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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작은 소원

아파트

by 우먼파워

엄마는 뇌졸중 수술을 받고 한 달 동안 병실의 창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셨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몸은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전의 한 요양병원에서 석 달을 더 머물러야 했다.


평생 주택에서만 살아온 엄마는 아파트에 살아보는 것이 작은 소원이었다.


“아파트는 편하지? 엘리베이터도 있고, 눈 치울 걱정도 없고 마당을 안 쓸어도 되고.”


엄마의 그 말 속에는 아파트에 대한 오래된 바람이 담겨 있었다. 가끔 아파트에 사는 친구분 댁에 마실갔다 오실 때면 엄마의 푸념은 난데없는 팔자 타령과 아버지를 향한 원망으로 바뀌곤 했다.


“내 팔자는 평생 아파트도 못 살 팔자요. 아파트에 가보니 따뜻하고 좋대요. 화장실도 큼지막하니 굳이 목욕탕에 안 가도 되겠구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야 한다며 주택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문 닫고 들어가면 그게 감옥이지 어디 사람 살데여.”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만큼 주택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않았고 편하지도 않았다. 점점 부담으로 변해갔다. 낙엽이 쌓이면 쓸어야 했고, 눈이 내리면 마당과 옥상에 쌓인 눈을 치워야 했다. 세월이 갈수록 여기저기 고장나고 망가지는 주택에서의 생활은 연로한 엄마와 아버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사를 한다는 것 또한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수십 년간 함께 꿈꾸고 쌓아온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이었기에 그 보금자리를 떠나는 것은 큰 결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꿈은 늘 다음으로 미뤄졌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삶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대장암 수술을 받으셨고, 그 사이 집에는 도둑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엄마까지 뇌수술을 받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 주택에서의 생활이 더는 어렵다는 결단을 내렸다. 엄마가 그토록 원했던 아파트로의 이사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아파트로 이사했다는 얘기를 들은 엄마는 말할 수 없이 기뻐하셨다.


“몇 층이냐? 마트는 가까워? 내 살림은 다 가져갔냐? 장독들도 가져갔지? 앞집과 아랫집에 인사해야 하는데…”


엄마의 머릿속은 온통 새집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했고, 빨리 퇴원하여 집에 가고 싶어 하셨다. 그렇게 원하던 아파트로의 이사는 결국 엄마가 쓰러지고 난 이후에야 이루어졌다. 퇴원 후 엄마의 아파트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는 너무 달랐다. 거동이 점점 힘들어진 엄마는 집안 구석구석에 자신의 손때를 묻힐 여유가 없으셨다. 그렇게 원했던 아파트에서의 편리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거동이 불편한 엄마에게는 화장실에 가는 짧은 길조차 험난한 여정이었다. 열 걸음 남짓한 거리를 열 번 넘게 쉬어가며 겨우 다녀오셔야 했다. 장기 기능이 약해진 탓에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렸지만, 그마저도 헛수고일 때가 많았다. 이런 일상이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되며 엄마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몸의 고통만큼이나 마음의 상실감도 커서 그렇게 소망하던 아파트 생활은 막상 엄마에게 행복보다 무력함을 안겨주는 날들이 되어버렸다.


엄마를 돌보아 줄 연변 출신의 간병인을 들였다.

처음에는 친절하고 성실한 모습에 안도감이 들었다. 엄마가 오랜 병원 생활을 마치고 그토록 원하던 아파트로 돌아와 집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가족은 작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24시간 간병인과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엄마의 일상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공손하고 성실해 보였던 간병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순하고 연약한 엄마와 아버지 앞에서 마치 주인인 양 행동하며 점점 더 거칠고 무례해졌다. 엄마는 간병인의 눈치를 보며 점점 더 위축되었고, 그런 엄마를 지켜보는 우리 자식들의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엄마를 더 이상 그렇게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엄마를 다시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엄마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아파트 생활은 겨우 육 개월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평생의 꿈처럼 여겼던 아파트에서의 시간,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일상은 엄마의 마지막 여정이 될 거라 믿었지만, 그 꿈은 너무나 짧고 아쉬운 채로 끝나버렸다. 소원이었던 아파트에서 엄마는 마음껏 웃지도, 손때 하나 묻히지도 못한 채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만약 조금 더 일찍 그 소원을 이루어 드렸다면, 조금이라도 더 그 꿈을 누릴 수 있었을까, 늦은 후회는 우리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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