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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Jun 15. 2024

목덜미를 타고 흐른건 전일 마신 술이었다?

해장의 또 다른 전설이 시작된다, 전주 미가옥

미가옥 본점은 전주시 효자동 3가 기전여고 뒤편에 있는 콩나물국밥 전문점이다. 식당 앞에 공영주차장이 있어 주차 환경이 좋다. 아침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영업하며 월요일은 쉰다. 이른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전주 콩나물국밥의 전설 격인 삼백집, 현대옥, 왱이집 등에 비해 업력(15년)은 짧지만, ‘미가옥’ 상호처럼 맛은 꿀리지 않는다. 전주 콩나물국밥계의 떠오르는 신흥 강자다.


콩나물국밥 단일 메뉴이며 삶은 오징어를 한 마리(6,000원) 또는 반 마리(3,000원)로 주문할 수 있다. 500원에 수란도 추가할 수 있다. 콩나물과 밥은 요청하면 더 내준다. 주문할 때 맵기 선택도 가능하다. 술은 판매하지 않지만, 인근 편의점에서 사다 마실 수 있다고 한다. 해장하러 왔다가 술에 취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전일 안면 있는 대폿집과 가맥집에서 술을 마셨다. 사우나에서 온 냉욕으로 몸을 풀고 해장하러 미가옥 본점을 찾는다. 전주 순환 시내버스 3-1번을 탄다. 네이버 지도 앱이 알려준 기전중·기전여고 정류장에 내려야 하는데 깜박하다 한 정거장 더 가 척동네거리에서 내렸다. 네이버 지도 앱으로 미가옥을 찍으니 627m, 979걸음이라고 알려준다. 나중에 찾아보니 기전중·기전여고 정류장에서는 650m, 1,013걸음이다. 결과적으로 23m, 34걸음 빨리 미가옥에 다다른다.


미가옥 본점은 다세대주택들이 밀집한 끄트머리 공영주차장 뒤에 있다. 출입문 위에 검은 글씨로 크게 쓴  ‘미가옥’ 간판이 걸려있다. 상호 좌측 위에는 ‘콩나물국밥전문점’, 우측 위에는 한문으로 ‘미가옥(未家屋)’이 빨강 바탕에 흰색으로 써있다.


출입문 좌측에는 파란색 리본이 7개 붙어 있다. 국내 최초의 맛집 안내서 ‘블루리본 서베이’에서 제공한 블루리본 스티커다. 가까이 다가가 본다. 제일 아래가 2014년 리본이고 제일 위는 2023년 리본이다. 공인된 맛집보단 꾸준함이 돋보여 맛의 기대치가 오른다.


중앙 출입문 좌측 위에는 세스코 멤버스 마크가 부착돼 있고 우측 위에는 노란 바탕에 빨간 글씨로 크게 ‘영업중’이라 쓰여 있고 아래엔 검은 글씨로 작게 ‘미가옥 콩나물해장국’이라 썼다. 휴무일과 영업시간도 적혀 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측 벽에 달력이 걸려 있다. 월요일이 휴일임을 알리듯 10, 17, 24 날짜 위에 기, 휴, 일이란 쓴 종이가 붙어 있다. 3일에는 종이가 안 보인다. ‘정기휴일’ 단어가 완성되려면 ‘정’ 자가 쓴 종이가 붙어 있었을 거로 보인다.


오전 10시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선다. 내부에는 ‘ㄴ’자 형태의 은빛 스테인리스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다. 1m 정도 폭을 두고 앞은 손님의 공간이고 뒤는 주인장의 공간이다. 어중된 시간임에도 들고 나가는 손님이 제법 많다. 출입문 바로 앞 ‘ㄴ’자 꺽이는 부분 끝에 앉는다. 오징어를 시킬까 잠시 머뭇거리다 콩나물국밥만 주문한다. 김이 담긴 통과 무장아찌, 무말랭이무침, 깍두기가 담긴 그릇을 먼저 내준다.


물 한 잔을 정수기에서 떠 와 먹으며 식당 안을 살펴본다. 열린 주방이 환히 보인다. 앉은 자리 바로 앞으로 은빛 솥이 하나 있다. 뚝배기들이 잘박하게 담겨 따뜻한 물에 데워지고 있다. 온기를 잃지 않게 하려는 배려가 엿보인다.


우측 뒤 화구에는 육수를 끓이는 은빛 솥이 두 개 걸려 있다. 옆으로 빨간 통 세 개도 보인다. 작은 두 개의 통에는 고춧가루가 담겨 있다. 맵기가 다른 고춧가루로 보인다. 큰 통에는 삶아둔 콩나물도 보인다. 참기름 통과 수란을 담는 밥그릇, 밥이 담긴 큰 양푼도 놓여 있다. 수란과 콩나물국밥이 만들어지는 뒷공간이다.


육수가 끓는 솥 앞 스테인리스 테이블엔 커다랗고 긴 나무 도마가 놓여 있다. 주인장 자매 중 한 분이 야채를 자르고, 다지고, 찢는다. 콩나물국밥의 풍미를 돋우는 채소 다짐이 만들어지는 곳이자 손님들에게 보는 재미를 선사하는 앞 공간이다.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담아 내기까지 손품이 많이 든다. 최적의 동선과 분배로 만든 공간에서 주인장 자매분은 각자 맡은 일을 묵묵히 재빠르게 해나간다. 젊은 여자분 한 분도 수란에 참기름을 바르고 손님상 뒤처리 및 계산 등 한몫 거들고 있다.


손님들이 앉은 스테인리스 테이블  뒤쪽으로 2인석 테이블 3개와 식당 맨 끝으로 4인석 테이블 1개도 보인다.


벽에 붙은 원산지 표시판을 본다. 오징어만 원양산이고 나머지 식재료는 국내산이다. "신선한 야채로 즉석에서 요리해 드립니다."란 문구도 눈에 띈다. 문구의 내용은 눈과 귀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콩나물국밥 조리 모든 과정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 보고 듣고 맡는 재미가 쏠쏠하다. 열린 공간이 주는 안정감과 푸근함은 집밥 먹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더하여 좋은 식재료와 위생 등에 대한 믿음도 깊어진다.


여주인장이 내가 앉은 자리 앞 솥을 연다. 따뜻하게 데워진 뚝배기를 육수가 끓는 솥단지 옆으로 가져간다. 뚝배기에 식혀둔 밥을 담고 삶은 콩나물을 얹는다. 국자로 육수를 퍼 담는다. 왼손으로 뚝배기를 비스듬히 기울여 잡고 오른손에 든 국자로 건더기를 누르며 국물만 솥에 따른다. 두어 차례 토렴을 한 후 고춧가루를 뿌리고 다진 채소를 넣는다. 육수를 뚝배기가 찰랑거리게 부어 마무리한다. 콩나물국밥이 완성되면 뚝배기를 받침대에 얹고 밥공기에 담은 수란과 함께 손님상에 내준다.


먼저 내준 김과 밑반찬에 콩나물국밥과 수란이 더해지며 콩나물국밥 차림이 완성된다. 은빛 스테인리스 테이블에 알록달록 색감이 곱게 번진다.


수란이 담긴 은빛 밥공기에 달걀흰자와 노른자가 뚜렷하다. 참기름도 들어간 수란에 콩나물국밥 국물을 여러 번 떠 붓고 김을 찢어 넣는다. 숟가락으로 고루 섞는다. 오른손으로 밥공기를 잡아 입을 대고 수란을 들이켠다. 보드랍게 입술과 키스한 흰자와 노른자가 식도를 타고 내장으로 흐른다. 공복과 술에 지친 속을 따뜻하게 애무해 준다. 시원한 감칠맛과 고소함은 입속에 여운을 남긴다.


수란을 단숨에 먹어 치운 후 자연스럽게 콩나물국밥으로 눈을 돌린다. 검은 뚝배기 세상 위에는 맑은 바다가 흐르고 여름의 신록처럼 푸름이 넘실거린다. 말간 바다 위에는 대파와 청양고추 두 나라의 다른 푸른색이 연합하여 제일 많은 영역을 지배한다. 대파 나라의 한 부족인 흰색은 푸른색 영토 곳곳에 섞여 있다. 고춧가루 나라는 작은 영토지만 빨간색으로 뚝배기 중앙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뽐낸다. 마늘 나라의 흰색도 뚝배기 한편의 공간을 자기 영역으로 삼았다. 바닷속 숨겨진 나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 검은 뚝배기 세상의 모습이다.


두 손으로 뚝배기를 감싼다. 따뜻함이 손을 거쳐 뇌로 전달된다. ‘알맞다’란 단어가 생각에 머무는 사이 손은 숟가락을 집어 들고 있었다. 푸른 나라를 한쪽으로 밀며 맑은 바다만 한술 뜬다. 바다에 뛰놀던 멸치와 건어물로 우려진 진한 감칠맛이 스나미처럼 혀와 뇌로 밀려든다. 국물만 몇 차례 더 먹는다. 감칠맛 뒤로 시원함이 입과 내장을 너울거린다. 늙은 단골 이발소에서 이발 후 머리를 감겨주는 노련한 이발사의 손길처럼  술에 지친 속을 산뜻하게 어루만져준다.


바다만 맛본 뚝배기 세상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숟가락으로 휘저어 바다 위 모든 나라를 섞는다. 바다는 빨갛게 물들여지고 모든 나라는 뒤섞인다. 혼돈의 시작은 바닷속에 살던 다른 나라를 수면 위로 드러낸다. 하얀 몸통과 노란 머리를 가진 콩나물 나라와 아기 엉덩이처럼 뽀얀 밥 나라이다. 바다와 함께 뚝배기 세상을 떠받치고 있던 나라들이다.


크게 한술 떠 입에 밀어 넣는다. 구수하고 시원한 국물의 첫맛 뒤로 깔끔한 매운맛과 감칠맛이 잔잔하게 흐른다. 넉넉하게 올려진 길고 가느다란 콩나물을 꼭꼭 씹는다. 어금니는 ‘사각사각’이란 어찌씨(부사)를 콩나물 모양의 쉼표를 찍어가며 각인한다. 고소하고 산뜻한 즙은 혀에 고인다. 익지 않은 생파와 다진 마늘은 국물과 섞이며 알싸한 향과 단맛으로 풍미를 더한다. 청양고추는 매운맛으로 김치는 시금하게 맛의 변주를 준다. 국물에 단맛에 내주고 알맞은 온도와 찰기를 얻은 토렴한 밥알들이 따뜻한 국물을 머금고 촉촉하고 보드랍게 씹힌다. 콩나물국밥은 잘 짜인 연극처럼 주·조연이 어우러지며 맛의 완성도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밑반찬도 곁들여 먹는다. 무장아찌, 무말랭이무침, 깍두기 등 무 삼총사다. 같은 식재료를 삭히고 건조하고 발효하여 만든 맛들이 기분 좋게 콩나물국밥과 어우러진다. 식감은 덤이다. 소금과 기름기 적은 김은 밥과 콩나물에 싸서 먹는다. 국물이 스며든 김의 감칠맛이 혀를 농락한다.


코를 박고 콩나물국밥을 먹는 수저질이 바빠진다. 이마에 살짝 흐른 땀을 딱으며 열린 공간을 바라본다. 세분의 여자분이 보인다. 한분은 뚝배기에 밥과 삶은 콩나물을 담아 토렴하고 육수를 붓는다. 한분은 도마에서 대파와 청양고추를 썰고, 마늘을 찢는다. 제일 젊은 여자 한분은 수란이 담기는 밥 그릇에 기름칠도 하고 식사한 손님상 처리를 하며 주문을 받는다. 1m 떨어진 스테인리스 테이블 안쪽의 공간은 분배와 규칙적인 동작으로 콩나물국밥을 만들어낸다. 날래면서도 느긋함이 느껴진다.


조리 과정을 두 눈으로 다시 확인하고 뚝배기로 눈길을 돌린다. 눈길은 멈추지 않는 수저질로 이어진다. 콩나물국밥은 그윽한 감칠맛의 시원한 육수와 알맞게 삶아진 콩나물의 고소한 맛과 식감, 즉석에서 손질한 싱싱한 푸성귀의 향과 맛, 토렴한 국물의 다사로운 온도등이 세 여성의 손맛에 녹아들며 어우러진다.


받침대에 뚝배기 세상을 비스듬히 걸친다. 바다는 고춧가루의 빨간 나라로 뒤덮이고 흔적들만 남은 다른 나라들이 둥둥 떠다닌다. 조금 남은 바다를 마저 먹는다. 모든 나라들은 모두 사라지고 세상의 시작이었던 검은색만이 오롯이 남는다.


온몸은 향과 식감, 맛으로 남실댄다. 손님의 배는 영화 속 이티처럼 볼록해지고 온 내장은 환하게 풀어진다. 목덜미로 살며시 땀이 흐른다. 목덜미를 타고 흐른 건 땀이 아니라 전일 마신 술이었다. 해장이 완성되며 전주 콩나물국밥의 또 다른 전설이 시작된다. 맛집의 상호를 단 미가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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