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 울음의 질서, 7장
아버지의 영정사진,
아버지의 관,
아버지의 유골함.
아버지는 여러 형태로 나에게 왔고
결국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지난밤,
아버지를 어디에 모실지 형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봉원사라는 절에 모시기로 했다.
산분장을 하자니
혹시라도 나중에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찾아갈 곳이 없어 후회할 것 같았고,
납골당에 모시자니 관리비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관리비가 비교적 적고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절을 택했다.
공교롭게도
아버지는 살아생전
가끔 절에 다니거나
불경을 틀어놓고 낮잠을 자기도 했고,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염주를 메고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아버지도 이해해 줄 거라고
믿기로 했다.
“영민이, 영락이 정말 고생 많았다.
이제라도 자주 연락하고 지내자.”
“영락아, 너희 덕분에
아버지 좋은 곳 가셨을 거야.
너무 걱정 말고 건강해라.”
어른들과 친척들,
우리 가족은 삼일 동안의 합심을 마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우리 가족과 형 친구들만
장례버스를 다시 타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왔다.
상복을 반납하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각자의 차로 나뉘어 탔다.
차에 오르고 나서도
머릿속은 계속 어수선했다.
또다시 말들이 흩어지고,
여러 장면들이 겹쳤다.
나는 통화를 할 때
녹음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아빠 때문은 아니었다.
일이 많고,
정신이 산만할 때가 많아서
나중에 다시 들어보려는 버릇 같은 것이었다.
처음엔 단순한 습관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억울한 상황을 그냥 넘길 수 없게 되면서
그건 나를 지키는 방식이 되었다.
보험 상담원과의 통화,
항의 전화,
억울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증거라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앞섰다.
어릴 적,
내가 아빠를 신고해서 경찰이 집에 왔다가
단순한 부부싸움이라며 돌아간 날.
그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했고, 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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