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한 샤프심

초청18

by 다날


샤프심이 애매모호하다.

아, 물론 샤프심이 그렇다고 말한 건 아니고, 내가 보기에 조마조마하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다. 눈앞에 있는 문제를 전부 풀기엔 모자랄 것 같고, 또 당장 새 심으로 바꾸기엔 아깝고. 꺼내어 확인해 보자니, 손에 가루가 묻는 건 싫은 와중에 다시 샤프에 넣을 때 부러지기라도 하면 고민한 시간이 사라질 것만 같다. 기껏 뚝딱거려 좁은 주둥이로 전부 뱉어내게 하고선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목구멍으로 역류시키는 건 너무 모진 짓이다. 마치 먹지도 않을 물고기를 잡아 아가미를 찢어 놓고, 내가 풀어줄 테니 마음껏 바다를 헤엄쳐하며 생색을 내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들이 아프던 아프지 않던 내가 미안한 게 중요하다. 더 이상 누구에게 미안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하찮게 버려지는 느낌을 지우고 싶지도 않다.


결국 문제를 풀던 도중에 심을 바꾸었다.

샤프심 통에서 가느다란 놈 하나를 잡고 급한 마음을 억누르기란 쉽지 않다. 샤프심은 한정적이고 시간은 무제한으로 제공된 세상이라 그런가, 이상하게 시간을 제한한 상황에선 고작 샤프심 하나 바꾸는 순간에도 여유로울 수 없다.

그리곤 후회를 한다. 애매하다 느꼈으면 처음부터 새 걸로 바꾸고 시작할걸. 반대로 마지막 문제까지 풀고 나서도 심이 남아 있다면, 아까운데 교체하지 말 걸, 하고.

그런데, 이때 모호한 사실 하나가 나를 시험한다. 자, 이제 또 다른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바꾸고 시작할래? 아니면 그대로 할래?

애매한데......

이런 상상을 한다.


샤프 회사에 알려줄까, 아니지 특허를 내면 돈 좀 벌겠는데? 요즘 시대에 잔여량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존재가 있긴 해? 자동차, 청소기, 가습기, 전구, 하다 못해 인간과 지구의 수명까지 예측하는 세상인데 이깟 샤프심의 교체 시기를 알기 위해선 그 몸을 뜯어내야 한다는 건 너무 모순이잖아?

아! 그거네! '이깟' 샤프심이잖아. 지금 지구도 성에 차지 않아 우주에 집을 짓겠다는 세상에서, 저 사소한 소모품 따위가 관심을 갖겠다는 건 욕심이지!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은 필요할 거야. 나름 실용성도 있고 말이지.

근데 없는 덴 이유가 있지 않겠냐? 너도 생각하는 걸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할까?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해. 투명 샤프가 있어서 그런가? 하지만 그건 경쟁 대상이 되지 못해. 샤프심이 아무리 보여도 그래서 그게 얼마큼 쓸 수 있는지 판단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기술력 부족은 절대 아닐 테고, 생산에 돈이 많이 드나? 뭐 딱히 또 그러겠어. 아이펜슬보다 정교하고 복잡할까. 분명 경제적 이유는 아닐 거야.

그럼 확실하네! '이깟' 샤프심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거지 사람들이. 아니,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지. 발전도 불편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불편함은 애정을 갖고 부대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감정이니 말이야. 그럼 그런 샤프를 만들었다 치자. 사람들이 사긴 할까? 불편함이 없는데 구태여 새로운 걸 친구로 두며 낯선 분위기를 풀어보려 할까?

이 문제는 좀 어렵긴 하다가도, 너무 간단한 답이 떠오른다.

요즘 뭐 언제는 뭐가 불편해서 있는 것도 없애면서 새로운 걸 들이미나?


결과적으로 상상은 모호했다. 답을 찾지도 답을 구할 수도 없는 실체 없는 허상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지금 이건 애매한 건가 모호한 건가. 둘은 다른 건가?


책에선 다르다고 한다.

그 정의를 샤프심에 정의한다면, 샤프심 문제는 애매하진 않고 모호한 경우다. 샤프심은 샤프심으로만 해석되니, 이 뜻과 저 뜻 중에 무엇으로 쓰였는지 따위를 고민할 존재는 아니다. 대신 어떤 상황에서 지금의 샤프심 길이가 충분한지 부족한지는 모호하다.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얄팍한 상상은 애매모호하다. 상상을 하면서 이상, 낭만, 객기, 열등감, 실패, 성공, 가치, 무시, 존중 등 상상의 다른 뜻이 여럿 떠올랐다. 샤프심에 대해 이토록 생각하는 건 낭만이다, 아니 생산성도 없는 아주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샤프심이라도 생각해야 사람을 볼 수 있지 않겠냐, 그 시간에 자기 발전을 하든 차라리 봉사를 해라. 하며, 대체 이 중에서 무슨 뜻으로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다.

동시에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현실이며, 애초에 상상의 기준은 무엇인지, 상상을 하는 건 옳은 일인지, 어느 선에 맞추어야 하는지, 맞출 선은 존재하는지, 참 모호했다.

그런데, 샤프심도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샤프심을 바라보는 한 인간과 상상하는 존재로 말이다. 그렇다면, 정의가 어떻든 간에 샤프심은 애매하지도 않고 모호하지도 않다.

샤프심은 애매모호하다. 애매하고 모호한 게 아니라, 애매하단 것이 모호하고, 모호하단 것이 애매하다. 논리적으로 틀리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지금 이것 또한 샤프심일 지도 모르고, 내 상상일 지도 모르니 말이다.


샤프심이 톡 하고 결국 부러진다.

고민이 쉽게 해결되지 않으면 몸에 힘이 들어간다. 강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깟' 샤프심에 대한 생각마저 쉽게 하지 못한 사람의 약함이다. 눈에 보이는 샤프심을 끊어버리면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어진다. 너무나 쉽게 편안해진다. 그렇게 샤프심은 쉽게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저 샤프심과 뭐가 다를까. 또 방금 샤프심을 죽인 나는 애매한 사람일까 모호한 사람일까.

아니며, 도서관에서 그저 얄팍한 상상이나 펼치는 가벼운 가루일까.


애매모호하다. 모호애매하기도 하고.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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