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편지에 담긴 사랑

두 글자 편지

by 우먼파워

그는 매일 다양한 방법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엽서에, 편지지에, 때로는 전지에도, 어느 날은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꽃잎을 붙여 보내기도 했다. 시를 적어 보내고 가끔은 영어로 편지를 쓰기도 했다. 짧은 메모처럼 다정한 몇 줄을 남기기도 했고, 때로는 열 장이 넘는 장문의 편지로 마음을 가득 채워 보내기도 했다. 그의 편지에는 언제나 정성이 깃들어 있었고 그 안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날도 두툼한 그의 편지를 받았다. 잔뜩 기대하며 정성스럽게 봉투를 뜯었다. 그런데 세 장의 편지지에 아무 내용이 없었다. 평소처럼 달콤한 말이나 다정한 위로의 글을 기대하고 있던 나는 빈 페이지를 넘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딱 두 글자, ‘장비’라고 적혀 있었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장난기가 많은 그인지라 처음에는 장난하는 줄 알았다.


성격이 호탕하고 무언가에 한 번 빠지면 맹렬히 달려가는 그의 모습이 마치 《삼국지》의 장비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별명 ‘장비’, 당시엔 장난스러운 별명에 불과했지만, 그는 이 별명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서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장비’라는 두 글자만을 보내면서 나를 웃게 했다.


세 장의 편지지에 적힌 단 두 글자. 그것은 많은 말을 대신하는 메시지였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 것이라는 무언의 몸짓이기도 했다. 그 편지를 보면서 사랑이란 이렇게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길고 복잡한 말보다, 나를 향한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두 글자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 시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가끔은 이런 특별한 편지로 말보다 더 깊은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그 편지는 단지 장난스러운 두 글자였지만, 내게는 그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장비’,

그 짧고 엉뚱한 편지가 남긴 건 단순한 웃음 그 이상이었다. 그 안에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우리의 추억과 서로를 향한 깊은 애정이 스며 있었다.

사랑이란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그 편지 속에는 우리만의 언어와 마음이 녹아 있었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감정들이 머물러 있었다. 마치 시간이 흘러도 색이 바래지 않는 영원한 예술작품처럼, 그 편지는 마음의 캔버스에 우리의 사랑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그리고 그 작품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우리 둘만의 소중한 역사가 되어 여전히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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