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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Sep 07. 2022

결혼과 태풍 매미와 추석 그리고 시댁

2000년 11월 20대 후반의 나이에 결혼을 했다. 남편은 함께 결혼을 잘 만들어 갈 노력보다는 결혼했다는 현실로부터 도피라도 하고 싶은 듯 회식과 술과 좋아하는 운동에 흠뻑 빠져있었다.


맞벌이 부부인데 어찌 남편의 생활은 바뀐 게 하나 없고 나만 두배로 바빠진 느낌이다. 외롭지 않으려고 한 결혼이었는데 결혼 전보다 훨씬 더 외로워졌다. 늘 혼자였고 멀쩡한 정신의 남편을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2년을 만나왔는데 왜 난 이 남자가 주당인걸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된 건지.


2001년 12월 말 첫 아이가 태어났다. 자궁에서의 환경이 나빴는지 아이가 너무 예민하다. 한 번에 세 시간 이상 자질 않는다. 아들 손주를 기다리시던 시어머니는 딸아이의 탄생이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시댁은 논농사 짓는 아주 시골 지역에 위치했고 큰 도시에서 살진 않았지만 줄곧 아파트에서 살아온 나는 한 달에 두 번씩 차로 두 시간 남짓 가는 시댁이 편하지 않았다.


2003년 추석 바로 다음날인 9월 12일 저녁 8시 시댁이 위치한 경남 고성에 매미가 상륙했다. 시골집 흙 지붕은 무너질 듯이 흔들렸고 당장 지붕이 무너져 깔려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우리 가족은 추석 음식 준비하느라 추석 전날 새벽에 도착해 벌써 사흘 밤을 보내는 중이었다. 가뜩이나 예민한 아이는 낮엔 시끌벅적한 식구들 소리에 잠 못 들고 새벽 2~3시경 내 등에 업힌 채 겨우 잠들면 어김없이 새벽 5시에 시어머니의 고함소리가 온 집안을 뒤흔들었다.


뒷방에 누워 계신 시할머니를 나무라는 소리다. 젊은 시절 시할머니께 구박을 좀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같은 시각에 같은 톤의 목소리가 매일 반복되었다. 포대기도 풀지 못한 채 내 등에서 엎드 겨우 잠들어 있던 아이는 그 고함소리에 또다시 깨서 운다. 지옥이 따로 없다.


제발 집에 좀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매미가 강타한 거다. 아침이 되니 온 집안이 난리법석이다. 추수할 벼가 매미에 모두 쓰러져 버린 거다. 난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 그때 그 심각성을 잘 이해 못 한 것도 있지만 나흘째 잠을 못 자고 있는 아이는 죽을 듯 넘어간다.


나도 이제 한계치에 달았다. 아이도 나도 죽을 것 같았다. 삼남이녀중 셋째인 남편은 농사일에 있어 꼼꼼함은 부족하나 속도는 있는 편이라 쓰러진 벼를 세우는데 더욱 그의 손이 절실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나흘째 잠 못 자고 게다가 아이를 업고 시댁 일까지 해야 했던 나와 내 딸아이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남편은 일하다 너무 목이 마른 지 잠시 집안으로 들어와 목을 축였고, 자지러지듯 우는 아이를 업은 나는, 그를 보자마자 이성을 잃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제발 좀 집에 가자!!"


한 번도 그렇게 소리를 질러본 적이 없었던 내가 그러니 남편도 당황했는지 논에 뛰어가서 간다고 말만 하고 바로 짐을 챙겨 차를 운전했다.


논에는 시부모님과 큰아들 막내아들 큰사위까지 있었지만 쓰러져 있는 벼를 그냥 두고 가려는 일 잘하는 셋째 아들을 보고 화를 참을 수 없으셨는지 욕설이 섞인 분노의 고함을 지르시는 시어머니. 손녀의 울부짖음은 며칠째 들은 적이 없으신 건지 우는 소리를 나무라기만 하셨지 걱정의 말씀은 하신 적이 없다.


이러려고 결혼한 게 아닌데.. 왜 결혼과 동시에 내 인생이 대역죄인 같은 삶으로 추락해버렸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도리가 없다. 내가 제발 결혼해달라고 사정한 것도 아닌데.. 이럴 거면 차라리 결혼을 반대하시지..


이쁨 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매미 사건 이후로 나는 더욱 미움을 독차지하게 됐고, 사흘 나흘을 자고 와야 하는 명절이 다가오면 한 달 전부터 심한 몸살 기운에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차라리 회사에 비상이 걸려 24시간 철야근무를 하면 감사하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매미급 힌남노가 추석 즈음 오니 그날의 악몽이 다시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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