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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Feb 21. 2024

강된장+보리밥=낙원의 맛?

낙원강된장보리밥은 화성시 송산면 사강시장 안에 있다. 상호처럼 보리밥 전문점이다. 중년의 여성 두 분이 운영한다.


서빙하시는 여성분이 왼손으로 음식운반 카트를 밀고 온다. 8년 전에 뇌경색이 오셔서 오른쪽이 마비되셨다고 한다. 걸음걸이도 자연스럽고 말씀도 어눌하지 않지만, 휴유증으로 아직도 오른손으로 수저를 들지 못한다고 한다. 손님으로 온 남자분 한 명이 자신도 2년 전 뇌경색이 왔다며 얘기를 나누는 걸 들어 알게 되었다.


식재료는 국내산을 사용하며 식품첨가물 사용을 절제한다. 산나물도 직접 채취하여 사용한다고 한다. 8개월 정도 쉬다가 다시 문을 열었는데도 단골분들이 꾸준히 찾아 준다고 한다.


국내산이 적힌 원산지 표시판에서 맛의 기대치가 한껏 오르고, 메뉴판 밑 ‘공기밥 무한리필’이라 쓴 글씨에서 넉넉한 밥 인심을 느낀다.


식당을 찾았을 때가 5월말인데 날이 후덥지근했다. 정수기 시원한 물을 한잔 마시려고 하는데, 차게 먹지 말라며 보온 통에 담긴 따뜻한 보리차를 내준다.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가 엿보인다. 따뜻한 배려로 속을 달래고 강된장 보리밥을 주문한다.

 

잠시 후 나무 식탁에 강된장보리밥 한상이 차려진다. 대접 옆 공깃밥에선 하얀 김이 오르며 구수함을 코에 전달한다. 갈빛 보리와 흰 쌀을 섞어 지은 밥은 반지르르하다.


한 숟가락 떠 입에 넣는다. 구수함을 코에 뺏긴 보리밥은 폭신폭신하고 가슬가슬한 질감이 뒤섞이며 어금니를 놀리고, 쌀밥은 사이사이 보드랍게 씹히며 담백한 단맛을 혀에 은은하게 쟁여둔다.

 

검은색 뚝배기에는 콩알갱이가 보이는 된장, 우렁이, 청양고추를 넣어 빡빡하게 끓여낸 강된장이 담겨 있다. 젓가락으로 우렁이 하나를 집어 강된장에 찍어 맛을 본다. 짭짤하고 구뜰하다. 들부드레한 강된장에 존득하게 씹히는 담백한 우렁이살과 칼칼한 청양고추도 맛을 더한다.


하얀 국그릇엔 우무 콩국이 담겨 있다. 날이 더워 국대신 내준 듯하다. 콩물에 채 썬 오이, 우뭇가사리, 검은깨를 넣었다. 오른손으로 그릇을 잡고 입에 가져가 후루룩 마신다. 콩 국물이 진하고 고소하다. 담백하고 미끈한 우뭇가사리와 향긋하고 아삭한 채 썬 오이의 식감이 입속에서 대조를 이루며 뒤섞인다. 자연스럽게 쉬고 있던 왼손도 그릇으로 향한다. 두 손으로 잡고 쭈욱 들이킨다. 건더기와 콩물이 꿀꺽꿀꺽 넘어가며 마음마저 개운해진다.


시원함을 간직하고 눈을 돌려 찬들을 훑어본다. 단풍나물, 명아주, 취나물 무침, 버섯, 고구마 줄기 무침, 들깨에 버무린 머윗대 무침, 마늘종 무침, 총각김치 등 밑반찬이 하얀 접시에 얌전하게 담겨 있다.


젓가락으로 조금씩 집어 맛만 본다. 식재료 본연의 맛에 알맞게 양념한 찬들은 거북스럽지 않다. 식품첨가물 사용을 절제하며 지복점을 찾았다. 삼삼하고 고소하고 알싸하고 맵고 아삭하다. 맛매와 식감으로 입안이 흐뭇하다.


보리밥과 밑반찬을 번갈아 가며 맛을 봐도 좋지만, 대접에 넣어 비벼 먹는게 보리밥집의 정석이다.


강된장+보리밥=낙원의 맛?


대접에 보리밥을 담고 밑반찬으로 나온 버섯과 나물, 강된장을 넣고 참기름을 살짝 둘러 골고루 비빈다. 고추장도 준비 돼 있지만 넣지 않는다. 짭짤한 강된장이 식재료와 섞이며 담박해진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씨는 "비빔밥은 2개 이상의 문화가 같은 공간에서 충돌,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문화를 맛본다. 가칠한 보리밥, 보드랍고 담백한 쌀밥, 존득한 우렁이, 졸깃하고 부드러운 나물무침 등 다양한 식감과 구수한 맛, 고소한 맛, 들큼한 맛, 은은한 향과 쌉싸래한 맛 등으로 입안이 풍성해진다. 서로 다른 문화들이 슬며시 느껴지기도 하지만 뭉텅 그려지며 새로운 문화로 포개진다.


손놀림은 빨라지고 시나브로 은색 대접 바닥이 드러난다. 밥 한 톨 남지 않았다. 맛깔남의 물증이다.


낙원의 맛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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