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19
쌀을 씻는데 문득 이해할 수 없는 상실을 만졌다.
물을 틀고 쌀알을 몇 번 휘적거린 뒤 물만 버리려 애쓴다. 무색무취의 수돗물이 금세 뽀얀 사골로 변한다. 자다 깨서 화장실을 가던 때 엄마나 할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르는데, 괜히 한숨이 나온다. 그렇게 며칠의 새벽을 뜬 눈으로 버티며 기름을 덜어내고 불을 조절하며 끓여냈어야 하나, 쌀에 부으면 이렇게 쉬운 걸.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다시 물을 받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대체 이 행위를 왜 반복해야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을 정도로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간단하더라도 분명 목적이 있을 텐데 말이다.
물론 혹시 모를 돌이나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함이란 이유를 모르진 않았다. 두 번 정도 쌀을 씻어내고 나면 사실 더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계속 씻어냈다.
와중에 한두 톨이 싱크대 구멍으로 빠지는데, 그 모습이 왠지 안쓰러웠다. 하수로 흘러 정화시설에서 갈리나, 밥솥 열에 몸이 폭발하나 죽는 건 매 한 가진데, 어쩌면 한 번이라도 밥으로서 씹히며 사라지는 게 행복할 지도 모를까 상상했다. 그것이 누구의 행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걸 일 년 내내, 적어도 생의 절반 이상을 반복한 사람들도 같은 생각일까. 살기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본능적인 일에 어떤 의미를 두긴 할까. 이건 볕이 좋은 날 잡초를 보며 너는 왜 광합성을 하니 묻는 것처럼 이상한 일일까. 아직 태양이 있으니 광합성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과 같은 걸까.
에너지를 얻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그래서 왜 얻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건가. 아니면 그냥 이유가 없는 건가. 심지어 어떻게 얻는지 조차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쌀을 씻든, 광합성을 하든.
쌀이 점점 깔끔해질수록 나는 답답했다.
매일 쌀을 씻는 그들의 생각이 궁금하지만, 그럴수록 물어보기가 꺼려지는 마음이 강해진다. 엄마는 왜 맨날 쌀을 씻어? 할매! 할매는 쌀 씻는 게 지겹지도 않아? 아니면 쌀 씻을 때 무슨 생각해?
이제야 이런 질문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차마 물을 수 없는 시간이 된 듯했다.
무서웠다.
아무도 답을 하지 못 할까 봐, 애초에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해 본 적이 없었을까 봐.
또 무서웠다.
답을 하려고 시작한 고민의 끝이 무력감일까 봐, 쌀을 씻어온 당신들의 모든 시간을 무시하게 될까 봐.
그리고 무서웠다.
정말 답이 없을까 봐. 진실로 이 답이 참이면, 나를 떠날까 봐.
뽀얀 색도 사라졌다.
쌀일 쭈글쭈글해진다. 무르고 물러져 서로 엉킨다. 피식하고 웃게 된다. 속으로 이런 질문을 하다 좋아하지도 않는 진밥을 먹을 생각에 콧웃음도 친다. 밥솥의 표면을 덮고 있는 투명한 물에 비친 내 얼굴이 한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럴 시간 있으면… 하면서.
그런데 이토록 짧은 시간도 상실이라 할 수 있을까. 또 그게 쌓이고 쌓여 수년이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상실일까 고민하는 여유를 가져도 될까. 처음 물을 부었을 때의 나는 금세 어디 간 걸까. 쉽게 외면할 수 있는 쌀알들을 누구는 무슨 연유로 무엇을 얻고자 기다리는 걸까.
밥통에 들어가는 쌀알들이 나를 비웃는 듯 솥 안에서 유영한다.
그래도 이 묘한 기분을 지우고 싶진 않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인 동시에 또 하지 않아도 될 일처럼 느껴진다. 뭐 때문에 이렇게 취사 버튼을 누르는 게 망설여졌을까, 밥솥을 조심스럽게 놓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