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끊긴 신호음, 1장
시간이 흘렀지만, 그 아이는 내 안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었다.
분노와 연민이 한 몸처럼 얽힌 채로.
엄마와 아빠는 내가 열일곱 살이던 해에 이혼했다.
엄마는 17년을 견뎠다.
아니, 영민이 형이 태어났을 때부터니까 22년이다.
다섯 살 차이 형과 나,
엄마의 생 절반은 그만큼 길고도 느린 고통이었다.
그때는 이제야 드디어, 우리 가족이 아버지라는 존재로부터 오는 고통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에도, 아버지가 떠나기 직전까지
고통은 전화선을 타고 찾아왔다.
술에 취한 목소리, 욕설, 그리고 간헐적인 눈물.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나는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아버지는 가끔 나에게 전화했다.
어떤 날은 술에 취해 욕을 퍼붓고,
어떤 날은 맨 정신으로 “이제 진짜 정신 차리고 산다, 용서해 주라” 같은 말을 되뇌었다.
그 말이 진심이든 술김이든, 나는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다.
때로는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도,
월세가 밀려 돈을 좀 빌려달라는 부탁도 들려왔다.
전화를 끊고 나면 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날은 아빠가 보고 싶었다.
기억 속의 아버지가 아니라,
언젠가 나를 쓰다듬던 그 손의 온기가 그리웠다.
그 모순된 감정은 내 안을 떠날 줄 몰랐다.
서른 살의 어느 날,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와 말했다.
“영락아, 아빠가 사랑하는 여자야. 엄마라고 불러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