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자리에 내가 남았다.

1부 : 불 꺼진 집, 7장

by 여우비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니면 그저 일상인지—

아버지는 항상 때리지는 않았다.

어떤 날엔 밤새 전자 올겐을 쳤다.

낡은 건반 위로 술 냄새가 스며들고,

그는 그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해가 뜰 때까지, 어니언스의 ‘외길’과 ‘작은 새’.

처음엔 가수도 제목도 가사도 몰랐지만,

나중엔 저절로 외워질 만큼 들었다.

항상 같은 노래.

그럴 때면 형과 나는 눈빛을 교환했다.

그 노래가 끝나면, 또 무언가 시작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버지에게 음악은 변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폭력 대신 노래를 택한 날은

그나마 우리에게 온전한 밤이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말했다.

“비 오는데, 날궂이라도 해야지.”

그 말은 변명이자 의식이었다.

비가 내리면 술이 집 안을 채웠고,

나는 다음 날 결석계를 냈다.

담임선생님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비 오면 몸이 안 좋지?”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하늘이 갠 다음날 학교에 가면

내 출석부에는 ‘병결’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그 글자는 보호막 같았다.

부모가 아닌 어른에게 처음으로 받은,

작고 조용한 온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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