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분이라는 것

한발짝 물러섬의 차이

by 삼삼

최근, 가족 간의 대화에 상당한 불협화음 아니, 대화가 서로 통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각자 처한 상황에 많은 어려움과 어느 누군가에게 하소연 할 수 없는, 본인이 아니면 누군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대칭적 삶의 어려움 속 공백이 마음의 상처만 남기는 온갖 부정적인 기분을 수집했다.


서로 맞추기 힘든 건 어느 한쪽의 양보도 없는 자기 주장의 강함일 수 있다. 결핍에서 오는 관심 요구는 어떠한 말, 행동으로 전달 될 수 없다. 하나의 개인이 살면서 겪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핍의 정도에 따라 타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건가. 허공에 메아리 치듯 홀로 길잃은 숲속에 나무에 가려진 하늘을 못 보는 오직 자신의 처지 만 비관할 뿐이다.

숲속에 한 마리 동물을 따라간다. 어디선가 본 듯한 신비로운 자태를 뿜어내며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그저 동물 만 쫓아간다. 어둑한 숲속 길에 출구는 보이지 않고 그저 같은 곳을 방황하기에 어떤 생명체 하나 만이 이 숲속을 안다고 믿는다. 빛이 보이는 지평선이 나타날지, 어둠이 가득한 동굴이 나올지, 절벽의 땅 끝에 무한한 수평선이 펼쳐질지 동물이 안내하는 목적지를 떠올려 본다. 길은 어둑함의 연속이다. 쫓아가면 쫓아갈수록 전혀 알 수 없는 외딴 곳이 눈앞에 가까워지는 듯 막연한 두려움, 공포, 걱정이 밀려온다. 가만히 있으면 어떠한 위험을 받을지 모르는데 쫓아감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느끼는 것. 서투름의 성급함이 스스로에게 어둠의 존재를 소환한다. 알 수 없음은 스스로의 위안으로 희망고문적 긍정을 이끌어 낸다. 숲속의 끝이 보인다. 강렬한 빛 같은 것이 두눈을 잠시 멀게 한다. 동물은 그 자리에서 멈춰선다. 그러곤 자신의 임무를 끝냈다는 듯 어디론가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본다. 밝지도 어둠지도 않은 어느 곳에 서있다. 위로는 파란과 회색빛이 공존하고 아래로는 짙은 갈색의 땅과 푸른 물결이 요동친다. 정면을 응시하면 무한의 지평선인 듯 아닌 듯, 어쩌면 수평선일지 모르는 것이 눈앞에 펼쳐진다. 희노애락의 진동에 따라 가만히 서있는 곳은 변화무쌍한 모습을 자아낸다.

얼마나 삶의 고정됨이 확고한지 유연한 공간에 고지식한 자신을 한껏 뽐내려 했다. 낯섬을 떨쳐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담겨진 공포를 어떻게든 없애려 한다. 어떤 동물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는지 모른다. 그저 생각없이 따라 갔을 뿐이다. 가만히 있으면 어떤 위협에 자신의 존재가 끝맺음 될지 모르기에 무작정 뒷꽁무니 만 쫓아 갔다. 확고하지 않으면 중심을 잃어 스스로 패배자의 늪지대에 빨려 들어갈까 봐 존재를 알 수 없는 생명체에 의지 했다.

홀로 하루를 보냄에 있어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기분을 마주하기가 힘들다. 좋지 않음을 회피하고 싶어 자신의 결핍을 숨기는 태도에서 타인의 상처를 커지게 한다. 누군가 나를 구제해 줄 것이란 헛된 망상에서 자신은 살고 타인은 죽이는 무의식적 행위가 정당화된다. 숲속의 어둠에 일상의 회색빛이 삶의 전부라 여기며 좀 더 거리를 두면 파란 하늘빛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다.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기분을 해소하려는 맹신적 믿음에 그냥 걸어 움직이면 되는 걸 어떤 명분에 자기를 방어하려는 태도다. 홀로 해결할 수 없음에 일단 뒤쫓아 가지만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미지의 장소에 다다르면 스스로 유연함을 보이는 태도로 한걸음 뒤로 물러섬이 필요하다. 어둠에 뒤덮인 방황이 거대하여 혼란의 순간에서 탈출하고픈 열망에 근시안적 쫓아감을 지속한다.


내적 경계에서 자유로운 왕래로 유연함에서 얻는 긍정을 가져와야 할 때다.

keyword
이전 05화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