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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먼파워 Sep 29. 2024

빈 편지에 담긴 사랑

두 글자 편지

그는 매일 다양한 방법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엽서에, 편지지에, 때로는 전지에도, 어느 날은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꽃잎을 붙여 보내기도 했다. 시를 적어 보내고 가끔은 영어로 편지를 쓰기도 했다. 짧은 메모처럼 다정한 몇 줄을 남기기도 했고, 때로는 열 장이 넘는 장문의 편지로 마음을 가득 채워 보내기도 했다. 그의 편지에는 언제나 정성이 깃들어 있었고 그 안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날도 두툼한 그의 편지를 받았다. 잔뜩 기대하며 정성스럽게 봉투를 뜯었다. 그런데 세 장의 편지지에 아무 내용이 없었다. 평소처럼 달콤한 말이나 다정한 위로의 글을 기대하고 있던 나는 빈 페이지를 넘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딱 두 글자, ‘장비’라고 적혀 있었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장난기가 많은 그인지라 처음에는 장난하는 줄 알았다.      


성격이 호탕하고 무언가에 한 번 빠지면 맹렬히 달려가는 그의 모습이 마치 《삼국지》의 장비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별명 ‘장비’, 당시엔 장난스러운 별명에 불과했지만, 그는 이 별명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서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장비’라는 두 글자만을 보내면서 나를 웃게 했다.


 세 장의 편지지에 적힌 단 두 글자. 그것은 많은 말을 대신하는 메시지였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 것이라는 무언의 몸짓이기도 했다. 그 편지를 보면서 사랑이란 이렇게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길고 복잡한 말보다, 나를 향한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두 글자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 시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가끔은 이런 특별한 편지로 말보다 더 깊은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그 편지는 단지 장난스러운 두 글자였지만, 내게는 그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장비’,

그 짧고 엉뚱한 편지가 남긴 건 단순한 웃음 그 이상이었다. 그 안에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우리의 추억과 서로를 향한 깊은 애정이 스며 있었다.    

  

사랑이란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그 편지 속에는 우리만의 언어와 마음이 녹아 있었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감정들이 머물러 있었다. 마치 시간이 흘러도 색이 바래지 않는 영원한 예술작품처럼, 그 편지는 마음의 캔버스에 우리의 사랑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그리고 그 작품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우리 둘만의 소중한 역사가 되어 여전히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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