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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면 감천

엄마의 지극정성

by 우먼파워


엄마가 안 계신 집은 너무 무서웠다. 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마루 끝에 자리 잡은 지청은 나를 위협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와 내 머리채를 잡아당길 것만 같아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갈 때면 가슴이 콩닥거렸고 심호흡이 필요했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대문 밖 한참 전부터 엄마를 목청껏 불러댔다. 엄마의 대답이 들리는 날에는 두려움 없이 집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대답이 없는 날에는 대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신발 끈부터 단단히 동여맸다. 내가 집에 왔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걸어 들어가서 방문을 빼꼼히 열고는 가방을 되는대로 던져놓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왔다. 운이 좋아 골목 어귀에서 사람을 만나면 내 달리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멈췄지만, 운이 나쁜 날에는 아랫동네까지 달려야 했다. 갓난아기 손도 죽은 사람 손도 빌려야 할 정도로 바쁜 농번기 때는 엄마도 영락없이 일손을 보태러 일 나가셨기에 집에 안 계셨다. 그런 날에는 동네를 달려도 사람 구경할 수 없어 아랫동네까지 달려 사람을 만난 후에야 달리기를 멈추곤 했다.

우리 집 마루 끝에는 지청이 놓여있었다. 지실이라고도 불렀던 이 제단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생긴 것이었다. 입구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고 그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깔끔하게 정돈된 상 위에 할아버지 사진과 촛대 두 개, 그리고 그 앞에 몇 개의 제기가 올려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삼 년 전에 충북 수안보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새 할머니를 모시고 수락 우리 집으로 들어오셨다. 지병으로 고생하시던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엄마의 몫이었다. 방 두 칸짜리 좁은 집에 여덟 식구가 북적이며 살아야 했던 그 삼 년간, 엄마는 참 많은 고생을 하셨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와 아버지는 대성통곡을 하셨고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 초가지붕에 할아버지 옷을 던져 올려 초상을 알렸다. 수안보에 사시는 작은 아버지와 대전 외갓집에서 공부하고 있는 오빠에게는 전보를 쳐서 부고를 알렸다. 밤늦게 도착한 오빠가 어찌나 구슬프게 울던지, 보고 있던 사람들까지 눈물을 훔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전혀 나지 않았다. 평소 속상할 때면 잘도 울던 내가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울려고 해도 나오지 않는 눈물이 낯설기만 했다. 결국 삼일장을 치르는 동안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사람들 눈에는 매정해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나 역시 그 이유를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그렇게 눈물 없이 할아버지를 보내드렸다. 그리고 우리 집에 전에 없던 지청이 마루 끝에 생겨났다.

엄마는 아침저녁으로 밥과 반찬을 준비하여 제단에 올리고 정성껏 절을 드렸다. 제단에 올리는 음식은 정갈하고 경건해야 한다며 반찬을 만들면서 간도 보지 않으셨고 찬밥이 많아도 반드시 따뜻한 밥을 지어 맨 처음 푼 밥을 제단에 올리셨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바쁘고 지쳐도 단 하루도 거르는 일 없었다. 그렇게 엄마의 정성은 1년간 계속되었다. 할아버지께 정성을 다해야 우리 가족을 편안하게 지켜주신다고 엄마는 지극정성을 다했지만 나에게 지청은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마치 할아버지의 영혼이 그곳에 머무는 것처럼 느껴졌고 혼자 있는 나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늘 무서웠다.


대전 외갓집에서 대학을 다니던 오빠가 어느 날 군에 입대했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은 뒤, 오빠가 입대할 때 입고 갔던 옷이 소포로 도착했다. 엄마는 그 옷을 부둥켜안고 한참을 우셨다. 어린 내 눈에도 낡고 초라해 보이던 옷이었으니, 엄마에게는 얼마나 마음이 아리고 쓰라렸을까. 그 옷은 오빠가 군 생활을 시작하며 떠나던 그날의 흔적이자, 오빠의 고된 훈련과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을 그대로 품고 있는 듯 보였다. 엄마는 그날 이후로 오빠가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시 정성껏 밥상을 차렸다.

그 밥상은 아침저녁으로 늘 부뚜막에 고이 올려졌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에 밥을 지어야 하므로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지만, 엄마의 정성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오빠가 집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는 꼭 밥을 차려 뚜껑을 덮어 두었다. 오빠가 먼 곳에서 이 밥을 먹을 리 없다는 현실은, 엄마의 마음속에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오빠에게 닿을 거라는 믿음이 전부였다. 부뚜막 위의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엄마의 부뚜막은 단순히 밥을 올려두는 곳이 아니라 오빠의 건강과 행복을 염원하는 엄마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엄마의 정성으로 올려진 따뜻한 밥상은 우리에게 늘 든든한 힘이 되었고 위로와 희망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오빠에게도 그 곁을 지키던 우리에게도 엄마의 정성은 늘 보이지 않는 사랑이었다. 그 사랑 덕분에 오빠는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우리는 지금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엄마의 정성은 단순한 노력이 아니라 가족의 중심을 지키고 다독여준 가장 큰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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