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허리 때문에 유모차 없이는 거동이 불편했음에도 엄마는 자식들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반찬을 만드셨다.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어쩌다 엄마를 뵈러 가면 트렁크 한가득 음식을 실어 보냈다. 작은 유모차로 몇 번씩 장을 봐서 마늘 까고 김치 담고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었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것들을 만들기 위해 수십 번 허리를 굽혔다 폈다 했을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더구나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면서 그 고된 노동을 하셨다는 게 화가 났다.
“엄마, 이제 그만 줘. 젊은 나도 빈손으로 왔는데 허리도 제대로 못 펴는 엄마가 무슨 반찬이야. 안 가져가. 그러니까 앞으로 절대 하지 마. 알았지.”
엄마의 진심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며 짜증을 부렸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가 이 일도 안 하면 무슨 재미로 사냐. 나더러 죽으란 얘기지.”
하며 서운해하셨다.
“죽긴 왜 죽어. 엄마는 평생 부엌데기로 살다가 말 거야? 몸도 성치 않은 분이 자식들 반찬 해 준다고 하면 사람들이 우리를 욕해. 자식들 욕 먹이는 일 좀 그만해. 알았어?”
나는 속상하고 미안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알았어. 알았어. 이번만 가져가. 담부터는 안 할게.”
이런 엄마의 거짓말은 그 후로 몇 년 동안 계속되었는지 모른다.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그 거짓말은 계속되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도 엄마는 여전히 자식들 생각뿐이었다.
“엄마, 집에 가면 뭐 하고 싶어?”
“집에 가서 밥하고 싶어.”
“밥? 밥이 그렇게 하고 싶어? 나는 밥 하기 싫은데.”
“응. 하고 싶어.”
“평생 밥하고 빨래하고 했으면서 질리지도 않아. 밥이 뭐 그리 하고 싶어?”
“좋아. 내 새끼들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좋아.”
“반찬은 뭐 할 건데?”
“반찬은 담북장이랑 갈치랑 김치, 그리고…”
엄마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자식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그것이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일. 그것이 엄마의 숙명이고 삶이었다. 허리가 굽고 손이 부르트도록, 평생 자식들만을 위해 살았으면서 아직도 자식들에게 더 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는 엄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간병인이 들어주는 죽 한 숟갈조차 잘 삼키지도 못하면서 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해서 자식들 먹이고 싶으시다니.
가슴이 쓰려온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얼마나 더 주어야 성에 찰까? 왜 자신에게는 그렇게 인색하면서 자식들에게는 끝없이 퍼주기만 했을까?
오물조물 무쳐낸 나물 반찬, 진하게 끓여내 놓은 담북장, 갓 무쳐낸 겉절이 등 엄마의 밥상에는 항상 계절이 담겨 있었다. 봄에는 입맛 잃은 밥상에 상큼한 봄동 겉절이와 쌉싸름한 씀바귀나물로 입맛을 돋우어 주셨고, 여름에는 묵밥과 열무김치로 시원함을 더해주셨다. 가을에는 깻잎장아찌와 각종 나물로 비빔밥 한 상을 차려주셨고, 겨울에는 청국장과 김장김치로 늘 우리 배를 두드리게 해 주셨다. 나는 그 밥상을 좋아했다. 그 밥상은 나의 어린 시절, 청년기,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삶의 일부였다. 그 밥상에서 우리는 계절을 먹고, 엄마의 사랑을 배부르게 먹었다.
어느 해 11월, 살점 한 점까지 다 주고도 더 못 주어 안타까워하시던 엄마는 결국 그 사랑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셨다. 뇌졸중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서야 비로소 한평생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부엌을 떠나셨다. 하지만 부엌을 떠난 후에도 엄마의 마음은 여전히 부엌을 맴돌았다. 아픈 몸임에도 자식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고 싶어 하시던 엄마, 이제 더는 맛볼 수 없는 우리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정성 가득한 엄마표 밥상이다. 하지만 사랑이 가득한 엄마 밥상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내 삶 속에 남아 있다. 엄마는 밥상에서도 시장에서도 사시사철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 봄이 오면 신선한 나물과 함께 구수한 냉이된장국을 끓여주시고 여름이 되면 시원한 오이냉국과 묵밥을 해주시던 엄마가 생각난다. 가을에는 상큼한 무생채와 갈치조림, 겨울에는 보글보글 청국장을 진하게 끓여주시던 엄마가 그립다. 이제는 그 밥상에 함께하지 못하지만, 엄마의 사랑은, 엄마의 계절 밥상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움과 추억 속에서, 엄마의 밥상은 오늘도 우리 마음에 풍성하게 차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