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um by Carly Rae Jepsen
휘발성 강한 버블검 팝의 틀 안에 갇혀버린 그녀의 잠재력. 역시 무엇이든 지나치게 서둘러서 좋을 것 하나 없다.
음반은 종종 작품보다 상품으로 전락해버리기도 한다. 메가 히트 싱글 “Call Me Maybe”로 2012년 전 세계를 점령하고, 연이은 아울 시티와의 듀엣 싱글 “Good Time”으로 탑텐 히트를 기록한 칼리 레이 젭슨에 대한 스쿨보이 레코즈의 수장 스쿠터 브라운의 발상은 간단했다. “말도 안 되게 히트한 싱글이 있으니, 이를 이용하면 앨범으로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겠다!” 칼리 레이 젭슨의 첫 인터내셔널 발매 음반에 깔린 저의가 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이는 당연한 시장 논리겠지만, 길게 가야 하는 아티스트의 생명력에는 결코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스쿠터, “Call Me Maybe”를 쓴 건 나예요. 그게 당신이 나랑 계약한 이유고.” 칼리 레이 젭슨을 차세대 팝스타로 만들기 위한 그의 열성적인 곡 조달에 그녀가 보인 반응이었다. 분명 커리어의 첫 단추부터 그녀는 훌륭한 싱어송라이터였지만 업계에서는 그것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칼리 레이 젭슨은 단순히 스타가 되어야 할 인물이었다. 누가 썼든지 상관없이 괜찮은 곡들을 그녀에게 건네기 바빴던 스쿠터 브라운은 웃기게도 그녀 자신이 직접 쓴 데모 곡을 보내면서 녹음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차마 웃지 못할 뒷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앨범은 명확한 계획보다는 “Call Me Maybe” 열풍에 탑승하려는 목표 하나만으로 서둘러서 제작되었다. 그동안 그녀의 이미지는 전형적인 디즈니 라디오 스타일의 틴 팝 아이돌로 굳어졌고, 전혀 음악을 기대할 수 없는 이런 이미지에 편승한 앨범은 역으로 미지근한 반응을 맛보았다.
“Call Me Maybe”와 더불어 유일하게 그녀의 2011년 Curiosity EP에 수록되었던 동명 트랙의 변화는 메인스트림 라디오 팝 시장을 겨냥하려는 레이블의 의도가 극명히 드러난다. 가사에 맞게 간결하고 깔끔했던 프로덕션은 새로운 프로듀서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억지로 화려해진 이펙트가 덧붙여진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뒤덮여버렸다.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애인에 대한 감정을 노래하던 칼리 레이 젭슨의 목소리는 강제된 업비트 분위기 속에서 갈 길을 잃었다. 앨범에 수록되기 한참 전에 본래 컨트리 트랙으로 시작했던 오프닝 곡 “Tiny Little Bows”도 이와 비슷하다. 샘 쿡의 “Cupid”를 샘플링한 참신한 시도가 느껴지나 7080 팝을 생각나게 하는 스트링 사운드를 빼면 전반적인 만듦새가 영 조악하다.
싱글의 히트를 철저히 의식하고 만들어진 앨범이었지만, Kiss는 정작 그 노래의 매력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당시 트렌드를 열심히 쫓으려고만 한다. EDM 사운드가 느껴지는 “Guitar String / Wedding Ring”이나 “Tonight I’m Getting Over You”는 굳이 그녀가 아니더라도 발에 차고 차도록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노래들이다. 특히 앨범의 마지막 싱글이었던 그 곡은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의 “Your Type”을 연상시키는 괜찮은 가사를 지니고 있으나 음악이 그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저스틴 비버와의 듀엣 곡인 “Beautiful”은 칼리 레이 젭슨을 대중에게 알린 것이 그(와 당시 그의 연인이었던 셀레나 고메즈)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상당히 불필요한 조합이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곡이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그저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만다. 가볍게 듣기 좋은 곡들임은 맞지만, 앨범은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나마 Tug of War 시절의 포크 팝 향기가 살짝 풍기는 “More Than a Memory”나 중독적인 훅의 “Turn Me Up”, 디럭스 에디션에 추가된 보너스 트랙 “Sweetie” 등의 멜로디만이 진부한 프로덕션의 벽을 뚫고 머릿속에 흔적을 남긴다. 아울 시티의 곡에 보컬로 참여한 캐치한 “Good Time”은 그녀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량을 드러내지는 못하나,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세 번째 싱글이었던 “This Kiss”는 거의 유일하게 미래 비전, 그러니까 E•MO•TION 이후의 칼리 레이 젭슨의 음악을 제시한다. 80년대 신스팝과 디스코 음악이 섞인 발랄한 팝 트랙은 비록 십대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단순한 가사가 흠이지만 그래도 그녀가 지닌 팝에 대한 이해도를 엿볼 수 있다.
그해 세상에서 가장 큰 싱글을 가졌지만 가장 큰 앨범을 손에 넣지는 못했다던 당시 매니저 스쿠터 브라운의 말처럼, Kiss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Call Me Maybe”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미미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칼리 레이 젭슨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상업적인 성공이 그녀를 아티스트가 아니라 단순한 팝 꼭두각시 아이돌로 만들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래도 이 앨범이 없었다면 아마 그녀는 팝 클래식 E•MO•TION을 비롯한 Side B, 그리고 Dedicated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디스코그래피를 꾸려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이 귀여운 하늘색/핑크색 앨범에 감사의 입맞춤을 건네야 할지도 모르겠다. 칼리 레이 젭슨을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인디 달링으로 만들어 준 배경에는 네가 있었다고.
(원 게시일: 20.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