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자리에 내가 남았다.

4부 : 울음의 질서, 1장

by 여우비

“형, 잠깐만 빈소 좀 부탁해. 잠깐 밖에 좀 다녀올게.”

내가 말하자 형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표정에는 피곤함과 무언가를 참고 있는 기색이 동시에 있었다.


문을 닫고 빈소를 나오자 숨이 확 튀어나가는 느낌이었다.

2월의 찬 공기가 바로 피부를 때렸지만, 몸 안은 오히려 뜨거웠다.

술 때문인지, 방금 전까지의 감정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입 안을 훑어 나가며 천천히 흩어졌다.

그걸 바라보다 마음속 소원이었던 게 떠올랐다.

나는 아빠가 살아 계실 때 단둘이 술을 마신 적이 없다.


어른이 된 뒤, 친구들이

“어제 아버지랑 한 잔 했는데 말이야…”

하며 툭 던지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부러웠다.

나도 언젠가 아버지와 단둘이 술을 마시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쌓였던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와 술 한잔 해보는 것,

그 소원을 오늘에서야 이루었다.


죽은 아버지와 마신 술.

그게 왜 이렇게 뼈에 박히듯 남는지 모르겠다.


눈이 뜨거워졌다.

연기 때문이라고, 찬 바람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어느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현서였다.

말없이 내 옆에 서 있었다.

추위에 손끝이 벌겋게 변해 있었지만,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오빠… 괜찮아?”

조심스럽게 묻는 목소리였다.


“응. 괜찮아야지.”

입에서는 그렇게 나왔지만, 목이 잠겨 있었다.


“좀 더 있고 싶으면 나 먼저 올라가 있을게.”

현서의 말투는 걱정보다도 배려에 가까웠다.


“아니야. 추워. 들어가자.”


장례식장 안은 바깥보다 훨씬 따뜻했다.

그 온도 차가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곧장 화장실로 향해 세면대 가장자리에 손을 짚고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 얼굴은 낯설었다.

붉게 부은 눈, 고르지 않은 숨, 젖은 속눈썹.

그 얼굴이 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지는 것.’

어디선가 본 문장이 스쳤다.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봤다.

눈은 울고 있는데 입만 웃었다.

그 어색함에 다시 눈물이 복받쳤다.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세면대 물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한참을 울었다.

물을 잠그고, 눈물을 식힌 뒤

두 뺨을 가볍게 치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 정도면 됐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듯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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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가 여우비입니다. 화창한 날씨에 가끔 내리는 찰나의 여우비는 밝게 지내다가도 순간적으로 우울함이 스쳐지나 가는 우리의 인생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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