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바라기
“정주의 반대는 뭐라고 생각해?”
“방랑?”
스키조프레니아는 정주의 반대를 도망이라 정의했다. 가영이는 철학 책을 읽던 중 도망쳤다. 종종 도망을 쳤던 그녀이기에 다녀오라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이선희씨처럼 볼 수 없었다. 놀랍게도 가영이를 찾는 전화조차 오지 않았다. 당연히 그녀의 카드 내역 따위도 알 수 없었다. 살아있단 것만 확신했다.
그녀의 도망은 특별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도망은 도피에 가까웠다. 대체로 지금 서 있는 공간의 향과 분위기가 증오스러워 그곳을 벗어났다. 그렇게 도피한 곳은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오히려 낯섦이 증폭시킨 외로움은 고통이었다. 결국 고통을 잘라내기 위해 다시 도망을 갔다. 도망은 결과일 뿐이었다.
그러나 가영이의 도망은 이유였다. 목적지 없이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녀에게 도망은 무계획 여행이었다. 목적지가 없기에 어느 한 곳에 정주할 수 없었다. 만약 그녀가 죽었다면 어딘가에서 그녀의 소식이 들려왔을 것이다. 항상 술래는 한가득이었지만 잡기는 없는 술래잡기였다. 아마 가영이는 도망간 곳의 얼굴들 조차 기억하지 못할 거다. 그들에게는 목적지가 없다는 사실이 잔인할 수도 있다. 가끔 그녀가 보고 싶어도 사람들은 찾을 수 없다. 그녀가 도망갈 수 없는 곳은 죽음뿐이었다.
그래서 가영이는 나를 좋아했고, 건우는 가영이를 싫어했다. 연애할 때 그녀가 도망친 횟수는 마지막까지 합치면 세 번이었다. 첫 도망은 전역 직후였다. 너무나 짧은 휴가에 진득이 커피 한 잔 마신 적도 없었지만 그때는 떠나가지 않았다. 전역을 하자마자 대학교 복학을 하게 되어 자취를 시작했다. 같은 대학을 다니기도 했지만 그녀의 집은 학교 근처였기에 군생활 동안 떨어진 시간을 농축하여 진하게 보낼 계획이었다. 착각이었다. 내가 이사한 첫날 그녀는 그 작은 원룸에서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두 달쯤 지나 가영이에게 전화가 왔다. 떨어진 벚꽃이 한바탕 지나가고 하늘이 푸르뎅뎅해져 서일까 안정된 시간에 연락이 왔다. 영화를 보자 했다. 크루엘라라는 디즈니 영화였는데, 어제 극장에서 보고 왔다고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우선 연락이 온 것 자체가 좋았다. 크루엘라가 그녀를 어디서 어떻게 데려온 줄은 모르겠으나 되게 고마웠다. 그녀가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단 게 놀라웠다. 영화를 보며 아무렇지 않게 우리는 손을 잡았다. 떨림과 설렘보단 불안이 먼저였다.
이번에도 계절이 바뀌며 그녀는 도망갔다. 우울한 사람도 하늘만 보면 웃게 되는 선선한 가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생일에 가영이는 떠났다. 일식 오마카세를 먹었다.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코스 요리로 진행됐는데, 한 코스가 끝날 때마다 사라지는 접시와 함께 가영이는 말을 꺼냈다. 생일 때는 보통 누구랑 있는 게 맞을까 묻더니 다음 코스에서는 생일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물었다. 같이 있고 싶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 되지 않냐고 답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웃으며 또 질문을 했다. 내가 여자친구라 보내고 싶은 거야? 아니면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난 거야?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반드시 거짓이 되는 영리한 질문이었다. 그렇게 답도 없는 문제를 내고 그녀는 떠났다. 생각보다 두 번째 도망은 빠르게 끝났다. 가다 보니 목적지가 생겨 버렸다. 그녀도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하게 됐다. 자취 선배로서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들을 같이 사러 다녔다. 그리고 이사 당일날 그녀는 나에게서 마지막으로 도망갔다.
이번엔 정말로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목적지 없이 여행 중이라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이 커졌다. 첫 도망 이후 손을 잡았을 때 느꼈던 그 공포였다. 건우는 가영이를 욕했지만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건우는 그게 우울증이라 했다. 다른 친구들도 내 태도에 대해 마구잡이로 질타했다. 단 한 번도 도망의 이유에 대해 물었던 적이 없는데 그녀가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내가 좋다고 했는데 내가 어떻게 그 이유를 파괴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그녀는 도망갈 때마다 나에게만큼은 힌트를 줬지만 끝내 나는 밝혀내지 못했다.
가영이가 마지막으로 떠났던 그 주 주말에 처음으로 이선희씨를 찾는 전화가 왔었다. 처음에는 이가영이란 이름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아니면 그녀를 찾을 사람은 없었다. 이선희씨를 찾는 전화는 그 이후로 간간이 나를 두드렸다. 그때마다 그 하루동안은 그녀의 자성이 두려웠다. 떨어질 수 없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에 다시금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이선희씨는 어떤 종류의 채권도 내게 발행하지 않았고, 내게 그녀는 쌓이지 않았었다.
건우를 일부러 보냈다. 일 년에 한 번이란 이유가 사라지면 우리는 무엇이 될까 고민하며 걷고 싶었다. 십 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했기에 가끔 만나야 하고,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보기 때문에 청첩장을 받아야 하며, 축의금을 냈으니 또 가끔 만나야 하는 걸까. 대체 사람들은 어떠한 이유로 이선희씨가 보고 싶은 걸까.
편의점에 그녀는 없었다. 8300원을 계산했다. 담배 한 값과 바나나우유 그리고 사이즈가 큰 삼각김밥 하나를 샀다. 그녀는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식사를 했을까 아니면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바나나우유를 마신 후 담배를 물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삼각김밥을 먹고 담배를 피우며 바나나우유를 마셨을까 상상을 했다. 그녀의 자취를 따라가야 했다. 편의점 밖에 앉아서 단서들을 정리했다.
나는 이 동네를 잘 몰랐다. 문자 내역을 보며 그녀가 카드를 긁었던 곳들을 지도앱에 표시했다. 그녀를 찾았던 사람들의 특성과 달리 그녀의 흔적은 범위가 좁았다. 편의점, 철물점, 주유소, 패스트푸드점, 식당, 마트 전부 동네의 중심에 몰려 있었다. 그래서 이상했다. 모든 상권이 한 곳에 모인 작은 동네에서 자신을 찾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그녀를 찾는 척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녀를 찾는 사람들은 다양하긴 했지만 한 번만 전화 온 경우는 없었다.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병점이란 동네의 이름이었다. 떡 가게란 뜻이었다. 아주 옛날에 지방에서 서울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갈 때 잠시 숨을 돌리는 곳이었다. 지금의 휴게소였다. 다시 서울로 출발할 때 간식거리로 떡을 사서 갔다고 한다. 어쩌면 이선희씨도 지명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녀를 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니 그녀는 찾지 않기를 바랐을지도 몰랐다. 이선희씨는 도망간 것이다. 스키조프레니아처럼 말이다. 나는 이선희씨가 궁금했던 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저 그녀가 부러웠나 보다.
이선희씨는 치밀했다. 편의점 이후의 자취는 발견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흔적이 흐릿해졌다. 편의점을 벗어나 중심상가 쪽을 걸었다. 수많은 이선희씨들을 마주했다. 특히 혼자 거리에 놓인 사람들은 모두 이선희씨로 추정되는 용의자였다. 그러나 저들은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이선희씨와 다르게 누군가와 청첩장을 주고받을 것이 분명했다. 목적지를 정하고 가는 사람의 발걸음이었다. 다만 나와 어떤 채권도 교환한 적이 없는 생판 모르는 자들의 자취에 진짜 이선희씨는 숨어들었다. 이상한 점은 그녀를 찾기 위해 그들 속으로 깊게 파고들수록 건우의 향이 강해졌다.
‘시집간다’ 청모 이후 다시 병점을 찾았다. 이선희씨가 중심상가 인근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문자에 찍힌 금액을 보면 대충 그녀에게 허락된 도망거리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목적지가 없었다. 기름을 만땅으로 넣고 곧장 바로 옆 공원에 주차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는 희한하게 나를 안정시켰다.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고, 화장실에 다녀와 손을 씻지 않고,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마음이 깨끗했다. 해방된 느낌이었다. 몹시 자유로웠다.
그녀의 집은 분명 병점은 아니었다. 모든 소비가 이 동네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녀에게 소비는
돈이 아니라 흔적이었다. 가영이도 그랬다. 돌아왔던 세 번 모두 그녀에게서 낯선 냄새가 풍겼다.
이선희씨도 이 동네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자유에 빠져있을지도 몰랐다. 계획과는 달리 주유소와
는 점점 멀어졌다. 그녀의 자유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단지 이 자유로움을 더 느끼
고 싶었다. 이선희씨를 내 옆으로 부르고 싶었다.
이선희씨가 내게 보낸 자유의 장소에서 그녀의 흔적을 따라갔다. 그녀가 자주 가던 식당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앞 상가 1층에 있는 분식집이었다. 참치김밥과 라면을 세트로 파는 메뉴를 시켰다. 이 참김세트만이 그녀의 카드 내역과 일치했다. ‘시집간다’ 학교 앞에도 분식집이 있었다. 중식을 먹고도 배가 고파 몰래 담을 넘곤 했었다. 결국 노란 단무지에게 걸렸다. 노란 단무지는 체육 선생님이었다. 그는 노란색 나무막대기를 항상 손에 쥐고 학교를 활보했다. 노란 단무지에 맞으면 한동안은 단무지 냄새도 맡기 싫었다. 결국 우리는 분식로드를 개척했다. 학교 울타리 끝에서 전화로 주문을 하면 아주머니가 갖다 주셨다.
“자 서비스, 원래 단무지는 셀픈데.”
참김세트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면서 식당 아주머니가 웃었다. 순간 단무지란 단어에 저항 없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왜 웃어요? 내가 그렇게 웃겼어요?”
“아니요. 사장님 때문에 노란 단무지가 생각났어요.”
“단무지가 다 노란색이지 뭘. 라면 불겠다. 빨리 먹어요.”
노란 단무지에 대해 말한 적도 없고 말해도 모를 사장님이었다. 라면을 먹다가도 왠지 모르게
입이 간질간질했지만 계산할 때 또 오라는 말 외에 우리의 대화는 없었다. 답답함 보단 약간의 여운이 입가에 맴돌았다.
다음으로 이선희씨가 많이 간 곳은 떡집이었다. 지도를 따라 걷다 보니 고등학교 교문을 질러가게 됐다. 정문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야외 농구장에서 농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중간에 담을 넘는 학생과 눈도 마주쳤다. 나를 신규 교사로 오해했는지 급하게 도망갔다. 무질서함에 중구난방으로 내 눈동자는 흔들렸지만 머리가 맑아졌다. 귀가 가벼워지고 숨은 크고 느리게 뱉어졌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잊어버렸지만 딱히 찾고 싶지 않았다.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이 오래간만에 아깝지 않았다.
건우의 익숙한 향을 맡았다. 빨래가 덜 말라 나는 꿉꿉한 냄새와 방금 축구를 하다 밴 땀냄새가 섞여 있었다. 생각해 보면 골을 넣어도 상대 반을 이겨도 혜택은 없었다. 찝찝함과 짜릿함 사이에서 불어오는 졸음만이 축구의 결과였다. 그래도 공 하나에 우르르 치고받고 싸웠다. 또 잡아서 때릴 것도 아닌데 이유 없이 도망가고 잡으러 뛰었다.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어떠한 명분도 없었다. 그냥 움직였다. 심지어 돈이 없어도 매일 만났고, 없으면 없는 대로 같이 있을 이유가 생겼다. 우리는 우리를 만들지 않았다.
따끈따끈한 떡을 옛날시장 특유의 검은 봉지에 담아줬다. 먹고 남은 떡을 다시 넣어도 아무도 봉지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의 모든 흔적을 숨길 수도 있고, 한 번에 모아서 지울 수도 있었다.
술떡을 하나 사서 구봉공원에 앉았다. 트랙을 따라 사람들은 뛰었다. 앞으로 추월을 하든 어깨선을 맞추고 뛰든 서로를 지나칠 때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았다. 트랙 밖 나무 아래의 벤치에서 보면 뛰는 사람들은 하나의 팀이었다. 자유로운데 조화로웠다. 도중에 누가 멈추거나 트랙을 도망가더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앞머리만 편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이선희씨가 맞았던 바람이었다. 내가 그녀를 느끼고 있음을 그녀가 모른다는 것에 특히 편안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병점에서 그녀를 찾는다면 결국 나와 그녀는 채권으로 우리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되지 않아도 그녀와 나는 서로를 느끼며 애틋하게 잊지 않을 수 있단 사실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