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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Jul 06. 2024

토렴한 국수를 맛본 적 있나요?

공주 청양분식

청양분식은 공주 산성시장 먹자골목에 있다. 1967년에 개업한 노포 국숫집이다. 어머니 대를 이어 막내딸이 국수를 삶고 있다. 메뉴는 진한 멸칫국물에 토렴한 잔치국수와 비법 양념에 버무린 비빔국수가 대표 음식이며, 여름 메뉴로 콩국수를 맛볼 수 있다. 계절에 따라 배추김치와 열무김치, 깍두기 등을 밑반찬으로 내놓는다. 잔치국수는 6,000원, 비빔국수와 콩국수는 7,000원이다. 대는 보통보다 1,000원씩 비싸다.


배추김치, 열무김치, 무김치, 고추, 콩 등 식재료는 국내산을 사용한다. 일요일 휴무이며 산성시장 장날(1, 6일장)과 겹치면 월요일에 쉰다.


청양분식은 초행길에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산성시장도 구경하고 현지 분들과 상인분들에게 물어보며 찾아갔다. 시장 내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하얀 바탕에 파란색 글씨로 쓴 ‘청양분식’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상호 아래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잔치국수 전문’이라 쓴 글자도 보인다. 여름 메뉴인 콩국수도 빨간 글씨로 써 달려있다. 식당 출입문에도 빨간 글씨로 콩국수, 잔치국수, 비빔국수가 적혀 있다.


출입문 앞 좌측 솥 2개는 국수 삶을 때 사용하고, 우측 솥 2개에는 육수가 끓고 있다. 우측 솥 앞으로는 노란 종이에 포장된 국수 뭉텅이가 쌓여있다.


출입문을 열고 빈자리에 앉는다. 식탁에 놓인 직접 끓인 진갈색 보리차를 마신다. 시원하고 구수하다. 식탁 번호가 적힌 종이 메뉴판이 보인다. ‘잔치국수(보통)’에 망설임 없이 ‘V’ 자로 체크하고 종업원에게 전달한다.


정감 어린 보리차를 한 잔 더 마시고 토렴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식당 밖으로 나온다.


출입문 좌측 솥 끓는 물에 국수를 삶고 있다. 삶은 면을 건져내 찬물에 헹군 후 스테인리스 대접에 담아 육수가 담긴 솥 앞에 놓는다. 황금색 솥에는 진갈색 육수가 펄펄 끓고 있다. 육수는 질 좋은 멸치와 잡내를 잡고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볶은 보리와 옥수수, 구운 생강, 마늘, 양파, 파 등을 넣는다고 한다.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강한 불에 끓이고 불을 줄여 한 번 더 끓이면 육수가 완성된다. 육수를 자세히 살펴보니 멸치 부산물과 마늘 부스러기 등이 눈에 띈다.


육수를 보는 사이 여사장님이 대접에 담긴 면을 왼손으로 잡고 구멍이 뚫린 국자 모양의 체망에 면을 붓는다. 면이 담긴 체망을 끓는 육수에 푹 담근다. 면은 다시 대접으로 옮겨지고 육수로 몇 차례 토렴한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육수를 대접에 가득 붓는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지만 50여 년 넘은 내공의 힘이 느껴진다.


토렴의 국어사전 설명을 보면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함.”이다. 밥을 토렴하는 모습은 여러 번 봤지만, 국수를 토렴하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다.


출입문을 열고 다시 자리로 간다. 보리차 한 잔을 더 마시며 눈으로 본 토렴의 과정을 머리로 그려본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주문한 잔치국수와 겉절이, 깍두기가 식탁에 놓인다. 잔치국수를 담은 대접 위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따뜻함은 눈으로, 진한 멸치 향은 코를 거쳐 뇌로 전달된다.


대접에 담긴 잔치국수를 훑어본다. 진갈색 멸칫국물에 토렴한 뽀얀 면 위로 송송 썬 푸른색 대파, 검은 김 가루, 갈색 깻가루, 빨간 다진양념, 하얀 다진 마늘 등이 한 자리씩 차지하며 고명으로 얹어져 있다. 하얀 그릇에 담긴 겉절이와 깍두기도 빨간색을 보탠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곱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뇌는 눈맛에 화답하며 입안에 군침이 돌게 한다.


고명과 다진양념을 섞지 않고 뜨끈한 국물만 한 술 떠먹는다. 진하고 시원하다. 멸치의 감칠맛이 은은하게 혀와 코를 간지럽히며 입맛을 당긴다. 몇 술 더 맛본다. 멸칫국물을 포용한 육수는 바다 기운을 담은 진한 감칠맛과 구수함으로 입안을 감친다. 뒷맛은 깔끔하다.


다진양념과 고명을 풀고 국수 면발을 함께 먹는다. 국물은 간간해지며 매운맛과 감칠맛이 풍부해진다. 한 젓가락 국수를 휘감아 입으로 밀어 넣는다. 국물이 밴 순하고 부드러운 면발이 입술을 살포시 스치며 후루룩 넘어가 순식간에 목구멍을 미끄러져 내장으로 향한다. 입술, 어금니, 혀, 입천장, 식도는 한통속이었다. 입속 친구들은 참새 떼 덤비듯 함께 움직이며 면을 '꿀꺽' 삼켜 버렸다.


젓가락으로 국물을 휘휘 젓는다. 일반 잔치국수 면보다 굵은 면을 크게 집어 입에 넣고 천천히 씹는다. 어금니는 뜨거운 물에 삶아 찬물에 여러 번 씻고 토렴한 국숫발의 알맞은 식감을 눈치챈다. 촉촉한 온기가 더해져 얌전해지며 숙부드럽다(물체가 노글노글 부드럽다). 어금니에 맞서지 않을 만큼의 보드라운 찰기. '존득하다'란 형용사보다 끈기가 덜한 질감이다. 면에 묻힌 멸치의 감칠맛이 그윽하다.


멸치 기운을 품은 국물과 알맞게 삶아진 매끈하고 촉촉한 면이 술술 넘어간다. 함께 달려온 아지작대는 대파는 국숫발의 부드러움과 포개지며 화합의 씹는 맛을 어금니에 선사한다. 김 가루와 깻가루는 감칠맛과 고소한 풍미를 더하고 다진양념과 다진 마늘은 매운맛과 아릿함으로 맛의 변주도 준다.


밑반찬으로 나온 겉절이와 깍두기를 곁들여 먹는다. 아삭아삭한 식감과 신맛은 부드럽고 담백한 국수 면발의 식감과 어우러져 씹는 재미와 함께 입맛을 돋운다. 몇 가닥 남은 국수를 먹고 남은 국물을 쭉 들이켜 마무리한다. 배부르고 후련하다.


잔치국수는 시장의 수수한 서민 음식이다. 맛도 그렇다. 토렴한 노포의 국숫발 한 가닥 한 가닥엔 정성과 소박한 맛이 길게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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