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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먼파워 Nov 21. 2024

엄마의 치마폭에 서린 냄새

엄마 냄새

어린 시절, 나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눕는 것을 참 좋아했다. 엄마의 허벅지는 폭신한 베개 같았고, 따뜻한 온기는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안식처로 모든 불안을 잠재워줄 것처럼 편안했다. 엄마가 내 귀를 살살 만져주거나 등을 부드럽게 긁어주면, 내 눈꺼풀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힘없이 스르르 감겼다. 엄마의 손길은 살랑대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고도 따스했다. 그 손이 내 머리를 어루만질 때면, 마치 폭신한 이불 속에 들어가 온몸을 감싸는 듯한 안락함이 몰려왔다.      


그 따스한 손길과 함께 항상 내 코를 간지럽히던 향기가 있었다. 그 향기는 바로 엄마의 치마폭에 서린 냄새였다.  청국장처럼 진하기도 했고, 김치 냄새에 절어 역하기도 했다. 때론 막 삶아낸 빨래의 은은한 비누 향도 났고, 가끔은 새로 깎은 사과처럼 상큼한 향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엄마 냄새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설거지한 손에 묻은 비눗물 냄새와 햇볕에 널린 빨래의 따뜻한 향이 어우러진 그 냄새는 엄마의 하루하루를 온전히 담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묘하게 섞여 엄마만의 냄새가 되었고 그 냄새는 엄마가 살아온 고단한 삶의 기록이자, 우리를 향한 한없는 사랑의 흔적이었다.     


엄마는 갓 스물을 넘겨 시집와, 1남 3녀 네 아이의 엄마로 한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였다. 엄마 손길이 닿지 않으면 양말 한 짝 찾아 신을 줄 몰랐던 우리였기에 여기저기서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에 엄마는 엉덩이를 붙일 시간도 없이 동분서주하기 바빴다. 모든 시간을 집안일과 자식들 챙기느라 보내면서도, 엄마는 언제나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겨울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차가운 손으로 불을 지피고, 밭에서 땀을 흘리며 흙냄새를 묻히고도 저녁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우리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주셨다.


우리가 성장하여 독립할수록 점점 자신을 뒤로 밀어내시며 우리를  항상 앞세우고 늘 뒤에 서셨던 엄마, 우리를 조용히 지켜보며 기도하셨던 엄마, 그 기도에는 한없이 깊고 따뜻한 엄마의 사랑이 담겨 있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하나둘 성장해 엄마 곁을 떠났다. 이제 엄마 나이가 되어보니 엄마의 삶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늘 한 걸음 뒤에서 우리를 지지해 주셨던 엄마,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가 내게 남겨준 사랑과 그리움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처럼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하지만 가장 그리운 것은 여전히 엄마의 치마폭에 서린 냄새였다. 그것은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엄마의 품 그 자체였다. 피곤에 지친 날에도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엄마의 온기와 사랑이 고스란히 배어 있던 냄새였다.      



엄마는 지금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엄마의 손길도, 허벅지의 따스함도 이제는 느낄 수 없지만, 치마폭에 서린 그 냄새만은 내 기억 속에 여전히 선명하다. 무어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진하고 따뜻했던 엄마 냄새. 땀 냄새, 반찬 냄새 가끔은 분홍색 다이알 비누처럼 향긋했던 그 냄새는 전혀 다른 듯 느껴지지만 모두 우리 엄마 냄새였다.      


가끔 그 냄새가 지독히 그리울 때가 있다. 그 냄새는 단지 기억 속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내 삶 곳곳에 묻어나 엄마를 닮은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엄마의 치마폭에서 풍기던 그 따뜻한 향기는 내가 사랑을 배우고, 희생을 이해하며,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 해 준 삶의 향기였다.  엄마가 내게 남긴 그 냄새는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한없는 희생, 끝없는 사랑, 그리고 우리를 위해 웃으며 견디셨던 삶의 흔적이었다. 엄마는 이제 내 곁에 없지만, 그 냄새는 내가 걸어가는 모든 길에 남아 있다. 엄마가 내게 주었던 그 품과 향기를 가슴에 새기며, 엄마처럼 사랑을 베풀고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하게 한다. 그리운 엄마 냄새는 앞으로도 내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 숨 쉬며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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