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1. 올해 기억에 러닝은?
마라톤 시작, 설렘과 걱정이 공존한다. 마라톤 대회 전 5km도 겨우 뛰었는데 10km라니... 한번도 완주해보지 못한 거리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평소에도 생각이 많았는데 뛰는 것 조차 머리로 하려는 발상이 참...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골인 지점을 완주한 헛된 상상을 하고 있다 하겠다.
그냥 뛰면 되는걸, 단순히 생각해야지 뭘 그리 계산하고 있냐. 어느 것도 들리지 않는다. 생각이 많아져 눈앞의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했다. 시작부터 나타난 오르막. 난관이다.
아니지! 아직 초반인데! 차로 지나쳤을 땐 그저 스쳐 지나가는 대로였는데 마라톤으로 마주한 오르막은 거대한 삶의 언덕 같았다. 힘이 부치긴 했지만 그냥 뛰었다. 내 속도에 맞추며 조금씩 올라갔다.
오르막이 끝나고 좁은 2차선 도로로 진입했다. 초반 오르막에 고전했지만 (2km도 안되었는데 벌써???) 평지가 반가웠다. 어디서 누군가 나를 앞지르고 있었다. 이리저리 미꾸라지처럼 사람들 사이로 뛰어가는 한 사람. 러닝 클럽 모임장이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저 신기함에 쫒아가보려 했지만 무리. 속도가 나지 않는다. 이래서 모임장이구나. 새삼 느꼈다. (정말?)
3km쯤 되었을 때 걷고 싶은 유혹이 몰려왔다. 아직 초반인데 걷는 건 아니잖아. 5km도 완주하지 못했는데 걷고 싶은 유혹은 당연했다. 외계인과 함께 유모차를 끌고 뛰시는 분도 있는데 힘내자. 그뿐이었다.
아직 5km 지점이 보이지 않네. 2차선 도로를 지나쳐 큰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아직도 머릿속으로 거리를 계산하고 있었다. 이쯤이면 요 정도 왔겠지 했는데 그 거리에도 미치지 못했다. 대로가 나타났어도 절반 지점이 아니었다.
마라톤 신청했을 당시, 군중심리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10km를 신청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고 5km도 버거웠다. 스스로 고민의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몇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의 고민은 수억개의 기억 세포가 생성과 소멸을 반복했다.
정기 러닝으로 함께 러닝하며 나만의 페이스를 찾으려 노력했다.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보며 안정된 호흡의 러닝 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완주하지 못했다. 3km 넘어섰을 때부터 걷기 시작하여 마라톤의 완주는 불가능해 보였다.
절반 못 미친 지점, 대로가 나타났고 맞은 편에서 선수로 추정되는 분들이 마라톤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제 3km를 지났는데 9km를 진입했다니. 선수는 선수였다. 어쨌든, 뛰다 보니 절반 지점에 다다랐고 이제 몸이 풀린 듯 속도가 날 것이란 생각이 나려는 찰나, 마라톤 코스의 하이라이트가 나타났다. 터널 진입 전 오르막인데 생각보다 경사가 있었다. 초반에 마주한 오르막은 맛보기였고 두 번째 언덕은 유혹을 이겨내는 시험대 같았다.
진심, 걷고 싶은 유혹의 최고조였다. 여차하면 그냥 걷고 싶었다.
그냥 걸을까.
아니야.
천천히라도 뛰자.
너무 힘든데.
내적 갈등의 연속이었다. 마음이 골인지점에 있다 보니 몸에 힘이 들어간 것 같으니 눈앞의 언덕부터 극복해보자.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뛰며 언덕을 넘어갔다.
여기저기서 파이팅의 외침이 들렸다. 한두번 들으면 모를까 계속 들으니 나도 모르게 힘이 생겼다. 걸어가자는 마음은 이미지 나에게서 떠나갔다. 나도 파이팅을 외쳤다. 어디선가 거대한 파이팅 외침이 들렸다. 함께 러닝을 했던 분이다. 이미 반환점을 돈 상태였다.
포기하고픈 게으른 마음이 싹 사라졌다. 걷는 것보다 천천히 끝까지 뛰어야지. 표정은 일그러져 있지만 (뛸 때는 몰랐는데 같이 러닝하셨던 분이 알려주셨다) 마음은 걷는 유혹에 일그러지지 않았다.
5km 러닝에 페이스 조절이 항상 고민이었다. 시작하고 2km까지 잘 뛰다가 절반 지점부터 속도가 점점 떨어졌기 때문이다. 호흡법의 문제인가 생각했어도 러닝을 한지 얼마 안된 걸 생각하면 그냥, 살이 쪄서 몸의 무게가 러닝을 버거워 한 것. 딴 생각도 한 몫 했다. 러닝을 할 땐 러닝에 집중해야 하는데 홀로 고민스러운 것을 러닝까지 가져와 몸을 무겁게 했다. 몸도 마음도 부담을 느끼는 말 그대로 고생을 사서 했다. 폭염 시즌에는 더운 날씨에 완주 감당이 어려웠다. 그 이후로 러닝 참여의 텀이 길어졌다.
언덕을 넘어선 건 그동안의 러닝을 한단계 성장하게 만들었다. 터널 진입부터 큰 어려움 없이 내 페이스대로 러닝을 했고, 8km 지점에 다다랐을 땐 완주 할 수 있다는 확신까지 생겼다. 모임장님이 8km 마라톤은 마음의 아쉬움을 남길거라 했는데 직접 뛰면서 그 말의 의미를 알았다.
나만의 페이스로 천천히 뛰며 한번도 걷지 않는 완주를 달성하게 되었다.
기록보단 완주의 기쁨과 의미가 삶의 활력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가져다 주었다.
마라톤 이후의 러닝은 한번도 걷지 않고 페이스가 전보다 상승했다. 아직 풀어야 할 러닝의 숙제가 있지만 올해의 러닝으로 그저 그럴 뻔한 한해를 잘 마무리 할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