꼭 눌러 통에 담고 우거지로 맨 위에 덮는다. 김장의 끝이 보인다.
직접 농사지은 식자재와 또 다른 분들의 정성이 담긴 식자재, 가족들의 화합이 담긴 김장 김치는 함께 담은 가족들도 싸가고 김장 못 한 가까운 친척들에게도 보내진다. 본가에 남은 김치는 겨우내 익혀지며 밑반찬이나 국, 탕, 찌개, 만두의 재료 등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김장 김치는 사랑과 정을 나눈다.
어머니는 집 텃밭에서 기른 배추는 '산 배추'고 판매하는 절인 배추는 '죽은 배추'라고 부른다. 산 배추를 뽑아 씻고, 절이고, 김칫소를 넣어 담근 김장 김치가 점심 밥상에 오른다.
빨간 양념에 하얗고 노란 배추와 푸른 갓이 보이는 포기김치를 길쭉하게 찢어 맛본다. 갖은양념에 버무려졌지만, 밭의 기운이 그윽이 남아 있는 배추의 풋내가 싱그럽다. 아삭하게 씹히며 시원한 맛을 낸다. 김칫소로 넣은 통통한 갓도 푸름을 잃지 않고 사각사각 씹힌다. 알싸한 풍미도 그대로다. 고춧가루 양념과 젓갈의 맛은 아직 여리다.
식물성 재료의 풋내와 동물성 재료의 감칠맛이 잘 어우러지며 숙성되면 시나브로 맛은 더 깊어지고 개운한 감칠맛의 발효음식으로 변신할 것이다.
가족들의 손맛과 화합으로 담근 김장 김치에는 사랑과 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맛을 논하는 거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