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ssy Apr 16. 2023

장미꽃이 세 개의 봉오리를 맺었다

난 정말 식물 키우기에 소질이 없는데..

 식물 키우기에 소질이 없다. 한국에 살 때 친정엄마와 같은 라인 각각 1층, 9층에 살았는데 베란다를 정원처럼 가꾸신 엄마와 달리 난 식물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운 사람이었다.


간혹 우리 집에 방문하신 엄마는 화분 하나 없는 우리 집이 적막해 보였는지 이쁘게 꽃이 핀 난을 하나 갖다 주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만 물을 주면 된다는 지침을 주시면서.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주 1회 물 주기를 했는데도 난초는 곧 비실비실 시들어갔고 언제 다녀가셨는지 엄마는 곧바로 긴급구호에 들어가셨다. 영양제를 주고 물도 챙겨주고.. 그러게 진즉부터 못 키운다고 말씀드렸거늘.. 그 후론 일주일에 물을 한 번씩만 주면 되는 난조차도 병들게 한다며 나무라시며 다시는 우리 집으로 내려보내지 않으셨다.


우리 가족이 인도네시아로 이사 온 지 벌써 8년. 나의 식물에 대한 재능은 변함없이 예전 그대로고 키울 엄두도 내지 않았다.


주말에 남편이 종종 자전거를 타고 저 아래 동네까지 운동삼아 다녀오는데 꽃을 파는 곳을 발견했나 보다. 장미꽃이 세 송이나 피어있는 화분 하나를 사 왔다. 사 왔으니 화는 못 내고 속으로 '내가 무슨 장미를 키운다고.. 그렇다고 자기도 돌보지 않을 거면서..' 하며 곧 죽어가게 될 장미를 불쌍히 바라보았다.


그 장미는 뒤뜰 가운데 작은 벽돌들을 치우고 심어졌고 어쨌거나 왔으니 최대한 건강하게 지내주길 바랐다. 비료를 주지는 않았고 그냥 쌀을 씻고 남은 쌀뜨물을 받아다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쏟아주곤 한 게 전부다.


얼마 지나지않아 세 송이의 장미가 시들어감과 동시에 가지도 잎사귀도 비실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그런데 요 근래 꽃대가 하나 멀대처럼 올라가더니 빨간 장미가 활짝 피며 자태를 맘껏 뽐낸 후 시들어가길래 너무 긴 꽃대 하나를 잘라 주며 자세히 살펴보니 새순이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비실거리던 모습은 어딜 가고 너무 생생해졌다. 그러더니 꽃봉오리가 세 개나 달렸다. 세상에.. 내가 해준 거에 비해서 너무 활기차게 자라주는 장미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꽃봉오리를 세 개나 단 장미가 이제 제법 나무같이 커졌다.


앞뜰에 인도네시아 고추인 짜베도 얼마나 많이 달리는지 지인들 따주고, 나도 따서 요리에 넣어도 먹고 그래도 감당이 되지 않아 냉동까지 시켜놨는데 아직 한가득 열려있다.

짜베가 많이 열렸다.

짜베나무 앞의 커다란 파파야도 열매를 제법 달았는데 하나는 벌써 20cm가 넘을 정도로 커졌다. 한국에 있는 언니에게 말하니 김천에서 딸기인지 포도인지 살구인지 농사를 지을 준비 하는데 한국 들어와서 같이 하자고 난리다. 아이고 농사가 얼마나 어려운 건데.. 


그나저나 인도네시아에 있는 지인들도 나더러 소질 있다고 난리다. 소질? 한 게, 해준 게 없는데?생각해보니 그냥 식물들이 주인이 못 미더워 스스로 건강하게 자라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

작가의 이전글 귤에 씨가 있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