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처럼 수건처럼

초청16

by 다날


화장실이 코딱지만 해서 청소 도구도 고작 칫솔인가 싶다. 그것마저 견뎌 봐 조금은 더 견딜 수 있잖아, 차피 양치는 치약맛으로 하는 거잖아, 하며 애써 외면했던 솔, 이미 만신창이가 된 줄은 알았다. 처음도 아니고, 매번 그래 왔는데, 락스향이 언제부터 이렇게 탁하고 날카로웠던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난감했던 순간은 최초로 화장실을 홀로 청소할 때였다. 사 온 락스는 물에 섞어 쓰는 건지 그냥 뿌리면 되는 건지, 변기부턴지 세면대부턴지, 옷을 다 벗고 해야 하나, 그렇지만 무엇보다 심란했던 건 대체 화장실이 왜 더러워졌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나. 아무리 더러워진 나는 화장실에서 가장 깨끗해지고, 아무리 내 몸을 한 번 쓸었다 한들 샴푸, 린스, 바디워시, 폼 클렌징은 태초부터 그 잠깐의 순간으로 더러워질 수 없는 존재 아닌가. 그나마 가장 쾌적한 공간이었다.

그래도 학창 시절 벌점과 친구 했던 게 씻겨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도움이 됐다. 학교마다 상쇄의 방법은 달랐겠지만, 나머지 청소는 기본이었다. 대부분의 애들이 떠나서도 나머지였지만, 그들이 하지 않는 공간도 나머지의 일부였다. 그중에서도 화장실은 당연 단골손님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청소를 하는 일도 검사를 하는 일도 전부 내 몫이란 것이었다. 검사가 문제였다. 학교에선 학생주임 선생님의 퇴근시간, 군대에선 점호시간, 카페 아르바이트에선 마감시간이면 통과가 됐다. 그런데 내 방 화장실 청소 검사에는 만족이 필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크기는 작아졌는데 시간은 더 오래 걸렸다.

보이지 않던 얼룩들이 스멀스멀 내 눈치를 봤다. 따갑고 귀찮은데 피하고 싶진 않았다. 변기를 닦는데, 뚜껑과 다음 받침 사이의 연결고리 사이의 흔적을 어떻게 지워야 할지 몰랐다. 별 짓 다해도 닿지가 않았다. 모르겠다 하고 세면대를 봤는데, 수도꼭지 밑동과 닿는 부분에서 락스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화장실 청소하는 날은 칫솔을 바꾸는 날이 됐다. 사실 입이 아닌 변기에 들어간다 해서 섭섭할 상태는 아니었다. 청소도구를 따로 사지 않아도 되는 나름의 절약에 만족할 만큼 무뎌졌다. 그런데 이번엔 유난히 안쓰럽더라. 방랑과 방치로 갈음한 곰팡이에 온몸을 구석구석 비벼대며 락스를 머금는 모습이 부질없어 보이더라.

특히, 화장실 청소의 모순 때문에. 마지막 락스 거품까지 지우고 나면 샤워를 해야 했다. 왠지 모르게 조심조심 물을 약하게 틀어 놓고 씻게 된다. 괜히 방금 닦은 곳에 물이 튀어 얼룩이 생길까 신경 쓰면서 말이다. 머리가 간지럽지만 샴푸질을 세게 해서도 안 된다. 하수구멍이 제일 청소하기 힘들었다. 배수구 커버를 벗겨내는 것부터 안쪽의 원통을 빼내는 것까지 욕이 절로 나오는 과정이다.

웃기는 일이었다. 어차피 몸을 닦을 때가 되면 얼마나 쓸데없는 노력이었는지 알 수 있다. 언제 날아갔는지 변기 커버 사이에 머리카락이 누워있고, 벽면 어딘가엔 샴푸가 묻어 있었다. 그러니까, 만족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화장실은 탄생한 이후로 절대 완벽하게 깨끗해질 수 없는 소우주였다. 물론 팽창하지 않는 건 달랐지만 말이다.



이날은 수건도 말썽을 부렸다. 열 장이 넘는 수건들 중에 딱 하나 굉장히 얇은 놈이 있다. 본래는 도톰하고 흡수력도 좋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수건으로 닦다 보면 은은한 짜증이 몰려왔다. 닦았지만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속옷을 입기도 불편할 정도로 물을 빨아들이지 못했다.

꽤 오래됐다. 알고 있었지만 버리는 방법을 몰라 매번 세탁기에 다시 넣었다. 더디긴 했지만 빨래를 할 때마다 조금씩 수건은 더 연약해졌다. 약육강식 이랬던가, 나도 모르게 점점 이 녀석을 멀리했다. 빨래를 널 때도 최대한 구석 자리에 걸어두고, 빨래하기가 정말 귀찮아 미루고 미루다 결국 이 놈 하나 남았을 때나 썼다.

하필 청소한 날 남은 마지막 수건이 녀석이라니! 락스향도 내 분노에 허리를 숙여야 했다. 그러고 보니 칫솔도 다른 날과 다르게 솔이 금방 퍼져서 제대로 안 닦였다. 시위도 이런 시위가 없었다. 수건과 칫솔이 대화라도 하는 듯했다. 우리 같이 골탕 좀 먹여 보자, 그거 좋은데? 그러다 너무 화나면? 화나면 어쩔 거야 버리기 뿐 더하겠어.

화장실 문턱에 쌓인 물은 밖으로 흐르기 직전이었다. 처음 살 땐 뭣도 모르고 바닥으로 흐르면 수건으로 닦으면 되지 하고, 어차피 젖은 수건 한 번 더 쓰고 빨면 좋다 중얼거렸다. 반복되니 화장실 앞 바닥은 점점 검게 변했다. 화장실에 커튼을 달면 되지 않냐는데, 나도 시도해 봤다. 그런데 화장실이 커튼보다 작더라. 그렇게 최대한 모른 척 지냈다.

문을 살살 열었다. 다행히 밖으로 새지 않고 자기들끼리 몽글몽글 뭉쳐있었다. 머리에 뒤집어쓴 수건으로 닦으려는데, 녀석은 온 힘을 다해 물을 거절했다. 오랜만에 물이 바닥으로 전부 흘렀다. 곰팡이가 자리 잡은 장판 위로 투명한 물이 흥건해졌다. 물방울에 반사된 검은 흔적들이 점점 덩치가 커졌다.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순간, 이상하게 서글펐다. 락스 냄새는 나를 비웃는 듯 나풀나풀 춤을 췄다. 내가 무엇을 그렇게 놓쳤길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쳐다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가. 심지어 새 칫솔이 없어 당장 이도 닦을 수 없었다. 이를 너무 닦고 싶었는데.



편의점에서 새 칫솔을 데려왔다. 힘으로 포장지를 뜯고 곧장 양치를 했다. 아프더라. 뻣뻣한 솔이 치아 사이를 파고들고 잇몸을 건드릴 때마다 상처더라. 락스 냄새가 더 이상 밉지 않더라.



버리려고 싱크대 위에 올려둔 칫솔을 바라봤다. 단번에 쓰레기통에 던지진 못했다. 나는 지금 저 녀석에게 동정의 눈빛으로 연민을 쌓아주는 건가, 싶었다. 좀 전까지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없애고 싶었던 존재가 양치질 한 번으로 불쌍해질 수 있는 건가, 아니면 처음부터 미안하고 안타까워서 모른 척 계속 함께 했던 건가, 아슬아슬 줄타기를 했다.

이윽고 곰팡이를 덮고 널브러진 수건도 보였다. 축 쳐진 모습이 왜 그렇게 또 안쓰럽던지. 다시 세탁기에 넣을까, 오늘은 버릴까 눈을 마주한 채 마음을 피했다.



누가 그랬다. 처음 수건이 세상에 나올 땐 한 올 한 올 가치가 있다가, 얼룩이 끝내 세탁으로 지워지지 않으면 그건 상처라고, 그렇게 행주가 됐다가, 그 마저 허락되지 않으면 걸레가 된다고. 칫솔 역시 태초엔 우직하지만, 치이고 쓸리다 힘이 약해져서 풀이 죽고, 버티다 버티다 마지막 힘을 써서 청소 도구가 되고서야 죽는다고.

서글프지만 맞는 말이다. 수건과 칫솔처럼 살지 않는 존재가 무엇이 있을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몸은 망가지고 약해지지 않나. 그때마다 역할도 이름도 바뀌게 될 테고.

어떻게 보면, 저렇게 사는 건 대단히 아름다운 일일지도 모른다. 가야 하는 곳을 아는 것보다 가야 할 때를 아는 게, 알고 외면하려 애쓰기보단 알았으면 마주하고 따라가는 게, 세상의 소모품으로서 이곳저곳 여행하는 게. 누가 오면 자리를 내어주고, 누가 가면 자리를 차지하는 게. 원래 예쁘고 아름다운 건 만나기 어렵고 귀하다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수건과 칫솔은 나를 욕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더라. 골탕 먹이려는 게 아니라 다음 자리로 가는 게 아쉬운 마음에 조금만 예쁘게 버티려 노력했을 수도 있겠더라.



그런데, 나는 아직 그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겠더라.



이유를 대자면, 솔이 다 마모된 칫솔은 되게 하찮고 더러운 곳을 긁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얇아진 수건은 어느 수건보다 빠르게 마른다. 습한 날엔 가장 섬유 유연제 냄새도 잘 빨아들이고 향긋하다.

계속 이유를 찾으려면 찾겠지.



그런데, 가만히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직은 볼만하네. 괜찮네. 좋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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