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회복 과정은 길고도 느렸다. 대학병원에서 뇌졸중 수술을 받은 엄마는 강인한 의지로 대수술을 견뎌냈다. 느리지만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회복되어 갔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는 안도와 걱정을 반복해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두려웠던 건, 엄마 기억 속에서 우리가 지워질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뇌졸중으로 인해 오른쪽 뇌의 손상을 입은 엄마가 기억상실이라는 인지장애 후유증을 앓게 될까 봐 무서웠다. 수술 후 한동안 섬망 증세를 보이던 엄마가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기대보다 더딘 회복으로 우린 마음을 졸여야했지만 바람대로 엄마는 우리를 잊지 않으셨다. 하나씩 기억을 떠올리는 그 작은 순간들이 우리에게는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엄마는 삶이라는 고된 싸움을 묵묵히 이어가며, 우리 곁에 남아 주셨다.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뇌졸중은 잔인한 질병이다. 뇌의 혈액 공급이 갑작스럽게 차단되거나 뇌혈관이 터져 발생하는 질환으로, 발병 후 신체에 다양한 후유증을 남긴다. 엄마의 경우 오른쪽 뇌가 손상되면서 신체 왼쪽의 움직임과 감각이 둔해졌다. 처음엔 단순히 근육이 약해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왼손으로 작은 물건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셨다. 수술을 담당했던 주치의는 엄마 오른쪽 뇌가 손상을 입어 왼쪽 편마비가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엄마는 점점 회복되어 가고 있었지만, 왼손의 힘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그래도 우리는 기뻤다. 환자복을 입고는 있지만,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만큼 회복된 엄마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었으니까.
그날도 우리는 평소처럼 병원을 찾아 엄마를 만났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뜬금없는 말씀을 하셨다.
“부엌 장판을 들춰봐. 거기 돈이 있어.”
“돈? 무슨 돈?”
“응, 거기 돈 있어.”
처음에는 병때문이라 생각했다. 헛소리처럼 들렸지만 얘기를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냉장고 앞 장판 밑 거기 찾아봐. 거기에 뒀어.”
집에 돌아와 엄마가 말씀하신 냉장고 앞의 장판을 조심스럽게 들췄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장판을 들어 올린 순간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만원권 지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하나, 둘, 셋... 무려 여든 장. 팔십만 원이라는 거금이 장판 밑에 깔려있었다. 언제부터 장판 아래에 숨어 있었던 돈인지 알 수 없었지만, 오래된 냄새가 나는 지폐를 손에 들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했다. 이 돈을 어디에 쓰려고, 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모아두셨을까? 분명한 것은 엄마 자신을 위해 모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먹고 싶은 것 참으면서 고기반찬 아껴서 모았을 돈이 장판 밑에 깔려있다가 우리 손으로 들어왔다. 그 소박하지만 묵묵한 사랑이 손바닥 위에 담긴 채로 우리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 돈을 보며 가족들은 몇 해 전 있었던 사건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매일같이 병간호를 하러 병원엘 가셨다. 아침 식사 후 아버지의 간식을 챙겨 온종일 아버지 곁을 지키다 저녁 늦게야 돌아오곤 하셨다. 당시 우리 동네에는 새로운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도둑이 자주 들었다. 그날도 엄마의 간병은 종일 계속되었고 매일 집을 비운다 것을 안 도둑이 우리 집을 노리고 들어왔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파악한 도둑은 안방 장롱를 탈탈 털어 속옷 상자 깊숙이 넣어둔 폐물을 모두 가져갔다. 그중에는 아버지의 소중한 금시계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번쩍번쩍 빛나는 금시계를 엄마 팔에 채워주셨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엄마와 커플로 맞춘 것이었다. 엄마는 금시계가 채워져 있는 팔을 꺼내 보이며 행복해하셨다. 엄마 아버지는 금시계를 보물처럼 아끼셨다. 특별한 날에는 꼭 꺼내 손목에 걸치셨고 팔을 이리저리 돌리며 좋아하시던 엄마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특별한 날에만 차던 그 금시계를 엄마는 아버지 간병을 시작하면서 매일 손에 차고 다니셨다. 늘 비어있는 집에 놓아두기가 걱정스러웠던 듯하다. 그날도 엄마는 금시계를 차고 병원엘 다녀오셨다. 그 바람에 엄마의 금시계는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 소중한 금시계는 도둑이 가져가 버렸다. 아마도 그 사건 이후로 엄마는 귀중한 것들을 더 안전한 곳에 숨겨두어야겠다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장판 밑에 비상금을 넣어둔 이유도 그날의 충격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항상 그런 분이셨다. 가족들을 위해 모든 것을 아끼고 희생하셨던 분, 뼈를 갈아서라도 자식들에게 주실 분, 어떤 희생도 달게 감수하실 분, 그런 분이 우리 엄마다. 엄마는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쏟아부으며, 가족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라 믿으셨다. 엄마의 그런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는 힘든 세상에서도 버틸 수 있는 강한 뿌리를 가질 수 있었고 열심히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장판 밑에 숨겨져 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엄마의 깊은 사랑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병이 엄마를 점점 잠식해 갔지만, 엄마는 끝내 가족을 향한 사랑만은 잃지 않으셨다. 그 사랑은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자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