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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보니 알겠어

매운 김치전

by 우먼파워

엄마가 머물던 요양병원은 연구단지 옆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시의 소음에서 떨어져 있어 공기는 맑고 조용했지만, 병원의 고요함은 묘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엄마는 중환자들이 머무는 병원의 3층 병실에 계셨다. 하얀 벽과 밝은 조명이 병실을 환하게 밝혔지만, 그 차갑고 생기 없는 분위기는 온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햇빛은 힘없이 흩어졌고, 병실의 공기는 싸늘하고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기계가 내뱉는 일정한 소음만이 공간을 메우며, 적막한 분위기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엄마는 그곳에서 8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병실 창밖으로는 계절이 쉼 없이 지나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이 와도 엄마에게 병원은 늘 희뿌연 안갯속에 갇힌 곳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나무가 연둣빛으로 물들 때도, 이름 모를 꽃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곱게 만개한 날에도, 병실의 풍경은 언제나 한결같이 조용하고 차분했다. 창밖에서는 계절이 흐르고 있었지만, 병실 안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 보였다.


같은 대전에 살고 있던 오빠와 언니, 동생은 자주 병원을 찾았다. 엄마의 손을 잡아 드리고, 지나간 추억을 꺼내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때로는 가족들의 일상을 전하며 엄마가 병실에 있어도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길 바랐다. 엄마가 좋아하시던 간식을 챙겨가기도 했고, 점점 굳어가는 엄마의 팔다리를 주물러드리며 조금이나마 편안해지시길 바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예전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던 모습은 점차 희미해졌고, 환한 웃음 대신 조용한 미소로 답하는 날이 많아졌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마른 살갗과 앙상해진 손마디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렸지만 나는 애써 감추었다.


나는 서울에 산다는 핑계로 한 달에 한 번 겨우 엄마를 찾아갔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셨다. 내 얼굴을 볼 때면 살짝 미소를 지으시던 엄마, 반가움과 고마운 마음이 뒤섞여 있는 듯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엄마를 뵈러 갔다. 전날부터 무슨 음식을 해 갈까 고민하다가, 엄마가 좋아하시던 김치전을 부치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나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어 김치와 부침가루를 넣고 반죽을 했다. 그리고 오징어와 새우를 갈아 넣고 바삭하면서도 부드럽게 부치려고 불 조절에도 신경을 썼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세 시간이 넘는 거리를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드리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출발했다. 엄마가 반가워하며 맛있게 드실 것을 기대하며 병실 문을 열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엄마는 두어 번 드시고는 매운 듯 입술을 살짝 오므리며 고개를 돌리셨다.


“안 매워. 뭐가 매워. 한 번만 더. 아~”


맛있게 드실 거라 기대했으나, 거부하는 엄마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엄마,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부친 거야. 한 번만 더. 아~”


거듭 거절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자꾸만 권했다. 어쩌면 엄마의 입맛보다 내 수고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그 후 나는 심하게 아팠다. 위장장애로 인해 몇 달 동안 음식을 제대로 섭취할 수 없었다. 죽도 넘기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물만 마셔도 위장을 훑고 지나가는 듯 쓰리고 아팠다. 결국 링거를 맞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자 그동안 못 먹었던 음식들이 떠올랐다. 죽도 못 넘기는 상황에서도 가장 먹고 싶었던 김치, 고기도, 생선도 아닌 그저 김치 한 조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막상 한입 베어 물면 입안이 불타는 듯했고, 속이 쓰리고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몇 달간 미음에 길들여진 위장은 강한 양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김치를 포기하고 담백한 나물 반찬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순간 병실에서 김치전이 맵다며 고개를 돌리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의 입맛이 변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예전처럼 맛있게 드실 걸 믿었고, 거부하는 엄마에게 자꾸만 보챘다. 엄마는 이미 오랜 환자식에 길들여져 있었는데도, 나는 그저 내 정성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엄마의 입맛도, 머무는 환경도 변했지만, 나는 그 변화를 너무 늦게야 받아들였다.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지만, 어떤 순간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 있는 듯하다. 병실에서 흐르던 엄마의 시간도, 그 안에서 다 헤아리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위해 애쓰셨지만, 나는 과연 엄마를 위해 얼마나 마음을 기울였을까. 내가 아파본 후에야 비로소 엄마의 아팠던 시간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강인함 뒤에는 감춰진 아픔이 있었고, 혼자서 견뎌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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