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진미식당
진미식당은 익산 황등풍물시장 부근 대로변에 있다. 진미식당의 역사는 1931년 조여아 창업주가 익산 황등장터에서 비빔밥과 선짓국밥을 팔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창업주의 딸인 원금애 대표와 외손자인 이종식 현 대표까지 3대 90여 년 대를 이어 운영중이다.
진미식당은 한 그릇씩만 토렴해 비비는 비빔밥의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비빔밥에 들어가는 육회는 매일 오전 일찍 당일분만 준비해서 판매한다. 비빔밥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장은 직접 만들어 숙성시킨 것만 사용하며, 인기 메뉴 중 하나인 선짓국도 잡내를 없애 풍미를 높이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
진미식당은 토렴하여 비벼낸 황등비빔밥의 원조 격으로 알려졌으며 전라북도 백년가게 중 가장 오래된 식당으로 착한가게, 향토음식점, 대물림맛집으로도 선정되었다.
대표 음식인 토렴육회비빈밥은 육회 양에 따라 특과 일반으로 나뉘며 육회를 먹지 않는 손님을 위해 토렴고추장소불고기비빈밥, 토렴간장소불고기비빈밥도 판매한다. 선짓국밥, 육회, 날씬이고구마순대도 맛볼 수 있다.
2016년 첫 방문 후 2024년 6월, 8년 만에 다시 찾았다. 건너편 도로에서 식당을 바라본다. 외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간판은 식당의 역사를 보여준다. 식당 좌측 본래 있던 식당의 헌 건판은 그대로고 확장한 옆 건물 우측 간판은 바뀌었다. 2018년 백년가게로 선정되며 상호 좌측에 백년가게 전용 엠블럼을 상호 위에는 ‘황등비빔밥’ 옆으로 ‘원조’ 글자가 더해졌다.
출입문을 밀고 들어선다. 바로 식당으로 연결되지 않고 커피 자판기가 놓여 있는 작은 휴식 공간이 있다. 익산시 지정 대물림맛집 소개 글과 백년가게 엠블럼, 향토지정음식 지정업서 푯말이 보인다. 한쪽 편으로 먼지에 싸인 사진이 눈에 띈다. 창업주 할머니와 딸, 외손자의 모습이 찍혀 있다. 90여 년 식당의 역사가 담긴 사진이다.
신발을 벗고 식당 안쪽으로 들어간다. 남자 직원분이 인사를 건네고 몇분인지 물어본다. 혼자라 답한다. 자리를 안내해 준다. 자리에 앉아 6년 전처럼 토렴 육회비빈밥을 주문한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점심시간 전인데도 손님들 10여 명이 식사하고 있다. 식당 한쪽에 상장과 지정서, 확인서, 홍보용 사진 등이 보인다. 1973년 영업 신고증 뒤로 창업주 할머니 그림이 특히 인상적이다. 식당 주방 위에 쓰인 대물림 이야기를 6년 전 맛의 기억을 떠올리며 읽어본다. 음식 전수 사연과 황등비빔밥의 특징이 적혀 있다.
식탁에도 “enjoy the 1931 original"로 시작하는 진미식당 이야기가 적혀 있다.
“한 그릇씩 사골 국물에 토렴하고 양념을 넣어서 외할머니의 방식을 고집하며 밥을 비비고 10번의 과정과 50번의 손길을 거쳐 만들어낸 정성 가득한 비빔밥이라는 내용과 모든 조리 과정을 직접 해서 부부가 주방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여러 과정을 거쳐 만들어 지기 때문에 주문이 밀릴 경우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 있으니, 손님들의 많은 양해와 이해를 부탁드린다”는 글이다.
글을 다 읽을 즘 남자 직원분이 주문한 토렴 육회비빈밥을 식탁 위에 차려주며 비빔밥 그릇이 뜨거우니 조심하라고 말을 건넨다. 옆 손님 중 한 명이 그릇에 데어 손에 빨간 자국이 남은 걸 본 후라 직원분 말이 귀에 쏙 들어온다.
식탁 위에 차려진 토렴 육회비빈밥 상차림을 눈으로 즐긴다. 네모난 나무 받침에는 연근 샐러드, 호박 무침, 깍두기, 열무물김치, 미역무침 등 밑반찬을 하얀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 내준다.
검붉은 선지와 국물색을 닮은 무가 담겨 있는 선짓국에선 김이 올라온다. 따뜻함의 물증이다. 검은 받침에 얹어진 비빔밥 그릇엔 알록달록한 고명이 얹어져 있다. 겉으로 봐선 뜨거워 보이지 않는다. 직원분 말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손을 그릇 근처로 가져가 본다. 한겨울 후끈하게 달아오른 난로의 열기만큼은 아니지만 비빈밥을 뜨겁게 달군 불기운이 손에 전달된다.
숟가락을 들고 잠시 머뭇거린다. 색감 고운 비빈밥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숟가락은 선짓국으로 향한다. 맑은 기름이 떠 있는 흐릿한 갈색 국물만 한술 뜬다. 따뜻하고 구수하다. 몇 차례 더 국물을 맛본다. 사골국물과 선지, 무, 토렴한 밥알의 전분이 배어나고 스며든 국물 맛이 깊고 특별하다.
숟가락으로 큼지막한 선지와 무를 조각 내 놓은 후 국물과 함께 먹는다. 다양한 국물 맛을 머금은 선지와 무는 폭신하고 보드랍게 씹힌다. 선지 한 조각을 더 먹으며 머릿속엔 비빈밥 생각만 가득하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비빔밥 그릇으로 눈을 집중시킨다. 색감이 곱다. 주방에서 3대 주인장 부부가 손을 맞춰가며 토렴 육회비빈밥을 만드는 모습이 보인다.
토렴 육회비빈밥은 대접에 밥과 콩나물을 넣고 사골국물을 부어 몇 차례 토렴한다. 밥알 하나하나에 국물의 다사로운 온도와 맛이 배어들며 식감과 풍미를 한층 돋운다. 사골국물에는 밥과 콩나물의 전분과 시원한 맛이 더해지며 깊은 맛을 낸다. 토렴한 밥에 직접 만든 고추장과 간장, 고춧가루 등 갖은양념을 넣고 잘 섞이게 비빈 후 소고기 우둔살 육회를 중앙에 올리고 채 썬 당근 나물, 메주콩, 채를 썬 상추, 직접 구운 생김가루, 무나물, 고사리나물 등을 빙 둘러 담는다. 육회 위에 청포묵과 채 썬 노란 달걀지단을 얹고 깨와 참기름을 뿌린다. 대접은 따뜻하게 불에 데워 내준다. 3대 90년 전통의 토렴 황등육회비빈밥이 완성된다. 창업주 할머니가 처음으로 시도했던 방식 그대로다.
이미 주인장이 밥은 비벼서 내주지만 손님도 고명을 섞어 비벼야 한다. 숟가락으로 비빌까? 젓가락으로 비빌까? 기분 좋은 선택의 순간은 손님의 몫이다.
손에서 숟가락을 내려놓고 젓가락을 집어든다. 고명으로 얹어진 무나물을 살며시 옆으로 밀어낸다. 고명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던 양념에 비벼진 빨간 밥알과 노란 콩나물 대가리가 드러난다. 손은 다시 숟가락으로 바꿔 잡고 고명과 비빈밥을 섞는다. 비빌수록 검은 받침과 대접이 부딪치며 덜거덕 소리는 커진다. 대접은 손으로 잡으면 안 된다. 옆 손님의 빨갛게 덴 자국을 떠올리며 골고루 뒤버무린다. 눈에는 빨간색과 노란색이 도드라진다. 대접속 제각각 색을 내던 고명들은 조금씩 먹음직스러운 빨간 비빈밥을 닮아간다. 빨간빛이 많아졌지만, 푸른 채소의 싱싱한 빛과 육회의 짙은 붉은빛, 뽀얀 청포묵은 한결같이 본연의 색을 드러내고 있다. 먼저 눈으로 담아둔 고명의 색감을 처음 위치와 다른 곳에서 발견한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눈과 귀로 본 맛은 뇌로 전달되고 6년전 추억의 맛을 그려낸다. 선짓국물 한술 뜬다. 이제 본격적으로 추억의 맛으로 여행할 시간이다.
크게 한술 떠 입에 넣는다. 사골국물에 토렴 후 비법 고추장 양념으로 비빈 밥알은 부드럽고 촉촉하다. 간이 고루 배어있고 온도도 알맞다. 다양한 나물과 육회, 청포묵도 제각각의 맛과 향, 질감을 잃지 않고 입안을 풍성한 맛으로 기껍게 한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씨는 "비빔밥은 2개 이상의 문화가 같은 공간에서 충돌,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했다. 비빈밥, 육회, 사골국물 토렴의 맛이 한데 어우러지며 제3의 맛을 만들어 낸다.
'새로운 문화'를 몇 번 더 맛본다. 서로 다른 문화들이 슬며시 느껴지기도 하다가 새로운 문화로 포개진다. 먹을수록 계속 당긴다. 어느새 새로운 문화는 사라지고 밥알 하나 없는 대접 바닥만 덩그러니 남는다. 따뜻하게 데우며 그을린 검은 빛과 빨간 양념의 흔적만이 비빈밥의 맛깔스러움을 증명한다. 혀만 자극하는 옅은 맛이 아닌 100년 가까이 대를 잇는 깊은 맛의 남다른 비빈밥이다.
주인장이 카운터가 아닌 주방을 지키는 황등비빔밥. 한 그릇씩 사골국에 토렴 후 양념하고 정성껏 비빈 비빈밥. 열 번의 과정과 약 오십 번의 손길을 거쳐 한 그릇이 완성되는 토렴 육회비빈밥.
3대째 이어가는 백 년의 손맛과 정성이 가득한 비빈밥 한 그릇에서 6년 전 추억의 맛에 ‘따뜻함’과 ‘알맞음’을 아로새긴다. 3대 백년가게 비빈밥을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