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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먼파워 Sep 26. 2024

40년의 연애편지

설렘은 파도처럼

창고 구석, 오래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언젠가부터 열어보고 싶었던 상자, 그 안에는 우리의 4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십여 차례 이사하면서도 버리지 않았던 소중한 기억의 조각들, 바로 우리의 연애편지들이다. 그 편지를 다시 마주하는 순간, 나는 그때로 돌아간 듯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의 감촉과 잉크 냄새가 시간의 틈을 비집고 나를 40년 전으로 데려갔다. 마치 어제 일인 듯, 손끝으로 쓰다듬던 그때의 감정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그 시절 우리는 아직 어리고 서툴렀지만, 단 한마디의 글자에도 마음을 담아 썼다. 떨리는 손으로 전해진 편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두 사람의 영혼이 담긴 약속과 같았다. 편지 속 단어 하나하나가 마치 그때의 우리를 그대로 담고 있는 듯, 시간은 우리 앞에서 멈추었다. 거센 파도처럼 밀려왔던 설렘과 기다림, 그리고 사랑이란 이름의 두려움까지 그 모든 것이 이 편지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햇살 가득한 봄날, 봉긋이 피어나는 꽃잎처럼 설레고 떨리는 순간과 마주하게 했던 그 편지들은 나와 그를 연결해 주는 소중한 감정의 오작교였다. 40년 전 대전과 서울, 서로 다른 도시에서 각자의 꿈을 좇으며 맞서야 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비록 물리적으로 먼 거리와 시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우리는 편지를 통해 서로의 삶과 감정을 나누며 마음의 거리를 좁혀갔다. 그 작은 종이 위에 담긴 일상과 마음의 교감은, 거리를 뛰어넘어 우리의 마음을 가깝게 이어주었다.   

  

열 번이 넘는 이사를 거치며 많은 편지를 잃어버렸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300통이 넘는 편지가 남아 있다. 그의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이 편지에 그대로 남아 있다. 연애 시절, 그는 거의 매일 편지를 보내왔다. 매일 다른 내용이지만, 그 속엔 늘 같은 따스함이 담겨 있었다.


아침 햇살처럼 하루를 여는 그의 편지는 내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었고, 시간이 갈수록 그리움은 더 깊어져 갔다. 그가 보낸 편지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그의 마음이었다. 짧은 문장 속에도 그의 숨결과 매일 나를 생각하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매번 편지를 열어볼 때마다 설렘은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휘감았고, 손끝으로 전해지는 그 감촉이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때로는 종이에 묻은 잉크 냄새마저 그의 향기로 느껴졌고, 편지를 읽는 순간, 우리는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곁에 있는 듯했다.  

   

이제는 낡고 빛이 바랜 편지들이지만, 여전히 내 마음 깊은 곳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다. 종이 위에 적힌 그의 글자들은 그 시절의 우리를 기억하게 하고, 그 사랑은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따뜻하게 내 안에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들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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