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바라기
기다리면 조급하고, 조급하면 기다렸다.
갈 수 있는 시간을 알면 조급했고, 멈춰야 하는 시간을 몰라 조급했다. 심지어 멈춰 있는 시간 속에서 마저 언제면 갈 수 있을지 손톱을 물어뜯었다. 시계 방향으로 크고 작은 눈싸움의 속도와 결과를 상상했다. 물론 멈춘 시간에서 진행되는 경우의 수 게임은 전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나는 가만히 있지만 세상은 빠르게 흘렀다. 그렇게 나는 기다리면 조급했고, 조급하니 기다렸다. 내가 갈 수 있게끔 내게 허락된 시간의 속도를 계산하며.
그러니 멈춰 있어도 사실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만 아는 사실인 게 문제였을 뿐이다. 저 달리는 차보다도 빠르게 움직였지만 이상하리 만큼이나 내 몸은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고 고요했다. 억울했다. 시간이 나를 잠시 고정시킬 때 마저 나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그 순간을 탈출하고 있었다. 공간이 왜곡될 정도로 너무 빨라서 아무도 몰랐던 건 아니었다.
“단지 억울해서 만들었나요?”
신호등이 물었다.
“나만 억울했을까요.”
아닌 척 화를 숨기던 신호등이 갑작스레 벌겋게 얼굴의 색을 바꾸었다. 이윽고 화를 다시 감추기 위해 60부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다음 녹색불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고 있으니 조급함이 사라졌나요?”
나는 점점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차근차근 설명해야 했다.
“적어도 기다리면서 조급하진 않네요. 또 저 차만큼이나 나도 계속 달리고 있는 걸 모두가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모두가 이렇게 조급하지 않게 기다리고 있죠. 쉬고 있어요.”
이 말을 끝으로 그는 다시 화를 완전히 감췄다. 멈춘 시간에 더 이상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계속 달렸던 저마다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온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 다시 화를 내기 위해 초록의 카운트 다운을 보여줬다.
금세 화가 난 신호등은 나에게 물었다.
“내가 화를 내는 이유를 알고 있나요?”
“건너지 말라고. 움직이지도 말라고. 지금은 당신의 시간이 아니라고 소리쳐 주기 위함이 아닐까요?”
깜박거리는 그의 호흡은 벌겋게 뜨겁지만 일정했다.
“아니요. 틀렸어요. 잠시 당신을 죽이는 게 아니라, 당신을 위해 멈췄던 것들에게 잠시 양보하라고 숨을 참는 겁니다.”
이어서 그는 하나 더 물었다.
“그러면 내가 화를 내는 방법을 알고 있나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화를 숨기죠. 그러다 한계가 오면 뱉어낼 수밖에 없겠죠. 화를 내려하는 게 아니라 눌어붙은 화가 새어 나오는 게 아닐까요?”
그는 잠시 호흡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지금 내 얼굴엔 잠시 숫자가 없죠. 숨을 참고 있으니까요. 나는 당신들에게 내 얼굴색에 대해 말한 적도, 그에 따라 무엇을 명령한 적도 없어요. 빨간불에 멈추고 녹색불에 건너라고 정한 건 당신들이지 내가 아닙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죠?
그는 다시 자신의 일정한 맥박을 보여주고서야 나에게 답을 했다.
“나는 화를 낸 적이 없어요. 물론 화가 난 적도 없고요. 나는 모든 것과 함께 숨을 참고 다시 숨을 뱉고 하는 것뿐이죠. 당신이나 나나 심장이 멎고 숨을 쉬지 않을 땐 호흡을 셀 수 없죠? 내가 바라보지 않는 쪽을 위해 잠시 내 숨을 멎게 할 때는 다른 호흡을 듣겠다는 일종의 표현입니다.”
이날 저녁뉴스는 평범했다. 교통사고로 누구는 다치고 누구는 사망했다. 매일 발생하고 항상 방송되는 사고는 지극히 고요했다. 다만 오늘은 차와 차가 충돌하지도 추돌하지도 않았다. 한 남자가 차에 치였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그의 하루는 꽤나 힘들어 보였다. 비틀거리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신호등의 빨간 숫자의 카운팅을 보더니 순간 달려 나갔다. 평소와 달리 신호등이 자신의 조급한 호흡을 들어준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는 오랫동안 이 동네에서 살아온 주민이었을지도 몰랐다. 원래 이 신호등은 빨간불엔 호흡하지 않았고 녹색불에만 호흡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