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dicated Side B

album by Carly Rae Jepsen

by 감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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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잠겨있던 금고 문을 열고 나온 훌륭한 열두 곡의 아웃테이크들. 그녀는 이번에도 1년 동안 모인 기대감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매 앨범 세션마다 약 200여 곡을 제작하며 스스로를 다작가로 칭하는 칼리 레이 젭슨에게 Side B 프로젝트는 그녀의 커리어를 논할 때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되었다. 평단의 찬사를 받았던 새로운 팝 클래식 E • MO • TION의 발매 1주년을 기념하여 여덟 트랙 분량의 EP 작품 E • MO • TION: Side B라는 이름으로 훌륭한 아웃테이크들을 모아서 발매한 그녀의 행보에 팬들과 평단은 다시 한번 열광했고, 그녀의 금고에 쌓여있는 이렇게 탈락한 곡들이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2019년의 스튜디오 앨범 Dedicated로도 이어졌다. 음반의 발매 직후 이어진 인터뷰에서부터 이런 수요를 의식한 듯 Side B를 언급하던 칼리 레이 젭슨이 이번에 내놓은 것은 무려 12곡, 43분의 러닝타임으로 스튜디오 음반 급의 분량을 자랑하는 아웃테이크 모음집이다.


그리고 Dedicated Side B는 다시 한번 훌륭한 송라이터로서의 그녀의 역량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히 듣기 좋은 팝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3, 4번 자리에 쌍둥이처럼 붙어있는 “Felt This Way”와 “Stay Away”를 보자. 기본적으로 비슷한 구조와 거의 똑같은 가사를 가지고 있지만 미드 템포 R&B와 댄스 팝으로 나뉘는 편곡, 그리고 후렴에서 벌어지는 차이로 인해 각각의 정서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서로 닮아있으면서도 다른,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의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그녀는 간단한 몇 번의 터치로 능숙하게 그려낸다.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Summer Love”다. 그루브 넘치는 베이스 라인으로 시작해 테임 임팔라의 Currents 앨범을 연상시키는 사이키델릭한 신디사이저가 들어선다. 여기에 아바(ABBA)의 음악을 떠오르게 하는 디스코 스타일 브릿지까지 더해지니, 전형적인 시원한 분위기에 기대지 않는 훌륭한 여름 음악이 탄생했다.


전체적으로 Side B는 Side A보다 신디사이저 비트의 질감이 도드라진다. 닌텐도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 뿅뿅 거리는 사운드가 전면에 내세워진 “This Is What They Say”가 대표적인 예시다. 처음에는 귀를 지나치게 자극하는 것 같다가도, 금세 그녀의 매혹적인 보컬 속에 빠져가게 되는 트랙이다. 그전에도 칼리 레이 젭슨과 함께 작업했던 블러드 오렌지의 데브 하인즈가 참여한 곡인데, 여러 차례 그를 기용하는 그녀의 선택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뭇 몽환적인 분위기로 시작했다가 점점 리드미컬 하면서도 훵키한 신스 비트가 존재감을 과시하는 “Fake Mona Lisa”도 빼놓을 수가 없다. 2분대의 러닝타임이 아쉬운, 큰 흡입력을 가진 곡이다.


여전히 지배적인 소재는 뜨거운 로맨스이지만, 전작의 “Real Love” - “For Sure” - “Party for One” 못지않은 훌륭한 엔딩 시퀀스 “Comeback” - “Solo” - “Now I Don’t Hate California After All”에서 그녀는 자기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역설한다. 후렴에 의존하지 않는 유연함과 잭 안토노프 스타일의 부드러운 신스 프로덕션이 돋보이는 “Comeback”에서 스스로를 향해 돌아갈 것을 노래하던 칼리 레이 젭슨은 이어지는 댄서블한 Solo에서 혼자여도 행복할 수 있음을 강하게 외친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으나, 서로와 거리를 둔 채 홀로 있을 필요성이 대두되는 지금에 더 깊게 울리는 메세지다) 그리고 “LA Hallucination” - “Right Words Wrong Time”의 캘리포니아 서사의 종지부를 찍는 엔딩 트랙에서 이제 그녀는 사랑과 상처의 흔적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밤바다의 아름다움을 여유롭게 만끽한다. 비치 보이스식의 말랑말랑한 프로덕션과 저녁 해안가의 촉촉한 소리가 훌륭한 공간감을 조성하는 가운데 그 어느 때 보다 성숙한 정서가 피어난다.


물론 전형적인 즐거운 CRJ 표 팝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Dedicated Side B는 청량한 오프닝 트랙 “This Love Isn’t Crazy”와 앙증맞은 “Let’s Sort the Whole Thing Out”도 제공한다. 따로 노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B 사이드”라는 타이틀은 그것을 충분히 정당화한다. 애초에 각 잡고 만든 음반이 아니니까 말이다. 음반 단위의 통일감에 대한 부담이 덜어진 덕에 이 아웃테이크 프로젝트는 칼리 레이 젭슨의 재능을 다시 한번 증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녀는 이 가벼운 작품만으로 다른 팝 아티스트들의 노력 어린 산물을 손쉽게 뛰어넘는다.


(원 게시일: 20.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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