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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롱이 Jun 22. 2024

간판도 없고 순대도 없지만?

신설동 순대국집은 ​서울 용두초등학교 건너편 골목 안에 있다. 따로 간판은 없고 창문에 순대국, 머리고기란 빨간 글씨가 보인다. 11시쯤 들렸다. 여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준비 중이라 11시 40분쯤 오라고 한다. 선농단 답사 후 12시 조금 넘어 다시 찾았다. 다시 와 보니 일손 도와주는 아주머니 한 분이 더 계신다. 여사장님은 식사 내내 돼지 머리 고기를 깔끔하게 손질한다.


중간에 좁은 주방을 두고 양옆으로 손님들 앉는 자리가 있다. 좁고 허름한 내부는 내가 앉은 1인용 옆자리만 빼고, 만석이다. 연세 계신 분들이 많아 보였는데 먹다 보니 찾아 오는 손님 연령층이 다양하다. 식사 마칠 때까지 여성 손님은 보지 못했다.


메뉴는 순댓국과 머릿고기 두 가지다. 순댓국을 주문한다. 뚝배기에 밥과 돼지머리 고기를 듬뿍 담아 국물을 토렴해 붓고 썬 대파, 다진양념, 들깻가루, 후추가루를 얹어 내준다. 순댓국이 아니라 돼지머리 국밥이다.​


순대국이라 식당 창문과 메뉴판에 쓰여 있고 손님들도 순대국 달라고 주문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순대는 보이지 않는 순댓국이다. 기성품 당면순대만 넣어도 순댓국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 하다.


순댓국을 주문한다. 뚝배기에 쌀밥과 돼지머리 고기를 넉넉하게 담아 국물을 토렴해 붓고 썬 대파, 다진양념, 들깨, 후춧가루를 얹었다. 돼지 뼈와 돼지머리 고기를 넣어 육수를 우려낸듯하다. 기름기 적은 옅은 갈색빛이 돈다. 은은한 육향의 구수하고 맑은 국물이다. 간은 삼삼하다. 곁들여 나온 새우젓 약간만 넣으면 적당하다. 다진양념, 들깻가루, 후춧가루를 섞기 전의 국밥이다. 준수한 맛의 돼지머리 국밥이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맛이다.


다진양념, 들깻가루, 후춧가루를 밥과 함께  섞는다. 돼지 잡내를 잡기 위한 양념과 향신료다. 붉고 진한 갈색빛으로 바뀐다. 매운맛, 고소한 , 알싸한 맛이 뒤섞인다. 간도 맞춰지고 감칠맛도 더해졌다. 매칼한 청양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다. 입안을 개운하게 해준다. 어떤 맛을 선택할지는 손님 각자의 이다. 대부분 손님은 섞어 먹는다.


국물 속의 밥도 한술 뜬다. 알맞은 온도의 국물맛이 스며든 부드러운 밥알이 술술 넘어간다. 토렴의 덕이다.


돼지머리를 삶아 식히고 손질한 후 국물로 토렴한 돼지머리 고기도 맛본다. 살코기에 비계가 적당히 붙어 있다. 촉촉하고 보들보들하다. 짭조름하면서 단맛이 나는 새우젓에 찍어 먹기도 하고 알싸한 마늘, 김치 등도 곁들여 먹는다.


순대 없는 순댓국이다. 순대 대신 돼지머리 고기가 넉넉한 돼지머리 국밥이다. 이름이야 뭐라 부르던 푸짐한 양에 손님의 배는 두둑해지고 토렴의 맛은 입안을 휘감친다. 간판도 없는 순댓국집이 창문에 쓰인 빨간 글씨처럼 내장에 또렷하게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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