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현재 사회를 누구나 살아가면서 남모르거나 말하기도 힘든 아픔이나 고통이 하나씩은 다들 존재하고 있다. 어떤 시대든 간에 어떤 사람이든 간에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이 있을 것이며, 그 안에서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자기가 했던 것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갈등이나 차이로 인해 또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달할 수 없는 목표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고질병들을 각자 다 앓고 있는 아픈 환자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많은 시간의 경과 속에서 꾸준히 고뇌하며 해결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아플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좌절감과 우울감에 잡아먹힌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아픈 청춘을 보내서 숨쉬기 힘들었던 그 옛날의 나를 닮았던 많은 이들을 위해서 쓴 글이다.
나는 삶에서 도망치면서 많은 방황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우리 집은 어렸을 때부터 가난과 가까웠던 집안이었기 때문에 다른 애들이 어려서부터 다녔던 학원을 단 한 번도 다닐 수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다른 애들처럼 피아노도 배우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시절을 겪고 나니 내게 주어진 이 환경에 불만이 조금씩 피어났다. 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나 가기 싫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나 나름대로 맞춰왔다고 생각했는데 공감하지 못하고 섞이지 못한 게 티가 났던 거 같았다.
그랬기 때문에 겉도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고 그들이 나에게 뒤를 돌렸다는 건 느낌이 아니라 확신으로 변할 때 나는 내가 아닌 우리 부모님을 원망했었다. 앞에서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애들처럼 학원도 다니고 용돈으로 버스비만 받는 게 아니라 자기 용돈으로 나가서 걱정 없이 놀 수 있는 환경을 가졌던 아이들에 대한 열등감과 느꼈던 슬픔은 돈 문제로 매번 싸우던 부모님에게 소리 없는 내 안의 아우성으로 토해내면서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마음으로 보내왔다.
그때부터 난 비관적인 사상을 가지고 살아왔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금전적 지원을 풍족하게 받는 애들이나 재능이 있는 애들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닌 평범함 이하의 낙오자라고 나 자신에게 이름표를 나한테 붙여서 무언가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는 척하면서 우울감에 허우적거리면서 나의 한계를 단정 지으면서 무언가가 따라가는 방식으로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내가 이룬 것은 없고 막연히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뒤돌아보니 내가 망가지고 뒤틀려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늦었다고 느껴서 좌절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 주위 사람들은 변해가고 성장하고 있는데 나는 성장하지 못한 채 계속 그 자리에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막막하기만 했다. 우울을 핑계 삼아서 남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칩거했던 게 2달이나 되었던 적도 있었고 어느 날 갑자기 우울감 때문에 내가 너무나도 싫어서 하던 일을 멈추고 뛰쳐나간 적도 많았지만, 뭐라도 하고 싶어서 읽었던 책들과 영화 등을 통해서 점차 우울 안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작지만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으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매번 도망쳐왔던 미래와 마주 보고 남이 보는 나를 위해서가 아닌 진정한 나를 위한 위로와 위안을 얻었기에 지금을 살아가고 있었기에 나처럼 아프기만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조금이라도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게 자그만 위로와 위안을 주며 아픔이 없을 수 없는 나와 너의 청춘이 뒤돌아봤을 때 웃음 지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의 신호탄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