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느라 허우적대다가도 옆집 말만 나오면 나는 용케 눈이 벌떡 떠졌다.
어릴 적 우리집 뒤뜰에는 커다란 감나무 두 그루가 웅장하게 서 있었다. 수십 번의 혹독한 추위와 살을 에는 세찬 비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며, 봄이 되면 푸른 잎을 달고 활짝 가지를 펼치던 감나무였다. 동면에 들었다 깨어날 때마다 왕성하게 가지를 뻗고 뿌리를 내렸다. 동네 사람들은 그 감나무의 소산물을 배시감이라고 했다. 제사상에 올릴 동그랑땡을 빚어내듯이 동그란 감을 두 손으로 조물조물 만져 납작하게 만들어놓은 듯한 동글 납작한 감이었다. 옆 뜰에는 기골이 장대한 호두나무 세 그루가 서로를 벗 삼아 서 있었다.
뒤뜰과 옆 뜰, 그곳은 우리 가족에게 작지만 소중한 먹거리를 선물해 주는 공간이었다. 폭신한 이부자리가 엄마 품처럼 나를 끌어안는 순간에도 거침없이 박차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뜰 안에 있는 감나무와 호두나무 때문이었다. 수묵화의 농담처럼 희뿌연 안개가 걷히지 않은 가을 아침이면 나는 눈뜨기가 무섭게 뒤뜰로 향했다. 밤사이 분 비바람이 열매들을 얼마나 떨어뜨렸을지 기대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런 설렘 속엔 조금의 긴장감도 있었다. 옆집에서 먼저 주워가기 전에 내가 먼저 주워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열매들로 주머니가 두둑해질수록 내 입꼬리는 하회탈처럼 해맑게 올라가곤 했다. 우리 집 뜰에 있는 감나무와 호두나무였지만 우리 것이라고 우리 식구들 누구도 주장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옆집 땅을 빌려 지은 집에서 살았다. 어릴 때 이 집으로 이사를 온 터라 어떻게 이 집에서 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 감나무와 호두나무가 우리가 이 터에 집을 짓기보다 훨씬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과 그래서 이 나무들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저 비바람에 못 견디고 떨어진 녀석들만 내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고 우리 간식이 될 수 있었다. 밤사이 비바람이 몰아친 날에는 특히 많은 열매가 떨어져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채 익지 않은 감이었다. 덜 익은 배시감은 떫은맛이 강해 한입 베어 물면 혀를 감싸 입안이 오그라들었고 아무리 침을 뱉고 이빨로 혀에 묻은 잔해를 긁어내려 애써도 오랫동안 거미줄처럼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에 퉤. 너무 떫어"
투덜대며 바구니 두둑이 채운 감을 들고 엄마에게 달려가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젓가락으로 감 여기저기를 찔러 구멍을 냈다. 그리고는 쌀뜨물이 담긴 커다란 그릇 속으로 풍덩 빠뜨렸다.
"며칠만 기다려 봐. 떫은맛이 사라지고 달아질 거야."
엄마의 말은 늘 정확했다. 정말 그랬다. 며칠 뒤 쌀뜨물에서 꺼낸 배시감은 떫은맛은 어디로 갔는지 온데간데 사라지고, 달콤한 맛만 남았다. 완전히 다른 과일처럼 달고 부드러워졌다. 엄마는 구멍을 많이 뚫지도 않았다. 감 하나에 딱 네 개나 다섯 개 정도.
“구멍을 많이 내면 일찍 익는데 대신 쌀뜨물이 발효돼서 구멍 주위가 시큼해져. 맛있게 먹으려면 너무 많이 뚫어도 안 좋아.”
"엄마,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엄마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옛날부터 어른들이 그렇게 했어. 맛있는 걸 먹으려면 손이 좀 가야지."
엄마는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배운 적이 없어도, 자연과 공존하며 터득한 방법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했다. 감을 쌀뜨물에 담그면 탄닌이 줄어들어 떫은맛이 사라진다는 과학적인 원리를 몰랐을 텐데도, 엄마는 늘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는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삶의 경험과 지혜가 있었다.
지금도 감을 먹을 때면 혀끝에 퍼지던 어린 시절의 달콤함보다 엄마의 손길과 그 시절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삶의 떫음을 기다림과 정성으로 달콤하게 바꿀 수 있다는 지혜를, 엄마는 감나무 아래에서 가르쳐 주었다. 냉장고 문을 열다 흰 비닐에 쌓여있는 홍시를 보니 뒤뜰의 감나무와 함께 우리에게 지혜를 나눠 주었던 엄마가 문득 그리워진다. 그 감나무와 열매들은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가 우리에게 남긴 삶의 교훈이었다. 그리고 그 감나무 아래에서의 사소한 순간들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이었다. 엄마 손끝에서 익은 배시감은 그 시절을 맛보며 살아가는 내 삶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