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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Jun 19. 2022

나무에서 새 집과 아기 새의 추락을 목격하다

새벽 운동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걷기 시작했다. 5시 10분. 아직은 어두워 집 앞만 걷다가 20분쯤부턴 슬슬 환해져서 단지 내 윗집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 봤다. 혼자 걷고 있었고 아직은 조금 어둑할 때라 살짝 긴장을 하고 있는데 나무 위에서 뭐가 '쿵'소리 내며 떨어졌다. 처음엔 커다란 돌인 줄 알고 누가 위에서 던졌나 싶어 깜짝 놀랐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새 집이었다.


혹시 안에 새 알이 있는 건 아닌지 깨지진 않았는지 걱정도 되고 무섭기도 했다. 조금 더 가까이 가 봤다. 떨어져 있는 새 집 안을 손으로 열어 들여다볼 용기는 나지 않았고 그냥 주변만 살펴보았는데 갓 태어난 듯한 아기 새가 있었다. 내가 떨어지는 걸 목격했으니 방금 떨어진 게 확실한데 어느새 개미들이 바글거린다.


인도네시아 개미들은 정말 후각이 뛰어나다. 음식물이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즉시 모여들어 나는  늘 작은 액체라도 흘렸나 관찰하고 곧바로 닦아내고 음식 쓰레기는 비닐봉지 안에 밀봉해서 버리기 바쁘다(여기는 한국처럼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수거하지 않는다.).


떨어진 아기 새에게서 어떤 냄새가 났을까? 개미들은 어디 있다가 이렇게 일사천리로 모여든 걸까? 저렇게 두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맨 손으로 안아 올리기도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무슨 조치는 취해 줘야 할 텐데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떨어진 나뭇잎을 주워 아기 새를 그 위에 올렸다.


아기 새가 계속 버둥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 떨어질까 조심조심 둥근 새 집 위에 올려뒀다. 최소한 개미로부터는 안전하라고. 그런데 아기 새는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버둥거리다 곧바로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어쩌나..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고민만 하다 주변을 조금 둘러보고 다시 돌아와 보니 아기 새가 없어졌다. 어디로 갔을까? 혼자서 어딜 가지는 못 했을 테고 개미들이 그렇게 순식간에 끌고 갔을 리도 없다. 어미 새가 물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을까? 그러고 보니 새 집이 떨어지던 순간 나무 위에서 파닥거리며 날아가는 큰 새를 본 것도 같다.


어미 새라면 새 집이 떨어질 정도로 세게 파닥 거리진 않았을 텐데 혹시 침범자인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다시 주변을 걸었다.


궁금증이 생겨 다시 그곳으로 가보니 이번에는 새집도 없어졌다. 떨어질 때 쿵 소리 날 정도로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둥지였는데 어디로 누가 옮겼을까 아니면 가져 간 걸까?


우리 집 쪽엔 고양이가 많아서 엊그제 새 둥지를 두 개나 물어다 놨더라고 도우미 아줌마 에카에게 들은 적이 있던 나는 혹시 고양이 소행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분명 그쪽에 고양이는 없었다. 숨어 몰래 염탐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기 새를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왔어야 했던 건 아닐까? 후회가 남았다. 예전에 동네 강아지로부터 공격을 받아 땅에서 허둥거리던 참새 같이 생긴 아이를 구해서 보살펴 준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갓 태어난 아기 새는 처음 봤고 생김새도 외계인 같이 생겨 어찌할 바를 몰라 시간을 허비했던 게 못내 아쉽다.


아기 새야, 부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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