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21
집 앞에 커다란 타워가 있다.
누가 그랬다.
바벨탑 같지 않냐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바벨탑.
타워를 중심으로 두 덩어리의 원형 호수가 무한대를 그린다. 타워 아래로는 지하철이 흐른다. 덥거나 추운 날 지하철을 타러 갈 땐 최대한 빠르게 가려 용을 쓴다. 호수로 가는 법, 호수 위로 가는 법, 호수를 찔러 가다 환승센터로 들어가는 법 등 신호등 앞에서 생각한다. 그러나 수영을 해서 호수를 넘어가지 않는 이상 더 빠른 길은 없다.
항상 의문이 든다. 왜 다리를 놓지 않을까. 왜 구태여 돌아가게 할까.
타워, 호수, 놀이공원, 지하철, 버스가 하나의 상품이기에 조금이나마 더 둘러보게 하는 상술이라 대개는 생각하겠지. 그래서 매번 그런 생각을 했다. 저 탑이 무너지면 다리가 될 텐데 하고.
어차피 신은 바벨탑을 쌓는 인간에게 벌을 내렸다. 모두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하도록 말이다. 이곳도 그렇다. 사는 곳도, 가는 곳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하나만큼은 같다. 바벨탑을 짓던 사람들처럼 모두가 바쁘다.
하나의 목표가 아닌 저마다의 이유로 바쁘다. 아니 바빠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 바쁨을 벌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신기하게도 모두가 다른 방향으로 가는데 이정표는 탑 하나뿐이다.
단지 호수를 뛰는 사람들은 기분이 나쁘려나, 싶지만, 크게 다르진 않을 테다. 타워와 놀이공원, 백화점과 쇼핑몰이 없다면 트랙의 속도는 현저히 줄어들겠지. 자주 러닝을 하는 나 조차도 화려한 잔상에 매몰된 내가 좋아 보이니 말이다.
8을 옆으로 뉘이면 무한대가 된다. 저 큰 타워도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는데 사람이 어떻게 상하로 달리겠는가, 나름 똑똑하다는 인간들은 편한 방법을 찾는다. 간단하게 2차원으로 눕히고 좌우로 뛴다. 무한대가 된 줄도 모르고.
더욱이 웃긴 건 트랙엔 방향이 있다. 뛰다 보면 간혹 트랙에 적힌 화살표에 피식 웃곤 한다. 시계 방향이나 반시계 방향이나 결국 같은 곳을 돌뿐, 그곳을 탈출하진 못한다. 대체로 누군가의 뒤통수만 바라보며 옷깃을 스친다. 각자가 일으킨 바람이 어떤 농도로 다른 이의 앞머리와 눈을 건드리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니, 알고자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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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찬다. 종아리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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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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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타워를 보며 호수를 걷다 보면 보이는 게 있다. 사람들의 표정이 보인다. 표정이 보이기 시작하면 의문에 대한 답을 하게 된다. 저 탑이 무너져 다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탑이 무너지면 우선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지름길을 위해 희생되어야 할 존재는 없다. 어느 정도의 희생으로 얻어야 할 결과 따위도 없다. 그리고 탑이 무너지면 모두의 표정마저 하나로 고정될 것이다. 우는 인간으로.
적어도 내가 본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그래서 신의 저주 아래에서도 아름다웠다. 어쩌면 시간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신이 내린 벌이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은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모두가 언어가 다르면 모두가 생각이 달라지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게 지금의 모습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이렇지도 않을까.
모두 언어가 다르기에 서로를 더 오래 그리고 깊게 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우는 얼굴을 보아야 웃는 얼굴이 무엇인지 알고, 미소를 보아야 눈물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속도는 유한하지만 방향은 무한하다. 때로는 우리가 방향도 갖고 있음을 생각하며 천천히 걸었으면 좋겠다. 유한 속 무한을 찾는 것은 신의 저주지만 무한 속 유한을 보는 것은 신의 숨겨진 의도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그 무한 속 유한은 아마도 사람이란 가치가 아닐까.
무너뜨리고 무너지지 않아도 우리는 볼 수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움직이는 사람을 존중한다.
가끔 이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리고
결국 이 시간들을 생각하며 울고 웃는 사람을 경외한다.
생각보다 우리는 같이 같은 호수에서 흐른다.