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모임에서 홀로 잘 뛰는 사람
누구보다 빠르게 자신의 속도를 지배하는 한 사람이 있다. 어떤 방해도 없는 자유를 갈망한 쇼생크 탈출. 일상의 족쇄에 풀린 듯 그저 앞만 보고 달린다. 몸이 가벼워서 마음도 가벼워서 아무런 잡념 없는 그 사람. 무릉도원 위를 달려 나감에 온몸을 감싼 바람이 그대로 미끄러져 버린다.
러닝 모임에 참석하며 누구보다 빠른 한 사람이 남들보다 앞선 러닝 거리, 페이스를 보였다. 처음엔 러닝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사람인데 마른 체형에 날렵함을 겸비해 러닝의 빠른 적응을 보였다. 모임이 없을 때도 혼자 러닝을 했을 정도의 열정이 있었다. 이제 막 러닝을 시작한 나로선 그저 신기하고 부러웠다.
‘어떻게 저 거리를 달릴 수 있는 거지?’, ‘중간에 걷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는 게 가능한 건가?’ 내적 의문을 품어냈다. 그는 그만의 러닝을 하고 있을 뿐인데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그저 놀라움과 부러움으로 바라봤다.
낭만이 가득함은 아무런 것도 자신에게 불필요함을 알리는 것이겠지. 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주어진다면 그 무게의 부담감이 달리는 두 다리를 멈춰 세웠겠지. 과속 단속반이라도 나타나 속도위반 딱지를 붙인다 해도 이미 흥에 겨운 리듬을 꺾어버릴 수 있겠는가.
비법이 무엇일까. 나도 저런 속도로 달릴 날이 올까. 대단함 반 질투 반이 외줄타기의 균형을 겨우 맞춰 나간다. 체중계 눈금 세자리, 달리기의 존재를 저주하는데 어디서 김칫국 크게 들이키는 거니. 누구보다 앞선 날아오르는 돼지 한 마리가 되는 꿈을 자주 꾸기라도 한 듯 ‘당신을 앞서 버리겠습니다’는 헛된 선언을 남발하려 한다.
그의 러닝은 그저 자유의 낭만이 아닐 테지. 끊임없는 노력이 보이지 않은 것 뿐 이겠지.
모임 때 마다 충만해진 의욕으로 사람들의 기분을 업 시키는 것도 그 사람이 잘 달려서 가능한 것이겠구나. 나의 1km는 그에겐 2km, 내가 중간에 멈춰 서면 그는 이미 도착지에 서 있다. 그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게 된다면 베일에 쌓인 듯한 진실이 밝혀지겠지.
궤도 이탈 해버린 나의 러닝. 잘 뛰는 ‘한 사람’에 몰입한 나머지 나의 속도를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