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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Dec 24. 2023

손자장을 아시나요?

손자장을아시나요는 경상북도교육청 상주도서관 앞 대로변에 있는 중국집이다. 40여 년 업력의 남 사장님이 1982년 개업하였다. 수타로 뽑은 면 음식과 탕수육, 볶음밥 등이 대표 음식이다.


간짜장을 주문한다. 세 칸의 그릇에 담긴 국내산 김치, 춘장, 양파, 단무지가 먼저 식탁에 자리를 잡는다.


단무지 하나를 씹는 순간 주방에서 잘바닥거리는 소리가 난다. 남 사장님이 면을 치대는 소리는 귀를 자극하며 어릴 적 개울가에서 물장구 치던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면을 치대는 소리는 멈추고 다른 소리로 이어진다. '치지직' 무언가가 볶아지는 소리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간짜장을 아는 뇌는 채소와 춘장이 기름에 볶아지는 소리를 그려낸다.


잠시 후 모든 소리가 잠잠해지고 귀와 뇌로 그려낸 음식이 식탁에 놓인다. 채소 듬뿍 넣어 만든 검은빛 간짜장 양념과 하얀색의 수타면이다. 춘장의 색을 간직하며 기름과 채소를 보듬은 ''은 반지르르하다. 찬물에 본연의 흰색 전분까지 씻어낸 ''은 꾸밈없다. 기름진 ''과 담백한 ''이 뚜렷하다.


젓가락을 들었던 손이 멈칫거린다. 젓가락을 식탁에 내려놓는다. 무의식적으로 손이 ''으로 향한다. 오른손으로 두세 가닥을 집어 입에 넣는다. 입술에 따뜻한 온기와 촉촉함이 스친다. 어금니로 씹는다. ''은 저항하지 않고 제 몸을 스르르 풀어낸다. 부들부들하다. '꿀꺽' 목구멍은 어금니가 백을 즐길 여유를 주지 않고 빨아들인다. 목멤을 느끼기엔 ''이 적었다. 감질남을 느낀 뇌는 눈을 ''으로 돌린다. 손은 ''이든 그릇을 들고 ''에 붓는다.

 


백에 흑이 포개진다. 기름진 검은 간짜장 양념이 첨가제 사용 없는 순수한 손면을 빼앗기 전이다. 젓가락으로 골고루 섞는다. 흑과 백이 섞이며 먹음직스러운 갈빛을 만든다. 간짜장 양념의 고소함도 구석구석 스며든다.


한 젓가락 크게 뭉쳐 입으로 밀어 넣는다. 뜨거운 기운이 만든 고소함이 코끝과 입술을 간지럽힌다. 손면은 어금니를 스치고 목구멍으로 미끈하게 넘어간다. '꿀떡'이란 부사가 순식간에 완성된다. 한 번 더 어금니를 통과한 목 넘김은 이어진다.


다음 젓가락질은 수타면의 물증인 끝부분이 두툼한 면과 굵기가 고른 면을 합쳐 어금니로 씹어 본다. 합쳐진 손면의 전체적인 식감은 폭신폭신하다. 어금니는 눈으로 확인한 굵기의 차이를 명확하게 느낀다. 존득함과 졸깃함 그 중간의 씹힘이다.


면을 노리던 젓가락질이 멈추고 그릇을 본다. 양념 묻은 파, 양파, 돼지고기, 양배추 등 건더기들이 조금 남았다. 숟가락에 담아 먹는다. 기름에 춘장과 채소들이 볶아지며 뽑아낸 감칠맛과 단맛, 짠맛이 어우러진다. 면과 함께 씹혔던 식감도 여전하다. 손면의 부드러움에 대조되는 양배추의 식감이 도드라진다.


하얀 그릇엔 가무린(몰래 혼자 차지하거나 흔적도 없이 먹어 버린다.) 물증으로 흑백이 섞여 만든 갈빛만이 남는다. 손자장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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