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matica

album by Lady Gaga

by 감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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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복귀한 댄스 플로어. 오로지 흥겨운 댄스 음악으로만 차려 놓은 거대한 무대이지만, 본인이 들고 온 거대하고 심오한 컨셉에는 미치지 못한다.

“나를 집으로 데려가 줘/나를 원더랜드로 데려가 줘.” Alice에서 레이디 가가는 이렇게 간청한다. 그리고 이렇게 엇갈린 듯 보이는 두 문장의 대치는 다시 댄스 팝으로 회귀한 그녀의 행보와 맞닿아 있다. 그녀에게 파격과 기괴함은 결코 낯선 영역이 아니다. 데뷔 초 무수한 논란거리로 파격의 아이콘에 자리에 오르며, 끝없이 대중의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던 이가 바로 레이디 가가였다. Cheek to Cheek과 Joanne, 그리고 영화 <A Star Is Born>을 통해 기성세대 음악의 디바로 발돋움하려는 듯이 보였던 그녀는 다시 한번 익숙한 “이상한” 나라로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가 아는 레이디 가가로서의 복귀작 Chromatica는 꽤 성대하다. 가장 크게 이목을 끄는 것은 바로 인터루드의 삽입이다. 각각 “Chromatica I, II, III”라 명명된 이 시네마틱한 오케스트라 트랙들은 앨범을 세 파트로 나누면서 싱글 단위보다는 음반에 무게를 두려는 레이디 가가의 비전을 드러낸다. 기존에도 음반 단위 구성을 신경 쓰는 아티스트이긴 했으나, 이번에는 유독 소셜 미디어에 셔플 대신 앨범을 통으로 재생을 하라는 등의 코멘트를 날리며 전격적으로 그 무게감을 강조하고 있다. 그전보다 더 늘어난 피쳐링 게스트진도 특이사항이다. 보통 한 앨범에서 한두 트랙꼴로만 있던 피쳐링이었으나 이번에는 무려 세 팀이나 대동했다. 아리아나 그란데, 블랙핑크, 그리고 엘튼 존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호화로운 이들이다. 그리고 레이디 가가는 이번 앨범에 대해 Chromatica는 자신의 회복을 위해 만든, 지구가 아닌 새로운 행성이라고 밝혔다. 예술과 대중문화를 결합한다고 했던 ARTPOP 앨범 이후 오랜만에 들고 온 거창한 콘셉트다.


그러면서도 Chromatica는 2016년의 컨트리/록 앨범이 가족사를 얄팍하게 다루느라 제대로 건드리지 못했던 개인 스테파니 저마노타의 아픔을 곳곳에 드러낸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호흡을 맞춘 1위 싱글 “Rain on Me”에서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지는 비에 빗대어 계속해서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성폭력의 트라우마를 노래한다. “내 마음속의 흉터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어”라고 말하는 “Replay”나 그러한 아픔의 잔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낸 “Free Woman” 같은 트랙들의 가사가 돋보인다. 오랫동안 앓고 있는 섬유근육통에 대해 본인의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이라고 노래하는 “911”까지 더해져, 앨범은 진정으로 레이디 가가의 가장 자전적인 작품으로 자리한다.


하지만 이런 포부에 비해 음악은 다소 평범한 댄스 트랙들이다. 앨범에 앞서 싱글로 발매된 “Stupid Love”와 “Rain on Me”를 제외하면 첫 트랙인 “Alice” 외에 단번에 이목을 끄는 노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원더랜드로 가고 싶다는 마음을 열심히 부르짖던 것이 갸우뚱해질 정도로, 이후 이어지는 첫 번째 섹션의 “Free Woman”과 “Fun Tonight”은 진부한 멜로디와 특색 없는 프로덕션으로 인해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빠르게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만다. “나는 자유로운 여자야”, “난 오늘 밤을 즐기지 못하고 있어”와 같은 평면적인 가사도 결코 힘을 실어주지는 못한다.


K-POP 아이돌과의 협업으로 기대를 모았던 “Sour Candy”는 결국 둘의 어울리지 못하는 부조화만을 드러낸 채 끝나고 만다. 블랙핑크는 그저 블랙핑크일 뿐이고, 레이디 가가는 그저 레이디 가가일 뿐이다. 애초에 녹음과정부터 따로 이뤄졌을 테니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겠으나 문제는 둘 중 그 누구도 노래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쌉싸름한 사탕이라는 주제를 결이 다르게 풀이한 탓에 서로 상충하는 각자 파트의 가사 차이도 문제다. 라스베가스 레지던시 쇼의 제목을 본딴 “Enigma”는 감흥 없는 멜로디에 얹어지는 그전부터 이어온 특유의 과장된 억양이 부담스러움만을 남긴다. 컬트 뮤지컬의 한 넘버 같긴 하지만 제목만큼의 괴기스러움이 부족하다. 그나마 The Fame 앨범을 연상시키는 보컬 이펙트의 “911”, 80~90년대 판타지 SF 드라마 시리즈의 사운드트랙처럼 들리는 “Replay” 정도가 건져낼 트랙들이다.


그래도 마지막 파트는 실망스러웠던 중반부를 어느 정도 극복하는 데에는 성공한다. 발라드로 예상되었던 엘튼 존과의 콜라보레이션 “Sine from Above”는 그런 뻔한 발상을 깬 웅장한 팝 트랙으로, 화려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둘의 보컬을 수놓는 가운데 오랜 기간 친분을 이어 왔던 둘의 케미스트리가 음악적으로도 유효함을 알린다. 글램 록을 이끌던 엘튼 존의 목소리에는 관록이 느껴지고 레이디 가가도 이에 뒤떨어지지 않으나, 서로 곡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기보다는 각자 노래를 탄탄하게 채워주면서 훌륭한 듀엣의 예시가 된다. 청량한 댄스로 무난하게 흘러가는 “1000 Doves”의 뒤를 잇는 엔딩 트랙 “Babylon”은 많은 이들이 언급하듯 마돈나의 싱글 “Vogue”를 떠오르게 하는 절도 있는 피아노 하우스 비트가 인상적인데, 약간은 성급한 마무리처럼 느껴지나 일관되게 업비트 댄스 팝으로 끝과 시작을 장식하는 레이디 가가의 고집을 느낄 수 있다. 가십을 주 주제로 논하면서 “babble on”과 “babylon”을 엮는 가사의 라임이 살짝 얄팍하긴 하나,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싸움을 이어나가겠다는 그녀의 포부만큼은 확실하다.


가볍게 들으며 즐기기 위한 댄스 팝 앨범으로는 충분하다. 하지만 Chromatica의 실책은 그녀가 스스로 내세운 거창한 콘셉트와의 부조화에서 비롯된다.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와 같은 SF/사이버 펑크 영상물에서 따온 듯한 어둡고 기괴한 시각적인 요소를 내세운 것에 비해 음반의 허리 부분은 생각보다 얌전하고 무난한 댄스 팝으로 채워져 있다. 물론 그녀의 전성기를 장식했던 The Fame Monster와 Born This Way 수준의 성취를 계속 레이디 가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들고 온 거창한 이미지와 음악이 어느 정도는 결을 같이 하며 나아가던 그전의 솜씨가 많이 녹슬었음은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시작부에서 원더랜드를 줄기차게 외치던 것에 비해 “이상함”의 느낌은 다소 옅다. 그녀가 댄스 음악을 한다 해서 독특한 콘셉트가 계속 동반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그것이 부담감인지 고집인지는 모르겠다. 슬슬 본인의 역량을 믿고 파격의 아이콘 수식어를 여유롭게 탈피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원 게시일: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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