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um by Weezer
상업적으로는 최전성기, 음악적으로는 최대 암흑기 중 하나. 멜로디는 건재하나,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음이 느껴지는 앨범은 그저 껍데기처럼도 들린다.
“가끔은 앨범이 그냥 별로일 때도 있다. 이 앨범이 그렇다”며 피치포크는 이 앨범에 10점 만점에 0.4점이라는 경이로운 점수를 던졌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앨범에는 그들의 유일한 빌보드 Hot 100 싱글 차트의 탑텐 히트곡인 “Beverly Hills”도 있고, 록 차트 1위를 거머쥔 라디오 히트 “Perfect Situation”도 있다. 심지어 유명 프로듀서 릭 루빈이 프로듀싱한, 미국 플래티넘 인증 앨범인데 말이다. 미국 대중들의 취향이 수준 낮은 것인가, 아니면 평론가들이 유독 짜증 나도록 깐깐했던 것인가. 들으면서 느끼는 Make Believe는 어쩌면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반부에 채워진 싱글들은 흥겹고, 그에 비하면 비교적 차분하게 가라앉은 편이지만 나머지 수록 트랙들도 멜로딕함은 여전히 유지된다. 늘 귀에 쏙 들어오던 후렴을 써왔던 탁월한 멜로디 메이커 리버스 쿼모의 역량은 여기서도 느껴진다. 드라이브하면서 그 배경음악으로 깔아놓고 듣기에 이토록 적절한 작품은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당신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Haunt You Everyday”를 끝으로 45분간 이어지는 열두 트랙의 재생을 마치고 나면, 과연 당신의 머릿속에 확실한 인상을 남기는 곡은 얼마나 되는가? 내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뚜렷한 흔적을 남기는 트랙들은 절반이 채 안 될 것이다. 그 절반 중의 절반도 아마 싱글로 선택된 곡들이겠지. 차라리 더 치열하게 별로였으면 상황이 낫겠다. 마치 릴 웨인이 피쳐링한 노래와 인도풍의 트랙이 어우러진 그들의 2009년 앨범 Raditude처럼 말이다. 아니면 당황스러운 EDM 스타일과 엉성한 모던 팝 사운드로 채워진 2017년의 Pacific Daydream 정도라도. 하지만 Make Believe는 둘 다 아니다. 그 앨범들만큼 구리지도 않지만, 그 둘 정도의 과감한 선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앨범을 관통하는 적절한 정서 또한 Make Believe는 놓치고 만다. 라디오 에어 플레이를 저격한 듯한 “Beverly Hills”나 얌전한 듯 과격한 “We Are All on Drugs”, 업비트의 “My Best Friend” 같은 트랙들과 멜랑콜리한 분위기로 리버스 쿼모의 (또다시) 혼란스러운 내면을 풀어내는 트랙들은 제대로 섞이지 못한 채 공존한다. 바로 앞의 앨범 Maladroit에서 느낄 수 있었듯이 위저는 약간의 산만함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밴드였다. 하지만 그들의 다섯 번째 작품은 그저 재미없이 단조로운 트랙들 속에 차트 포지션을 노린 노래들을 몇개 억지로 끼워 넣은 느낌을 걷어낼 수가 없다.
한마디로 매너리즘이다. Green 앨범과는 비교하지 말자. 그 앨범의 “무난함”은 치밀하게 의도된 것이었으니까. 위저의 다섯 번째 앨범은 데뷔 앨범 급으로 뛰어난 멜로디도 없으면서 그 어떤 모험심도 없이 라디오에서 흔히 흘러나올 대중 친화적인 프로덕션과 그것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어중간한 감성의 가사에 안주하고 만다. 유일하게 프로덕션 측면에서 돋보이는 것은 80년대 디스코 음악이 연상되는 “This Is Such a Pity” 정도가 전부다. 흥겨움과 우울함 사이에 걸쳐진 채 앨범이 가진 두 면의 유일한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차라리 과감하고 독창적인 시도를 하다 망쳐버린 음악이라면 이런저런 비판을 하면서 쓸 말도 많겠지만 이 앨범은 그런 대상도 되어주지 못한다. 그저 딱히 할 말 없이 별로인 작품이다. 가끔 생각 날 때 들을만하나 딱히 생각날 일이 없는 그런 앨범 말이다.
그래도 개성과 반골 기질을 대가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으니 등가교환인 셈일까. 어쨌든 Make Believe는 이렇게라도 위저 역사에 한 족적을 남긴 셈이다. 그래도 이후의 디스코그래피에는 잘 만든 앨범은 아닐지언정 언급할 거리가 있으면서 별로인 앨범들이 다시 등장하니, 본작이 리버스 쿼모에게 나름의 경각심은 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구려도 이렇게 할 말 없이 구리면 안 된다고.
(원 게시일: 20.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