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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Sep 24. 2022

인도네시아에서 승품심사를 받다(2)

인도네시아인들의 품새 실력에 놀라다


인도네시아인 사범님의 아담한 수련장에서 몇 번의 연습을 마친 후 알려주신 <스튜디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국의 국기원에 영상을 보내야 하니 <스튜디오>로 가서 찍나 보다 생각했다.


 트랜스 마트 몰 안 4층 이라는데, 4층 안 어디인지 정확한 장소는 알려주지 않았다. 왓츠앱으로 다시 한번 문의했지만 승품심사 준비로 바쁘신지 답이 없다. 일단 주차하고 올라가 보면 뭐가 있겠지 싶어 몰 안으로 들어갔다. 무빙워크와 에스컬레이트를 번갈아 타며 4층 목적지에 도착했다.


넓은 공간에 롤러코스터가 다니고 거대 공룡도 보이는 게 트랜스 마트 안의 놀이공원이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승품심사를 한다는 스튜디오라는 곳을 찾다 다녔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드디어 하얀 도복, 파란 도복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 도복 바지를 보자 아이가 살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디 계셨는지 아까 만난 사범님께서 구석진 곳을 가리키며 이쪽에서 함께 연습하면 된다고 하셨다. 모두 파란 바지에 까만 띠다. 아이는 그쪽 그룹에서 몸을 풀고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승품심사 위주가 아닌, 훈련이 위주라는 건 시작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고강도 수련을 하지 않은지 오래였던 아이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잠시 쉬는 시간에 물을 마시러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서 말했다.

"엄마, 이거 뭐지? 무슨 분위기지? 이제 1장부터 8장 끝났는데? 이건 아직 시작도 안 한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나도 남편도, 함께 승품심사  온 또 다 가족도 모두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시 물 마시고 두 아이는 또다시 아까 몸 풀고 태극 8장까지 하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고려. 태백. 금강을 마쳤다. 웬일인지 힘들어하는 아이의 모습에 대한 걱정보단 멋지게 품새를 해내는 인도네시아 수련자들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몇 년 전, 한국 인도네시아 공동으로 개최된 70주년 독립기념일 행사가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있었다. 그때 현지인들의 멋들어진 태권도 시범을 봤을 때도 조금 놀라긴 했지만, 여기 외곽지역에서 현지인 사범님 지도하에 이렇게 멋지게 품새를 하는 모습은 너무 감동적이고 심지어 조금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매트가 깔려있지 않은 타일 바닥에서 맨발로 수련을 하긴 처음이라 발바닥에 불난다며 쉬는 시간마다 아이는 난리다. 하지만 품새 사범님께서 이름을 부르면 또 즉시 달려가 수련에 합류한다. 가벼운 승품심사만 생각했던 우리 두 가족은 놀랐지만 불평보다는 현지인들의 실력에 감탄을 하며 넋을 놓고 있다.


사진으로 제대로 담아내고 싶었지만 내 떨어진 사양의 휴대폰으론 그 멋진 역동적인 동작을 잡아내기 역부족이었고 동영상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온 우리 두 가족 외엔 모두 인도네시아인들이라 한 번 찍어 보겠다고 휴대폰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한국인 아줌마의 모습도 그들 눈엔 볼 만했을 테다.


놀이공원에 6살 아들을 데리고 온 현지인 아줌마가 나에게 다가와서 묻는다. 여기 아들을 등록시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나도 처음 왔지만 아는 만큼 최선을 다해 알려주었다. 우리나라 태권도 수련을 원하는 거니까.


그러고 보니 부모님과 아이들이 많이 오는 놀이공원이 있는 층의 공간을 매주 토요일 오후 네시에 태권도 수련장으로 쓴다는 건 사범님의 대단한 광고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따로 조금은 좁은 공간에서 수련하는 까만 띠와 별도로, 보다 넓은 공간에는 흰띠 수련자도 많이 보였다. 흰띠 연령층도 유아들부터 성인들까지 다양했다. 좋은 각도에서 전체 사진을 찍기란 쉽지 않았다. 전체 공간을 수련장으로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반 정도 예상 못한 훈련을 마치고 드디어 승품심사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이미 힘이 다 빠졌다. 처음 갔던 사범님의 아담한 수련장에서 태극과 금강을 연습하는 아이의 체력소모를 왜 걱정하셨는지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몇 명의 승품 대상자 심사 후, 우리 두 한국 아이의 심사가 시작되었다. 고려. 태극, 금강을 모두 했다. 적어도 틀리진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돌려차기로 송판 깨기는 수련 공백 탓인지 이미 소진된 체력 탓인지 잘 되지 않았다.


드디어 두 시간여의 훈련과 심사가 모두 끝났다. 내심 집에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면 토요일마다 와서 수련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이 생겼다. 내 맘과 달리 아이는 이럴 줄 몰랐다며 죽을 것 같다고 난리다.


모두 신발을 신고 다니는 몰 바닥에서 맨발로 두 시간 동안 수련했으니 발바닥은 이미 까만색 덧신을 신은 듯 새까맣다.   몇 년 만에 운동다운 운동을 한 건지.


품새 교정을 온라인으로만 받다가 제대로 받은 것도 너무 좋았고, 멋지게 해내는 현지인 수련자들의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토요일 시간이 될 때마다 와서 이들과 함께 수련하면 참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뒤로한 채 우리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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