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사라질 때(3)

맞은바라기

by 다날

‘시집간다’ 결혼식 오전에 건우에게 전화가 왔다. 청모 이후 처음이었다. 그날 사거리 앞에서 하던 말을 끊고 혼자 이선희씨를 찾으러 간 것에 대한 억하심이나 배신감 때문에 연락을 꺼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시집간다’ 청모 이후로 그와 같이 이어져 있는 친구의 결혼 소식이 없었다. 무엇보다 실험 기계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전화를 끝내 받지 않았다. 신호가 자연스럽게 끊길 때까지 기다렸다. 가영이도 그랬겠지만 나 또한 원하던 답을 듣지 못했다고 보복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잠수라는 치사한 방법으로 사랑을 갈구하지도 않았다. 나는 익숙한 건우가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그는 실험실이 아니라 병점에 있었다. 일 년에 한 번이란 채권이자 친구의 이유가 만료됐을 때 낯선 건우는 사라질 것이다.

단톡방도 미리 보기로만 읽었다. 내가 읽지 않았다는 걸 그들이 아는 게 중요했다. 나에게 별 중요한 내용은 없었다. 결혼식이 오후 6시라 기상 순서대로 교통편을 공유했다. 식이 끝나고 따로 술 한 잔 하기로 했나 보다. 차를 가져온다는 놈들은 대리비가 아깝다며 전부 지하철로 이동수단을 변경했다. 먼저 도착하는 순서도 논의했다. 여유 있게 도착한 놈은 출금을 할 의무가 생겼다. 수수료 독박이었다. 또 평소 헬스나 크로스핏을 하는 몇 놈들은 오늘 뷔페 기둥 한번 뽑자며 벌써 입맛을 다셨다. 그 와중에 식장에서 전 여자친구 만나면 어쩌냐며 올지 말지 고민하는 놈도 있었다.

건우의 축의금 이야기에 단톡방이 질서정연해 졌다. 얼마 정도 내야 하냐는 질문이었다. 항상 우리의 여행 계획을 책임지던 녀석이 식장의 뷔페 가격을 공유했다. 대략 팔만 원이었다. 최솟값은 정해졌다. 청모 식사비 십만 원에 뷔페값 십만 원을 얹은 이십만 원이었다. 대부분 오늘의 출금자에게 이십 만원씩 계좌이체를 했다. 알아서 돈을 뽑아 가는 몇 명의 액수는 미지수였다. 적거나 많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모두가 그들의 눈치를 봤다. 단톡방이 고요해졌다. 액수는 친밀도였다. 모두들 결혼식의 축하와는 거리를 두었다.


점심시간이 지나 건우에게 개인톡이 왔다. 내 액수를 물었다. 단톡방에는 열두 명이 있는데 이 중 공식적으로 수입이 없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대학원에 들어간 이후 시종일관 건우는 단톡방에서 조용해졌다. 나는 애초에 돈보단 꿈에 욕심이 컸다. 당장의 돈 몇 푼보다 하고 싶은 것을 알고 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동경했다. 여기저기 문의가 들어올 때마다 글을 써 주거나 교정해 주며 입에 풀칠하기를 면했다. 우리는 이걸 비공식이라 불렀다. 유일하게 건우만이 나의 글을 낭만이라 부르고 읽으며 피드백해 주는 문학비평가였다.

문제는 건우와 나는 바뀌지 않았는데 주변이 변했다. 그가 랩실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실험에 실패할 때마다 애들은 하나씩 취직에 성공했다.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사업승계까지 장르도 다양했다. 나는 이 녀석들의 자기소개서를 전부 써 주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니 그들의 생활이 달라졌다. 술을 마셔도 가성비의 포차가 아닌 이자카야로, 스포츠나 공연을 주말마다 보러 가는 여유까지 생겼다. 차와 집을 갖기 시작하며 온갖 세금과 대출을 등에 얹게 됐다. 매일 떠들어 재끼는 주식 이야기에도 낄 수도 없었다. 주식도 돈이 있어야 하지 않나.

초반에 우리는 괜찮았다. 그러나 주변의 영향은 여태까지와 다르게 버티기 힘든 압력으로 작용했다. 결국 우리는 우리끼리 있어야만 했다. 어느새 둘이 만날 때는 단톡방에 말을 꺼내지 않고 개별적으로 연락했다. 아무도 모르도록 최대한 은밀하게 만났다. 그렇기에 축의금은 우리에게 부담이었다. 건우는 차라리 자기를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청첩장을 건넨 친구들은 그에게 축하를 받고 싶었을 테지만, 건우는 그들을 괘심 하게 여겼다. 뜬금없이 돈을 뜯어가는 사채업자로 말이다.

나는 건우의 조건을 만족해서일까. 일 년에 한 번은 만난다는 이유 때문에 친구인 걸까. 아니면 생산성이 없는 것이 이유가 되어 건우의 조건을 만족하게 되는 걸까. 내가 한강처럼 노벨문학상을 받거나 건우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지 않아도 이 계약은 너무나 쉽게 파괴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건우가 더 빨리 돈을 벌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는 비로소 나와 친구가 될 이유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가영이 때처럼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혼자가 될 테다.




스마트폰을 끄진 않았다. 결혼식장은 청모를 했던 고깃집의 옆동네였다. 병점과 시는 달랐지만 경계를 모호하게 걸치고 있었다. 병점역 다음이라 지하철에서 애들을 마주치면 안 됐기에 수시로 단톡방을 확인해야 했다. 실시간으로 위치 공유가 되진 않았지만 다행히 겹치진 않았다. 더 중요한 건 통화음은 살아 있어야 했다. 가영이도 이선희씨도 연락 자체를 차단하진 않았다. 나도 목적지 없이 여행을 갈 뿐 망자는 아니었다. 적어도 건우에게만큼은 생존 여부를 알려주고 싶었다.

오후 6시 정각에 병점에 도착했다. 이선희씨가 새로운 흔적을 내게 남기진 않았다. 단순히 도망쳤다. 오늘은 그녀가 옆에 없었다. 또 오지 않을 것도 확신할 수 있었다. 토요일 해 질 녘의 중심상가는 골목 사이사이로 삼겹살 냄새와 맥주 냄새가 춤을 췄다. 나만 모르는 동네축제가 열린 듯했다. 거리 위 사람들은 밀렸던 채무를 갚고 채권을 발행하기 바빴다. 그녀가 도망갈 곳이 없었다.

역시 저번에 봤던 수많은 이선희씨들은 전부 가짜였다. 그들은 나와 그녀의 동행을 막았다. 두 남자가 술집 앞에서 담배를 태우며 위태롭게 끌어안고 있었다. 날 알아주는 건 너밖에 없다는 식의 대화가 오갔다. 한 커플은 오늘은 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택시 정류장 앞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더니 주변을 돌아보고 키스를 했다. 스타카토처럼 끊어가며 모텔가로 향했다. 연인을 증명했다는 표정이었다.

순수한 자유가 없었다. 하긴 이선희씨와 내가 공유하는 자유는 그들이 보기엔 너무 투명했다. 사람들은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노력을 보여주고자 갈망했다. 그들은 몰랐다. 지금 그 노력의 무게가 가벼워지면 빚이 늘고, 빚이 늘면 계약이 파괴되고, 파괴된 계약은 서로를 잃게 한다는 것을. 결국 또다시 새로운 채무를 지고자 채권을 만들러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불쌍하게도 옆동네의 한 여자와 남자는 이제 이선희씨를 만날 수 없게 됐다. 죽을 때까지 서로여야만 하는 이유를 수없이 만들고 지우지 못할 것이다. 엄청난 양의 채권이다. 영구히 자유를 잃은 채 자유를 영위하는 척 모두에게 증명하려 들 것이다. 동시에 수백 개의 작은 채권도 발행됐다. 뷔페에 앉아 만찬을 즐기고 있는 중에 생겨났다. 문득 궁금한 건 저 수많은 채무를 한 순간에 받은 신랑과 신부는 어떻게 전부 변제할 수 있을까였다. 건우처럼 중심상가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답을 구했다. 어차피 은행처럼 철저하게 모든 채권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설령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괜찮았다. 아무도 모르게 지금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마구잡이로 채권을 발행하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단톡방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신부와 신랑을 중심으로 서 있는 단체사진과 뷔페에서 먹고 있는 음식들이었다. 순간 순수한 바람을 느꼈다. 이선희씨의 향과는 달랐지만 농도가 비슷했다. 익숙하면서 익숙하지 않고, 낯선 동시에 낯설지 않은 중첩, 건우였다. 단체사진에는 있었지만 뷔페사진에서 그의 접시는 보이지 않았다. 이선희씨가 옆동네로 도망간 것이었다. 아마 건우는 새로운 채권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얻어먹었던 밥값만 갚았을 테다. 완전하진 않지만 순수한 도망이었다.




당분간 결혼할 친구가 없었기에 청첩장을 받을 일이 없었다. 아니면 청모에 나와서 소고기만 얻어먹고 축의금도 내지 않은 놈으로 벌써 소문이 퍼졌을 수도 있다. 물론 나에게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는 녀석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나에 대한 채권은 단 하나도 유효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건우에게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가영이가 떠났을 때와는 달랐다. 불안하지 않았다. 이선희씨도 조급하지 않았다. 도망가는 곳마다 우리는 자유를 공유하지만 우리가 아니었고, 우리이지 않아도 서로를 만졌다. 서서히 도망의 범위는 넓어지고 우리는 멀어졌지만 멀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선희씨는 다시 흔적을 남겼다. 그녀의 것이라면 순수한 자유가 흐르는 곳이 분명했다. 보이지 않는 자취를 밟으러 도망가던 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어디야?”

너무나 익숙한 음성과 낯선 배경의 바람 소리, 가영이었다. 역시 정답이었다. 그녀가 떠날 때 도망가는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이 그녀가 원했던 답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나의 위치를 물어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항상 그녀에게 내가 던졌던 질문이었다.

“여행 왔어.”

“건우가 나한테 최근에 너 만났냐고 묻더라. 도망인가?”

그녀도 내가 순수한 도망자라는 것을 느꼈나 보다. 이선희씨는 바쁘게 움직였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그녀를 찾을 수 없었던 게 분명했다. 잠시 또 다른 이선희씨를 잊고 있었다. 가영이와 나는 이제 하나가 됐다. 만나지 않고 만지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를 잊을 수 없다.

“아니. 여행이야.”작전은 성공이었다. 이제 건우는 이선희씨를 찾는 사람이 됐다. 가던 방향을 바꿨다. 이선희씨가 남긴 새로운 흔적을 느끼러 도망가지 않아도 됐다. 이제 내가 이선희씨다. 물론 완벽하게 순수한 우리가 되기 위해선 일 년은 도망 다녀야 한다. 건우와 나의 채권 기간이 종료되는 시간까지는 말이다. 우리인 이유가 사라질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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