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정순순대
정순순대는 익산 중앙시장에 있다. 어머니에게 음식을 배운 아들 부부가 운영하는 피순대 전문점이다. 50년 넘은 업력을 자랑한다.
돼지 창자에 선지로 속을 꽉 채운 피순대와 돼지 내장, 돼지머리고기등을 넣은 순대국밥과 모둠 피순대를 맛볼 수 있다. 돼지고기 육수에 토렴한 순대 국수가 별미이다.
중앙시장은 익산 여행하며 몇 차례 들려서 시장길이 익숙하다. 어렵지 않게 정순순대를 찾아간다. 식당 출입문 좌측에 입간판이 보인다. 상호와 대표 음식인 순대국밥과 국수가 쓰여 있다. '45년 전통'이란 글씨도 보인다. 방송 출연한 사진 옆에 작은 글씨로 'Since 1970.2.7'이라 쓰여 있으니, 실제론 50년 넘게 영업 중이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간다. 들어서자마자 좌측으로 주방이 보인다. 남 사장님이 모둠 피순대에 들어가는 돼지 부속과 피순대를 썰고 계신다. 가마솥엔 황톳빛 육수가 끓고 화구에는 검은 뚝배기가 뜨거운 열기에 달궈지고 있다.
식당 내부가 기차 객실처럼 가운데 공간을 두고 길쭉하다. 빈자리에 앉는다. 메뉴판은 보지 않는다. 미리 결정해 둔 순대 국수를 주문하며 조미료 없이 내달라고 부탁한다.
순대 국수는 삶아 둔 국수사리, 피순대, 돼지 내장과 비계가 섞인 머리 고기 등을 체에 담고 밤새 고운 사골 육수에 따뜻하게 데운 후 뚝배기에 담는다. 말간 육수로 여러 번 토렴 후 뚝배기 가득 국물을 담고 썬 대파, 다진양념 등을 얹어 마무리해 내준다.
생부추무침, 깍두기, 김치, 새우젓등 밑반찬도 함께 차려진다.
순대 국수가 담긴 검은 뚝배기 안이 알록달록하다. 뽀얀 육수 도화지에 선지가 듬뿍 들어간 피순대는 짙은 초콜릿색으로, 국수사리는 또렷한 하얀색으로, 돼지 부속은 옅은 갈색빛으로, 대파는 흰색과 싱싱한 푸른빛으로, 양념장은 진한 빨간색으로 추상화를 그려냈다. 눈으로 본 추상화에 입안은 군침으로 화답한다.
숟가락을 들어 바탕이 되는 국물만 떠 몇 차례 먹는다. 깔끔하고 맑은 첫맛 뒤로 옅은 구수함과 감칠맛이 은은하게 입안을 휘감친다. 눈으로 확인하진 않았지만, 묵묵히 시간과 정성을 들여 사골을 고아낸 만든이의 수고스러움이 내장 깊숙이 전해지며 속이 환해진다.
젓가락으로 바꿔 잡고 큼직한 피순대를 집는다. 돼지 대창에 선지를 빼곡히 넣은 호남의 피순대다. 입을 크게 벌려 밀어 넣고 씹는다. 돼지 대창이 졸깃하게 어금니를 놀린다. 동시에 진득하고 보드라운 초콜릿으로 입안이 풍성해진다. 잡내 없는 피 맛은 고소하다. 눈으로 본 당근, 파 등 채소와 당면은 어금니에 존재감을 뽐내기엔 양이 적다.
면발 한 가닥만 집어 먹는다. 하얀색처럼 담담하다. 다진 양념을 푼다. 육수 도화지가 붉게 물든다. 국수와 건더기들을 휘저은 후 국수를 다시 맛본다. 얼큰하고 간간하면서도 구수함이 묻힌 면발이 입술을 살포시 스친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후루룩 넘어가 혀에 착착 감긴다.
돼지 부속과 머리 고기를 국수사리와 함께 먹는다. 쫀득함과 졸깃함 사이의 조금씩 다른 돼지고기의 식감에 보드라운 국수가 더해지며 어금니를 희롱한다. 중간중간 썬 대파도 사근사근 씹힌다.
달달하고 아삭한 깍두기, 시금한 김치, 짭짤한 새우젓, 푸릇하고 알싸한 생부추 무침도 국수와 곁들여 먹는다. 풍미를 돋우고 맛의 변주도 준다.
피순대, 국수, 돼지 내장과 머리 고기, 사골 육수, 밑반찬 등을 고루 섞어 먹다 보니 어느새 뚝배기 바닥이 드러난다. 가벼운 한 끼 식사나 속풀이로도 그만인 순대 국수다.
식당 내부에 붙은 “1970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1970은 창업 연도 이다. 꿈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허름하고 작은 식당에서 고즈넉이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며 손님들의 마음은 따스하게 녹여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