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사라질 때(1)

맞은바라기

by 다날

내가 걔랑 친하다고 해야 하나? 친하냐도 아니고 해야 하는 건 또 뭐냐. 걔는 나랑 친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질문이 이상하잖아. 그럼 너는 안 친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글쎄 청모에 갈 정도인지는 모르겠는데. 사실 결혼식도 가야 하는지 고민 중이야. 야 내가 요즘 우리 엄마 아빠도 일 년에 두 번 보는데, 대학 졸업 이후로 만난 적도 없으면 남 아니냐? 그래도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까지 같은데 그 정도면 가야지 않나. 그냥 같이 가자. 채권이라 생각해.

그것도 회수가 돼야 채권이지. 결혼도 양자역학이야 라는 말을 끝으로 건우는 전화를 끊었다. 중첩이었다. 여러 가지 상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세계였다.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건우에겐 중첩이 세상일지 모르겠으나 나에겐 그저 고양이었다. 죽어 있는 동시에 살아 있다는 그 슈뢰딩거의 고양이 말이다. 그러니 건우에게 결혼은 할 수 있는 동시에 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어차피 채권이라 생각해. 내가 지은 결혼의 별명이지만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증명이 되지 않았다. 분명 나는 투자를 했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빚을 졌는지 나는 모르겠다. 돈을 달라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지만 아인슈타인도 만족시키지 못한 조건부 계약이었다. 결혼을 해야 함이 조건이었다.

물론 결혼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전화를 끝나고 나서 곧장 우리는 ‘시집간다’ 단톡방에 초대됐다. 결혼을 하게 되어 소중한 여러분들을 초대하고자 청첩장을 드리고자 합니다를 시작으로 일정 조율을 위한 투표함이 공지에 떴다. 지난달 결혼한 녀석의 멘트와 똑같았다. 여덟 명의 참여자들은 다른 참여자의 눈치를 봤다. 세 명이 투표가 끝나자 일사천리로 나머지도 표를 던졌다. 소중한 사람이 됐다. 이상하게도 소중할수록 소유됐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인정되는 특권인 동시에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한 노력과 의무가 생겼다. 이제 청모에 가지 않을 순 없었다.

청모를 가면 밥을 얻어먹었다. 결혼자에게 채권을 발행해 줬다. 모바일 청첩장에 적힌 계좌번호로 축의금을 보낼 수 없게 됐다. 모바일은 결혼식 당일의 뷔페 값을 뺄 수 있었다. 하지만 청모에서 수저를 들게 되면 나는 빚을 졌다. 결혼식에 가야 하며 먹었던 밥값까지 포함하여 축의금을 내야 했다. 그제야 채권은 내게 돌아왔다. 결국 건우도 투표했다. 나 또한 청모든 결혼식이든 가고 싶어서 가는 줄은 잘 모른 채 마지막으로 가능한 날짜를 눌렀다.



너무도 안정된 시간에 전화가 왔다. 결혼 통보는 보통 불안정된 시간에 찾아왔다. 대체로 모두가 집에서 유튜브나 인스타를 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자신을 찾는다는 알림을 모를 수 없었다. 이선희씨를 찾는 전화는 오랜만이었지만 안정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가 포기되지 않았다.

여보세요 한 마디에 이선희씨 아닌가요로 이어졌다. 이선희씨의 성별은 분명했다. 내 목소리에서 이질적인 음성을 느낀 듯 전화 잘못했네요 라며 전화를 끊었다. 거진 반년만에 그녀를 찾는 전화였다. 죽은 줄 알았는데.

“누가?”

혼잣말을 건우가 들었다. 연산군으로부터 하루 탈출하여 ‘시집간다’ 청모에 가는 길이었다. 그는 자신의 대학원 교수를 폭군의 대명사로 바꿔 불렀다. 다행히 전날까지 실험이 터지지 않아 반나절 휴가를 받았다.

“이선희씨.”

“누군데 이선희가? 또 청첩장?”

“아니, 나도 누군지 몰라.”

이선희씨에 대해 아는 사실이라곤 성별은 여자이며, 화성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였다.

“화성에 사는 건 어떻게 아는데?”

“문자가 와. 은행에서. 어디에서 얼마나 썼는지, 그래서 얼마 남았는지까지.”

그래서 죽은 줄 알았다. 일 년 전부터 카드 내역 문자는 오지 않았다. 주유소에서 기름도 넣고, 편의점에서 소액 결제도 하며, 무슨 철물점에서도 무언가를 샀었다. 범죄를 다루는 방송에서 형사들은 사라진 피해자가 카드 내역이 없으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자주 언급했다. 용의자도 마찬가지였다. 알 수 없는 행방은 반드시 흔적과 자취를 남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만 그녀를 찾는 사람들의 목소리 톤은 하나 같이 격정보단 걱정이었다. 용의자나 가해자보단 피해자가 어울렸다.

“차피 네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건 아니잖아. 그럼 됐지 뭐.”

건우 말이 맞다. 지금 당장 내 통장에서 나가는 돈이 향하는 쪽은 청모였다. 심지어 그녀에겐 채권을 발행할 수도 없었다. 학교를 같이 다닌 것도 아니며, 밥을 얻어먹은 적도 없기에 어떠한 의무도 없었다. 한마디로 내가 그녀를 궁금해한다는 건 오지랖이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이선희씨는 얼마나 많은 채권을 발행했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는지. 그리고 왜 지금에서야 그녀가 신경 쓰이며, 왜 한 번도 그녀를 찾지 않았는지.

청모는 편안했다. 고기를 구우면서 첫 건배를 할 때 결혼을 축하했다. 주인공은 가방에서 청첩장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한 장씩 나눠줬다. 웨딩 사진 아래로 장소와 시간, 찾아오는 길, 꽤나 아름다운 시 한 구절, 그리고 받는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오른쪽 하단의 이름은 삼겹살과 맥주가 동시에 머리를 두드리듯 묘했다. 따가운 맥주가 긁고 지나간 식도는 당장 부드러운 고기 기름을 원했지만, 막상 고기가 지나간 자리는 더부룩함만이 남았다. 다시 맥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평소 그녀의 인스타 스토리에서 자주 등장하던 사람들의 청첩장에는 이름이 없었다. 가끔 오랜만에 저녁이나 먹자 해볼까 하며 캘린더의 일정을 확인했었다. 결론은 항상 같았다. 볼 때 되면 보겠지 하거나 쟤는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긴 할까였다. 왠지 이름은 그 물음에 답이 됐다. 원하던 답이었다. 쟤도 나를 궁금해하며 잊지 않았다는 걸 증명했다. 청첩장을 거부할 수 없는 이유였다. 분명 나는 특별했다.

그러나 상대는 모르는 우월감은 쉽게 건조해졌다. 그녀의 인스타 속 사람들은 나를 몰랐다. 그들에게 나는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과 경쟁을 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내 우월감은 그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었다. 불판 위로 증발하는 연기였다. 연기 없이 고기를 구울 수는 없다. 또 연기가 피어오를 때 비로소 고기가 구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남는 건 연기가 아니라 고기였다.

잘 구워진 고기는 연기의 노력에 대한 대가였다. 프러포즈를 어떻게 받았는지, 신혼집은 어디인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는지를 끝으로 봉인되었던 고등학교 때의 에피소드 보따리가 풀렸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달랐지만 우리는 친해지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친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만들었다. 계속 친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서로 부둥켜안고 펄쩍펄쩍 뒤던 면전에다 욕을 하던 저절로 계속 친구였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만나려면 돈이라는 노력이 필요했다.



이선희씨가 돌아왔다. 그녀는 편의점에서 결제를 했다. 문자에 찍힌 금액은 8300원이었고, 장소는 고깃집 근처였다. 나도 내가 핑계를 대면서 이차를 빠진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있을지도 모르는 편의점으로 떠났다. 건우도 나를 인질로 청모에서 탈출했다.

“아까 얼마 나왔는지 봤어?”

“오십만 원 정도?”

건우는 한 사람당 십만 원 정도라며 축의금이 두 배가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유레카를 외치듯 물었다.

“결혼식 때 밥 안 먹으면 십만 원만 내면 되지 않나?”

친구라는 것은 축하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건우가 낯설었다. 모든 행동에 이유를 요구했다. 분명 고깃집에서는 모두가 웃었다. 모일 때마다 매번 하는 똑같은 이야기에 누구 하나도 왜 그런 이야기를 꺼냈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근데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됐지? 어떻게 친해졌지? 하며 낭만의 시작을 찾았다. 입학식부터 졸업식까지 천천히 걸었지만 모두가 모인 지점에 멈추진 못했다.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 배우는 과목도 선생님도 달랐고, 반이 달라 급식도 따로 먹을 때가 많았다. 하물며 동아리도 달랐으며 꿈은 겹치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같이 있었다.

“축의금 없는 결혼식이면?”

“그런 결혼식이 어디 있냐.”

그랬다. 그런 결혼식은 없었다. 유명 연예인의 결혼식에도 축의금 상자는 있었다. 그깟 돈 좀 없어도 사는데 전혀 지장 없는 그들도 채권을 발행했다. 그러나 상상이 됐다. 이선희씨의 결혼식에는 축의금 상자가 없어 보였다. 청첩장이 없어도 그녀의 사람들은 올 것 같았다.

“내가 5년 정도 사라졌다가 청첩장 주면 올 거야?”건우는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우리는 일 년에 한 번은 만난다며 당장 다음 달에 결혼식에서도 만나는데 무슨 5년이냐며 허공을 바라봤다. 끝내 답은 하지 않았다. 가영이 때문이면 오늘 술 한 잔 해 주겠다고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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