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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Nov 14. 2022

아프면 아프다고 말이라도 해줘야..

엄마가 자기 딸이 아픈 줄도 모르다니

한국에서 홀로 지내는 큰 아이가 요 며칠 연락이 뜸했다. 다른 집들처럼 우리 모녀는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목소리를 들으면 5분 안에 잔소리가 시작된다며 자랑거리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 아이가 주로 먼저 연락을 해온다. 내가 먼저 보이스톡이나 페이스톡이라도 할라치면 학교에서 수업 중이거나, 친구들과 함께 있거나, 과외 수업하러 간다며 거의 90% 이상 제대로 된 연결은 실패다.


얼마 전 숙모가 과외자리 하나 소개해준다고 아이랑 통화도 했다길래 근황은 확인되었으니 바쁜가 보다 하고 그냥 뒀다. 그래도 평소와 달리 한동안 뭐 해 먹었다는 사진도 보내주지 않는 것에 의아하긴 했다. 도저히 더 이상은 못 참고 먼저 연락을 했다. 금요일 아침 9시인데 아직 자고 있단다.


아이고.. 다시 게으름 피우기로 한 건가?

그래서 농담 반 진담으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늦게 일어나면 벌레도 못 잡고 굶어 죽을 수도 있다.

  항상 깨어 있어라. 작은 변화도 감지할 수 있도록>

이런 말들을 보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어쩜.. 아직도 잔다고? 저렇게 게을러서야.. 뭐 자기가 한 만큼 책임만 지면 되니까'라고


그런데 일요일 아침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밀려왔다. 바로 다시 연락을 해봤다.

아뿔싸.. 한 일주일 많이 아팠단다. 이제 정신이 좀 든단다. 너무 미안했다. 엄마가 돼서 자기 아이가 아픈 것도 모르고 그냥 아이가 게을러진 거라 미리 짐작을 하다니..

나란 사람이 과연 엄마 자격이나 있는 사람은 맞는지.


그리고 아이가 원망스러웠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줘야지. 그런다고 비행기 타고 바로 날아갈 수는 없다 해도 도움 되는 음식이나 약이나 보조식품 같은 거라도 챙겨 보내줄 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 다 회복하고 나서 알려주면 어쩌란 말인가 싶었다.


작년 7월 코로나 델타 변이에 감염돼서 생사의 기로에 섰던 적이 있었다. 예약해둔 한국행 비행기는 취소해야 했고 아이에게 아빠 회사 사정으로 못 가게 됐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홀로 지내는 아이에게 가족이 모두 델타에 감염되어 못 간다는 말을 사실 그대로 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인도발 델타 변이가 강타하고 있었다. 하루 한 명씩 한인 희생자가 나오고 있었고, 내가 직접 아는 지인만 해도 두 분이나 돌아가셨다. 심지어 그중 한 분은 큰 아이 고등학교 당시 국어 선생님이셨다. 인도네시아 일일 사망자 수만 해도 작년 7월 중순부터 매일 1천 명을 넘어가더니 7월 28일에는 2천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족 세명중 나는 호흡곤란과 산통에 비할만한 극심한 두통으로 행여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느껴야 했다.


차마 그런 사정을 한국에 홀로 있는 아이에게 전할 수는 없었다. 친정언니와 손위 시누이께 전했더니 내내 걱정돼서 연락을 해오셨다. 그 후 완전히 회복되고 나서야 큰 아이에게도 사실을 알렸더니 아이의 반응도 지금의 나와 같았다. 어떻게 가족이 아픈데 자기만 모를 수 있냐고..


가족이란 건 참 이상하다.

함께 있으면 성가신 일 투성이고, 서로 얼굴 붉히다가 다시 좋았다가를 반복하지만 멀리 있으면 늘 가슴이 아려온다.


소중한 내 딸아, 아프지 마라.

앞으로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생기면 지체 없이 연락해주길 바란다.

그게 가족이란 거다. 이렇게 해결된 후 알려주면 엄마 마음이 더 아프다.

앞으로는 엄마가 매일 연락해야겠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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