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14
동작역 8번 출구는 유난히 길었다.
원래 1월 1일에도 태극기를 게양해야 했던가, 그랬던 기억은 없는데, 지구의 수명이 점점 줄어들어서일까, 올해부턴 한 해의 시작을 극진하게 맞기로 약속했나, 싶었다. 물론 그렇다기엔 크고 작은 태극기만이 겨울에 흔들렸다.
그러니까, 여기에 대통령, 장군, 경찰, 군인, 애국지사들의 영이 이불을 덮고 누웠고, 우리 할아버지가 있단 말이지? 이 이질적인 모임에 나만 헛웃음이 나온단 말이지. 안 그래도 광대가 얼어서 웃기도 버거운 날에 말이야.
얼마 전, 큰아버지의 노력으로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가 되었다. 가평전투에 참전하셨다는데, 전쟁이 끝난 지 이미 반 세기가 지날 때쯤 인정을 받으셨다. 큰아버지도 최근에서야 참전 사실을 알았으니, 국가유공자 신청은 단지 당신의 명예를 찾기 위함 그뿐이었다.
아무도 혜택 받지 못하는 나이가 된 지금에서야 굳이? 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신문이나 TV로 보던 사람들과 영광의 이름으로 통일된 모습이 썩 나쁘진 않았다. 뭐랄까, 분명 함께 있으면 누군가는 기분이 나빠야 할 것 같은 풍경인데 또 조화롭기도 했다.
그리고 또 뭐랄까, 솔직히 말하면 공동묘지인데, 성묘의 경험이 없어 처음 본 그림이지만 몹시 익숙했다. 내가 사는 세상의 배치와 다르지 않았다. 대통령을 맨 위로, 그를 지키는 장군은 그 아래,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병들은 또 그 아래 잠들어 있었다.
살아서도 오와 열, 죽어서도 오와 열이네.
아빠도 똑같이 느꼈나 보다. 군대를 다녀와서 예비군까지 마친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딱딱한 줄이 주는 뜨거움과 삭막함을. 좋으면서도 싫고, 설레면서도 눈물이 나는 형태로 비석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오와 열을 지켰다.
아무렇지 않게 나무 심듯 묻었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왠지 꽃들마저 한 방향으로만 바람을 타는 기분이 들어 경건해지는 경향은 있었으나, 결국 저마다 꿈꾸던 자유를 품지 못한 채 예쁘게 깎인 돌멩이 같았다.
할머니와 함께 부부위폐에 모셔졌다. 시신을 확인할 수 없으면 묻지를 못해 비석을 세울 순 없다고 들었다. 참 다행이었다. 가끔 팔도 돌리고, 고개를 들어 별도 보고, 등이 가려우면 긁을 수 있으니 말이다. 꽃도 색감이 괜히 밝아 보였다.
아빠가 돌 적에 돌아가셨으니, 제대로 인사를 드리는 건 처음이었다. 아빠도 할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진 않는다며 사진 속 장병들 가운데 할아버지를 찾지 못했었다. 사실 동네 아저씨들보다 낯설었을 테다.
아빠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이다. 정말로 힘든 건 드러내지 않는다. 나였으면,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낳지를 말지, 엄마가 얼마나 힘들 게 산 줄은 아세요, 하며 미안한 증오를 끄적였을 텐데, 아빠는 아빠다웠다. 아니, 아이 같았다. 오랜만에 아빠와 소풍 나온 꼬마 아이처럼 웃었다.
아버지, 아들이랑 왔습니다. 이제야 명예를 찾아드리네요. 늦었습니다.
잘 살아왔고, 잘 살고 있다는 푸념 비슷한 목소리였다. 동시에 눈시울이 붉어지며 목젖이 떨렸다. 나만 봤으니 바람이 차서 어쩔 수 없었다고 숨겨주고자 잠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의 끝엔 커다란 무덤 비슷한 인공물이 있었다. 지도에서 봤을 때 한 때 높았던 분들은 여전히 높은 곳에 누워 있었는데, 누구의 영혼일까 궁금했다. 그쪽으로 걸어가면서 수많은 상상이 오갔다. 왕의 무덤인가? 그렇다기엔 너무 작다. 융건릉을 지역 문화재로 삼고 자랐던 나는 왕의 무덤이 대략적인 크기는 맞출 수 있었다. 천장까지 있는 걸 보면 틀림없이 대단한 사람이긴 할 텐데, 대체 누구일까. 대통령보다 높은 직위가 무엇이 있을까.
가까워질수록 상상에 금이 갔다. 꽃이 없었다. 현충문을 통과하여 현충탑 안쪽을 통해 들어왔는데, 탑 앞엔 새해라 그런지 국회의장, 야당과 여당 대표,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 그리고 현 대통령의 추모 화환이 있었는데, 저 인공 무덤엔 그 어떤 작은 꽃잎도 없었다. 무덤의 크기에 비례한다면 저분 앞엔 반드시 비싸고 큰 꽃이 있어야 했다.
호국영령 무명용사
이름이 길어 다시 한번 천천히 읊조렸다.
호 국 영 령 무 명 용 사
이름이 없진 않았을 텐데, 그렇다고 쉽게 싸우지도 도망가지도 않았을 텐데, 왜 이렇게 쓸쓸한 기분이 드는 걸까.
이름마저 바친 충절
조국과 함께 영원하리
대리석 벽 귀퉁이에 검은 판에 적힌 글처럼 그들은 처음부터 이런 마음으로 싸웠을까. 어쩌면 국가를 위해 전사했을 때 명예롭게 적힌 자기 이름을 상상하며 총을 들고 뛰어들지 않았을까. 정말 이름마저 바치고 싶었을까.
할아버지의 동료이자 친구였을 텐데, 너무 흩어지지 말고 조금만 떨어져 붙어있지, 혹시라도 그 이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싶었다.
다음번엔 꽃 두 송이를 사 오기로 구름에 적었다. 한 송이는 할아버지를 위해, 한 송이는 할아버지의 친구들을 위해. 그리고 다음엔 꼭 여쭤 볼 테다.
당신들은, 여러분은, 대체 무엇을 위해 이름을 바쳤고 무엇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잠들었습니까.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싸우며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했던 저의 부끄러움을 너그럽게 못 본 척 잊어주십시오. 진심입니다.
동작역 8번 출구는 유난히 어둡고 길다.
특별히 유령들이 쫓아온다는 느낌은 없었고, 공포보단 똑같이 겨울이고 춥다. 우리가 매일 카드를 찍고 드나드는 여느 지하철 역 출구와 다르지 않다. 그들의 출구는 그보다 더 멀고 험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